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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Oct 22. 2023

동백나무 아래서- 존 그린우드 3세

- 우쿠렐레 편

         음악이 주는 힘과 실제로 내가 악기를 연주해서 듣고 받는 감정의 풍요로움은 사람을 설래이게 만드는 기특한 재주가 있다. 멜로디가 주는 위안, 가사가 주는 에너지, 상상의 나래, 내가 연주에서 만들어 내는 소리. 악기를 연주 할 수 있다는 성취감. 나는 뜬금없는 정적과 BGM 이 없는 공간에 있으면 약간의 불안 증세를 느낀다.  집에 가면 형광등 키는 것 보다 음악이 먼저이고, 내가 있는 곳 어디가 되었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음악 소리로 공간을 채워 넣는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다가도 커피샵에서 친구들과 한참 수다를 떨다가도 BGM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며 내 취향의 음악이 흘러나오는냐에 따라 가게의 맛과 공간의 평점을 달리한다. 이벤트로 밥벌이를 한 10년차의 내공인지 음악, 온도, 조명에 따라 모든 분위기가 달라진다라는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탓이다.

24시간 음악만 듣고 살았던 10대를 지나 내 두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조금 두드릴 수 있게된 20대 후반쯤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처럼 사교육 시설이 잘 되어있는 곳이 없다보니 피아노를 연습할 공간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피아노는 계획이 필요한 악기였다. 피아노 치자고 종교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 연주의 손맛을 본 터라 음악 감상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없는 형편에도 굳이 내가 보유할 수 있고 언제든지 연주 할 수 있는 악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시작한게 클래식 기타이다. 나는 제법 악보도 볼줄 아는 어른이 되었고 클래식 기타를 먼저하고 통기타를 치는게 좋다는 초록창 지식인님의 말씀에 따라 그렇게 클래식 기타를 잡았다.


     당시 나는 런던의 북쪽에 위차한 캠든 타운 근처에서 살았는데 관광지로도 꽤나 유명해진 이곳은 Amy Winehouse도 살았던, 다양한 인종이 서로를 오해와 선입견 없이 포용하는 진보적인 장소. 락 스피릿의 성지이다. 찡박힌 가죽자켓에 화련한 부추를 신은 펑크와 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 사실 문신시술소와 헤비메탈 상점들이 즐비한 이곳은 벌건 대낮에 가도 뭔가 으스스하고 마약에 찌들어 오늘만 사는 청춘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기도 하다. 유명 뮤지션을 탄생시킨 곳 답게 언더그라운드 음악 클럽과 정통 펍에서 들려오는 라이브 음악에 생동감이 넘치는데 나의 첫 기타 선생님은 무려 이 캠든타운에서 매주말마다 공연하는 인디밴드의 멤버였다.


      영국인 회사 동료에게 소개 받은 존 그린우드 3세. 영국 왕자님 포스에 60년대의 귀족가문의 7대3 가르마. 굴욕의 아빠 머리 스타일에도 빛이 나는 이 젊은 청년은 태어나서 나쁜 짓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을것같은 착한 손가락의 보유자였다. 내가 전생의 무슨 덕을 쌓았는지 "향상" 이라는게 없는 저주 받은 내 손가락에게도 화한번 낸적없는 바다같은 인내심의 보유자. 영국사람 특유의 그 예의 바름으로 나를 대한다. 연주를 배우는지 그의 얼굴을 감상하는건지 한시간에 20파운드를 주고 그를 집에 불러서 개인 레슨을 받았다. 늘지 않는 나의 기타 실력은 그의 탓이 아니고 오롯이 나의 탓이다.


    실력이 늘지 않아도 마냥 행복했던 나의 기타레슨은 내가 영국을 떠나며 작별하게 되었고 이따금 나는 존 그린우드가 유명한 뮤지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페이스북으로 그를 스토킹하기도 한다.

재능은 없어도 근성은 있는 나. 한국에 와서도 그가 가르쳐 준 기타를 계속 칠 요량 이였지만 귀가 얇은 나. 한국에서는 우쿠렐레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명절에 회사에서 준 사이버머니로 즉흥적으로 우쿠렐레를 구매했다.

존 그린우드 3세를 대신해줄 나의 기타 선생님은 너튜브. 너 선생에게 배우고 내가 칠 수 있는 유일한 곡은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와 Merry me 다. 4코드에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 금방 배웠다. 30대 초반만해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우쿨레레를 연주하면 귀엽기라도했을텐데. 이제 마흔이 넘어 merry me를 연주하니 너무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의 기타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이지만,

나는 그 시절 런던의 뿌연 안개와 우중충한 날씨가 그리울 때면,

캠든 타운의 무한대  자유로움이 그리울 때면,

존 그린우드의 따뜻한 미소가 그리울 때면,

이곳 제주의 동백 나무 아래서 짙은 동백향을 맡으며 우쿠렐레를 연주한다.


사랑은~ 은하수 다방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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