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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Oct 22. 2023

더블파

- 골프편 

        내가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워하는 3가지가 있다. 기어 다니던 바퀴벌레가 어떤 결심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날개를 펼쳐 날아다니는 것. 습한고 더운 한여름날 귀뚜라미 형제들이 방향성도 없이 미친 듯이 점프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세상 모든 종류의 공들….. 나는 유난히 잘 걸어 다니다가도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공을 맞고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아이였다.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농구공에, 피구공에, 축구공에 곧 잘 쥐어 터졌다. 공이 날아오면 피하라며 다들 소리를 질러 위험을 알려주는데도 운동신경이 병맛인 데다, 느린 반사신경까지 갖추고 있는 나는 ‘앗’ 소리 한 번을 못 내고 공에 맞고는 했다. 그 뒤로 공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 공이라면 질색팔색이다. 


         나는 런던에 살 때도 지나가다 애들이 던진 공에 맞아, 내 룸메이트 언니가 나 대신 영어로 싸워주는 일도 있었다. 넘어져서 다치는 일보다 공에 맞는 일이 더 많았으니. 이쯤 되면 공의 저주에 가깝다. 세상의 모든 종류의 공은 바퀴벌레가 나는 것과 귀뚜라미가 점프하는 것과 동일한 공포심을 주는 것이다. 내 인생에 공은 없다. 구기종목은 다 싫다. 


         어쩌다 시작한 제주 라이프. 이곳에서 살 때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다 시작된 게 골프다. 직장생활 10년 차에 차장 직급을 달고 보니 사회적 지위(?) 맞는 이라기보다 또래 직급의 사람들이 모두 하는 게 골프였고 지루하기만 보이는 이 골프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육지보다 저렴한 레슨비에 골프장이 많다 보니 쉽게 다닐 수 있는 용이함. 


        사실 골프의 시작은 내 허세의 끝판왕이었는지 모르겠다. 상류층의 고유 소유물같은 같은 골프를…. 제주가 싸다(?)는 이유로 시작해보았다. 시작은 똑딱이라고 일 미터 앞에 공을 맞추기만 하면 되는 일. 가장 지루한 구간이라고들 하는데 신기하게 아주 재밌었다. 당시 내가 격무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뭔가 공을 치고 벽에 맞을 때 퍽 하는 소리에 희열을 느꼈다. 


         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오기까지는 스크린골프도, 필드골프도 지양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도 사악한 주변의 지인들은 나를 데리고 이리 저리 잘도 끌고 다녔는데, 스크린골프 내기에서 동년배 남자 과장에게 승리를 하자 더 큰 희열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전문 골프화를 사고, 해외 직구로 골프채도 구입하고 골프복까지 구매하였다. 골프 플렉스~ 심지어  골프채를 신고 다닐 수 있어야 했기에 자동차 구매까지 이뤄졌다. 처음에는 소형차를 구매할 예정이었나 골프채가 들어갈 수 있는 차가 필요했다. 골프는 차 구매의 사양까지 바꿔버렸다. 


        사실 나는 아직 골프룰도 잘 모른다. 그렇게 온갖 종류의 공을 싫어라 하고 무서워하던 내가 맞으면 절대 안 되는 공인 골프공을 하루에 200 볼씩 때리고 있을 뿐이고, 스포츠에는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던 내가 골프는 웬일로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4개월 동안 7번 골프채만 연습시키시는 걸 보니 이것도 역시 막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7일 중 연습장이 문을 닫는 하루를 제외하고 6일을 레슨 받으러 나가는 부지런함을 떨었다 


         프로님 모르게 동료들과 첫 필드를 나간다고 옷도 구매하고 헤어캡까지 구매했다. 골프 너란 스포츠는 정말 돈을 계속 쓰게 만든다. 처지가 비슷한 회사 동료들은 제일 싼 골프장을 예약하고 캐디도 없이 직접 운전하여 첫 라운딩을 하던 날. 화창한 날씨에 한라산을 뒤로하고 날리는 샷의 맛이란… 물론 나는 몇 미터 나가지도 그리고 모든 홀에서 더블파를 기록했다. 그러니까 기준 타수대로 친 점수를 파, 파 기준에 두배가 되는 타수를 치면 더블파 우리말로 양파가 되는 것이다. 모든 홀에서 그만큼 따박따박쳐야만 다음 홀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티브이에서 제일 재밌게 보는 프로가 골프 프로그램이다. 정말 골프도 많이 대중화되었는지 골프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로 플렉스. 

성공한 싱글레이디의 표상 같이 느껴지는 이 기분 때문인 것 같기도한데, 40년을 열심히 살았으니, 

이 정도 허세는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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