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을 사는 방법
시험을 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왠지 시험 결과 좋을 것 같은데?!’
입찰 PT를 준비하다 생각한다. ‘이번에 분명 우리가 수주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은 항상 불현듯 떠오른다. 그리고 결과는? 탈락, 실주… 즉, 실패다.
기대하면 실망이 크다고 한다. 말 그대로 바래왔던 일에 너무 기대하다가 그르쳤을 경우에 따라오는 아쉬움에 대한 문장이겠지. 그러나 나의 경우에 대입하자면 ‘기대하면 실패가 분명하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이건 십 수년간 나만의 경험으로 체득한 징크스이자 트라우마이다. 확률은 대략 90%. 물론 하나하나 다 세본 건 아니지만 뭔가 긍정의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걸 느끼자마자 바로 ‘아 망했다..’라고 본능처럼 생각해버리게 된다. 거의 파블로프의 개, 무조건 반사 수준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 기대하는 이유는 하나다. 확신이 들 만큼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만만하게 준비를 마쳤다면 기대하지 않고 예측할 것이다. ‘기대’라는 건 결국 자신의 노력(능력) 이외의 것, 그 날의 상황과 분위기, 경쟁자의 컨디션, 사회적 트렌드, 국제적 정세 등등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든 우주의 기운에 내 운명을 의지해야하는 상황에 바라는 감정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다. 이 일을 잘 해내고,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보다 돌입 초반부터 기대하지 말자, 안되더라도 초연해야해, 누군가 나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무너지면 안돼, 라며 스스로에게 주문과 같은 암시를 걸게 되었다. 더 나은 미래와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이 상황은 ‘시작’ 자체에 대한 불안과 긴장, 부담감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환경으로의 변화는 자의로는 (거의) 시작할리 없고 대부분 타의,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진행되게 되는데 그 때의 나는 항상 부정적인 마인드를 탑재한 채 어디에 끌려가는 듯한 상태다.
사람에게 기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를 이끌어주길 바라는 대상, 이상향을 투영하며 고고하고 도도한 그 모습 그대로였으면 하고 바라는 대상. 고마웠던 호의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변하는 것인지 상대가 변하는 것인지… 언제나 처음과 다른 상태가 되어 서운함만 남는다. 게다가 기대하는 것과 달리 기대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애매한 감정은 혼자서만 감당하고 넘어갈 수 있는게 아니다.
기대하는게 나쁜가? 노력이 100%라도 능력이 그와 같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내 노력이 다하지 못했다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기준이 높았던 것일 뿐 결과가 좋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대신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만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면 건강에도 좋을 수 있겠지.
남에게는 이렇게 말하겠지만 나 자신에게는 불가능하다.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듯 안된 이유를 나 스스로에게만 찾아내려 한다. 다음 기회는 다시 없는 것 마냥 스스로를 못되게 괴롭힌다. 그리고 다음엔 다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한다. 그런데 결과가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런걸 몇 번 반복하다보면 계획 자체를 숨긴다. 혹은 계획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혹시라도 뭔가를 준비하는 과정 중에 좋은 기분이 들면? 불안하다. 뭐가 잘못된거지? 어떤 부분을 놓친거지?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찾아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안돼, 글러먹었어.
‘아 나는 할 만큼 다했다’
준비한 모든 것이 실패하는 것은 아닐터. 결과가 성공적일 때는 나와서 딱 드는 생각이다. 개운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던졌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아쉽지 않은 상태다. 여기서 안돼도 이렇게 완벽하게 쌓인 나라면 이걸 가지고 뭘해도 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이런 내 감정은 분명 증명해내는 과정, 시험이나 PT, 면접 등등에서도 드러났을 것. 여유가 있으니 실수하지 않고, 오히려 가진 것 이상으로 잠재력이 드러난다.
어떠한 일(事)을 할 때, 그것이 직업적 일이든 취미 생활이든 누군가와의 만남이든.. 새로운 것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여유 한 스푼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부러운 모습이다. 일의 성사유무에 따라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고는 걸려있지 않은 상태, 잘되면 좋고 안되도 여기서 배운 것이 있다며 미소지으며 훌훌 털고 일어나는 그 뒷모습. 마치 이상향처럼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전전긍긍 그 자체가 되고만다.
긍정적 마인드 탑재 같은 180도 태세 전환은 바라지 않는다. 그러려니라고 생각하자. 유명한 분이 하신 이야기를 아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타격이 있을 때 이 한마디 하신다고 한다. ‘그러라 그래’ 내 뜻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무언가를 걸지 말자. 희망도 걸지 말고, 나 자신의 가치도 담보하지 말자. 나는 내가 할 일을 한 것이고, 그 과정에 대한 만족을 찾아나서자. 그리고 결과는 덤이다. (그리고 덤을 못받았다고 서운해하는 것도 그럴 수 있다. 근데 딱 덤 만큼만 의미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