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선한 요리 재료가 입고되었다.
가을에 제철인 경주 불국사, 10월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 덕분에 야외에서의 식사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차오른다.
토요일이지만 새벽부터 눈을 뜬 아이들이 주섬주섬 각자 가지고 갈 물건들을 챙겨 넣은 가방을 둘러멘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불국사에서 맛볼 예정이지만, 그전에 신라문화 과학관이라는 애피타이저가 준비되어 있다. 제대로 코스 요리를 즐길 생각에 들떠 있는 아이들.
10시 30분까지 맞춰 입장하며 친절한 해설사님께서 어떠한 대가 없이 석굴암과 불국사, 첨성대 등에 대해 잘 설명해 주실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를 신념으로 삼고 아이들에게 곧잘 외쳐대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엄마는 그래도 전날 미리 예약 전화를 해두는 준비성은 갖췄다. (사실 이 애피타이저는 아이들만 먹일 예정이었지만, 어른도 꼭 맛보아야 한다고 적극 권해주시는 덕에 너무 좋아 울면서 함께 하기로 한다.)
이해가 쏙쏙 잘 되는 해설사님의 설명에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이라고는 경청하는 눈빛뿐이라 생각했는데 아침 방송 방청객과도 같은 감탄사가 나왔다. 나랑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지적 호기심이라는 게 어딘가에서 꿈틀거렸다. 특히 길게는 3분까지도 이어진다고 하는 선덕대왕 신종의 소리는 아이들의 마음에까지도 그 울림을 전하는 듯했다. 여운이 길게 남는 소리였다.
과학관을 다 둘러 보고 나와 불국사로 가는 길, 어떤 기억이 차오른다.
내 마음 냉장고 문을 열어 오래된 기억을 들여다본다. 30년도 더 된 세월로 인해 곰팡이가 폈거나 악취가 나고 있을 수도 있는 이 묵은지는 '불국사'라는 말이 들리면 저 구석에서 불쑥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1990년, 불국사 앞 작은 민박집에서 만들어진 어둡고 축축한 요리. 화가 잔뜩 나 큰 소리를 멈추지 않는 남자와 한스러이 우는 여자, 그리고 냄새 나고 눅눅한 꽃무늬 이불을 덮은 채 숨죽이고 있는 열 살 여자아이. 집에서 매일 보던 익숙한 맛인데 이걸 여기까지 와서 또 맛봐야 하나 싶어 화가 났지만, 사실 아이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불국사에 왔지만, 불국사는 없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더니.
올해 딱 열 살인 딸과 다시 온 경주에 불국사가 있었다. 석굴암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내 손을 꽉 잡은 아이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도, 사진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아이의 미소에도 불국사가 있었다. 가을 나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채로운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노란색도 연한 노란색, 샛노란색, 노르스름한 색, 갈색과 붉은색에 자리를 차츰차츰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 있는 노란색까지.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는 유적지답게 눈에 보이는 장면이 모두 그림 같다. 불국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그래서 기꺼이 기억 요리사가 되어본다. 용기 내어 저 깊은 곳 묵은지를 꺼내 깨끗하게 씻어내어 본다. 굳이 꺼내 확인하고 싶지 않아 그저 미루고 미루어왔던 재료를 꺼내 손질한다.
우리는 매일 기억을 짓고 산다. 기대 이상의 맛이 나올 때도 있지만, 코를 움켜쥐게 만드는 맛도 있다. 또 어느 날은 예상치 못한 매운맛으로 눈물이 찔끔 나온다. 내일은 어떤 요리가 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리에 소질이 없더라도 그간의 경력이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재료가 있더라도 어쨌든 기억 요리를 완성하는 사람은 '나'라는 사실이다.
아이가 서너 살 무렵,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니며 자주 기차를 타야 했을 때, 아이에게 늘 말해주었다.
"기차 여행 정말 재밌다~". "와, 창밖 풍경 좀 봐", "우리 자리 진짜 아늑하네.". "네가 하고 싶어 했던 스티커북 같이 해보자. 엄마가 준비했어". 아이가 긴장하고 겁먹을까 봐 했던 말들이지만, 사실 내가 나에게 해주었던 요리의 기억이다. 코끝까지 이불을 덮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자연스럽게 터득한 기억의 요리법이라고 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