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영편
내가 태어나서 못하는 것 3가지를 말하자면 운전, 수영, 자전거 타기이다.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태어나 물을 그토록 무서워한다면, 어린 시절 바다 한번 안 가봤다면 누가 믿을까 싶겠지만 아빠의 짓궂은 장난에 몇 번 물속으로 꼬꾸라져 잔뜩 물을 마신 뒤로는 바다라면 질색팔색이었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수영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직업 특성상 대부분의 이벤트가 점심, 저녁에 진행되다 보니 느긋한 오전에 수영을 등록할 수 있었다.
그때 생긴 나의 인생 목표는 오전에 수영강습 마치고 브런치 가는 여자들이 되자는 거였다. 업무에 찌들어 힘들게 침대에서 일어나고, 강습이 끝나기 무섭게 허겁지겁 기와나와 급 샤워를 하고 다 말리지도 못한 머리로 출근길에 오르던 나와는 급이 다른 삶의 질. 그리고 그때 생긴 나의 깨달음은 얼굴만 가꿀 게 아니라 몸도 가꿔야 된다는 거였다. 몸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선수 출신의 젊은 수영강사님은 유독 센터에 코멘트를 많이 하는 40-50대 여사님들과 아리따운 20대에게는 너무나 다정다감하시고, 세상 친절하셨지만 그 중간의 애매모호한 내 나이의 그룹군들에게 유달리 관심이 없으셨다. 심지어 우리를 “팔 못 돌리는 3인방”이라 하시며 몇 번 봐 주시지도 않으셨고 그렇게 우리는 몇 달 동안 방치되어 물에 들어갔다만 나오는 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고 늘지 않는 수영실력에 강사님도 포기한 듯 보였다.
몇 개월째 수영장 물을 하루 1리터 이상 섭취하다 보니 신세계 백화점 마트의 오가닉 코너에서 수영장 물을 많이 마시는데 몸에 좋은 차가 뭐가 있냐고 묻는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사님이 예비군 훈련으로 3일간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옆라인에 웃음소리가 호방한 강사님께서 우리 팔 못 돌리는 3인방에게 물침대에 눕게 해 주시겠다며 발은 지상에 몸은 물에 누워 보라고 하셨다. 이게 될까 생각했지만 정말 몸이 물에 뜨기 시작했고 조금의 물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후 나는 시간을 바꿔 이름도 성격도 호방한 강사님 반으로 옮기며 지난 3개월의 소심한 복수를 하듯 물에 뜨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수영장 물을 마시지 않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입도 하마처럼 허우적거리며 죽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벌릴 수 있는 최대치를 벌려 왔는데 우리 호방한 강사님께서 입은 방울토마토를 던졌을 때 그 작은 사이즈의 토마토가 들어갈 만큼만 이쁘게 압! 압! 하며, 가로 세로 각 3센티만큼만 벌리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 보다 더 자상한 설명이 있을 수가 있나..
어느 날 내가 수영하는 걸 보던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소금쟁이 가네 소금쟁이” 기초 상식이 부족하는 나는 소금쟁이가 뭔지 몰랐으므로 초록색 창에 검색하면 나오는 두 번째로 사진을 보고 반론 없이 그냥 수긍하게 되었다. 내 빈약한 몸뚱이와 소금쟁이의 싱그로율이 정확히 일치했다.
내가 물에 뜰 수 있다는 신기함. 기특함.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우가 몰아쳐도 택시를 타고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 중독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7일 내내 수영장에 다녔고, 부산에서 울산까지 수영복 원정쇼핑을 다녔다. 이것은 마치 이력서란에 취미 수영. 특기 수영이라고, 큰따옴표를 붙이고 싶을 만큼 뭔가 하나를 해냈다는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뜻이지 잘한다는 말은 아니다.
평생 숨쉬기만 하던 내가 수영이란 고강도 운동에 빠진 이유는,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YOU CAN’T REACH ME and I CAN’T REACH YOU가 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에게 연락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는 물리적 공간. 그곳에서 창문 넘어 내리쬐는 햇살이 수영장 물속을 간통하여 바닦까지 비추는 햇살속에 내 몸을 뉘일 때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롯이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에 나를 비춰주는 한줄기 빛.
극심한 물공포를 이겨 내고 얻은 자신감. 찐 수영인들에게 받는 최강의 에너지. 좋은 혈색과 생기발랄함. 건강한 몸. 왕성해진 식욕.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결과에 행복은 덤으로 얻었다.
오늘도 소금쟁이 행복하게 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