숨쉬는 것도 벅찬 그 순간에 들었던 딴 생각
운동에 재능이 없다. 그럼에도 달리기는 좋아한다. 학교다닐 때 했던 등수를 매기는 그런거 말고, 말 그대로 '달린다'는 그 운동이 좋다. 요즘 유행하는 크루러닝은 아니고 혼자 달리고 혼자 기록보며 만족할 수 있는 그 자체로 즐기고 있다.
건강을 위한 취미생활이다보니 대회를 나가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작년에 10km 올해 8km 이벤트에 참가했다. 그나마 작년에는 약 4개월정도 준비를 했고 1시간 안팎의 기록을 냈다. 올해는 어쩌다보니 참여한 말그대로 이벤트 같은 상황이라 1의 준비도 없었던 상황. 페이스고 뭐도 그저 완주만을 향해 뛰었는데 숨이 딸각딸각하는 그 와중에 이래저래 들었던 생각들을 기록한다.
앞에 있는 누군가, 저 한명만이라도 따라잡으려는 목표가 중요하다.
모든 곳에는 확실한 1등이 있다. 기록만 측정할 수 있다면 그게 속도든 점수든 무게든.. 공식적인 1등은 단 한 명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 때 눈에 보이지도 않은 선두주자, 그 무리인 선두권은 내 알바가 아니다.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손에 닿을 것만 같은 저 앞의 사람이 내가 지금 온전히 집중해야 할 단 하나의 목표다.
지금 내 페이스를 측정하는 손목 위 스마트워치는 잠시 잊고 그 사람의 속도에 집중한다. 어차피 비슷하게 달리고 있겠지만 그의 보폭을 보며 1센티라도 넓게 달려보려 노력한다. 단숨에는 아니어도 어느덧 그 사람을 제치는 내가 있다.
물론, 제친 직후 내 앞에는 또 다시 수많은 사람들. 어디보자, 또 누구를 목표로 가볼까. 그렇게 하나씩, 하나식 달성하려고 머리 속은 바쁘게 돌아간다.
남들이 걸을 때 달리는 자, 무조건 앞서나간다.
내가 힘들 때 그런 생각한다 '이 정도 시간대면 다들 힘들거야, 잠깐 걸으면서 쉬는 시간을 갖는게 좋겠다' '지금 쉬고 그 동력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거야' 등등 자기만의 합리성을 띄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냥 내가 쉬고 싶을 뿐이고, 남들은 달리고 있다. 내가 쉴 때 달리고, 내가 달릴 때도 달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길 수가 없다. 그러니, 이기려고 하지말자. 달리기도, 인생도 결국 자기만의 경기다. 내 인생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나라고 하듯, 누군가의 쉼을 내 기회로 여기지 말자. 그저 내 능력에 비례해 지금 쉬어야 하는 것이다. 그에 아쉬워하지말자.
사실은 내가 달릴 때 또 누군가는 쉬고 있다. 나는 그 사람보다 더 앞서 달릴 수 있다. 거기에 주목하자. 좀 더 앞서나가고 싶다면 조금 덜 쉬고, 달릴 때 좀 더 속도를 내고, 좀 더 많이 달리는거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고 경험이 중요하다. 내가 정말 쉬어야 하는 때, 이 때 안 쉬면 경기를 포기할 정도의 진짜 타이밍을 알기 위해서.
성취감은 인생을 흔드는 기쁨이다. 그걸 자주 느끼는데 달리기만한 게 없다.
운동의 좋은 점은 몸이 기억한다는 거다. 어렸을 때 했던 운동, 몸에 익힌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서 시도했을 때 감이 남아있음을 느낀 적이 있을거다. 물론 그 때처럼 능수능란할 순 없겠지만, 몸이 저절로 반응할 때 느끼는 감정이 있다. 노력의 과정과 당시 성취, 깨달음 등. 그래서 운동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전형적인 현대 직장인인 나는 사실 평소에 100M 뛰는 것도 버겁다. 지하철역을 나와 환승할 버스가 앞에 있으면 잠깐 뛸까 싶다가도 그냥 다음 차 기다리자라는 마음을 먹는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한다. 아직까지는 10KM가 최대 도전이었지만 언젠가 하프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때까지 나는 꾸준히 1KM, 3KM.. 가능한 수준으로 달리고 달릴 것이다. 연습하다보면 저 눈 앞까지 달리는데도 헉헉거렸던 것이 얼마지나지않아 1KM 정도는 목에서 피 맛이 안났네? 라는걸 깨닫는다. 그 작은 성취에 얼마나 뿌듯한지.. 그 다음 달리기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물론 다른 운동도 경험한 적 있다. 내 경우에는 다이어트를 이유로 몇가지 운동을 스친 것이지만. 헬스, 요가, 필라테스. 목표가 몸무게 (감량) 성취였다보니 달성 직후 먹고 마시고 운동을 멈춰 원상복귀의 과정을 거친다. 성취라기보다 과정. 차라리 운동 그 자체를 즐겼더라면 좋았을텐데. 희한하게 달리기를 열심히 할 때도 몸무게 변화는 거의 없었던 듯. 달리는 행위를 즐기느라 몸무게를 신경쓰지 않은 것도 있지만, 몸무게에 대한 집착이 의미없기 때문도 있겠다.
나는 다시 달릴 준비를 하려고 한다. 최근 실내 사이클을 타고 있는데 달리기가 그리워져버렸다. 추우면 추운데로 밖으로 나갈 이유가 된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