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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Jun 07. 2022

추르 먹고 힘내라

풍요.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다.

늘 우리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우리 식구와 살갑게 스킨십을 하는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식구와 인연을 맺은지도 3년이 넘었고 그 사이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관계가 되었다.

그 녀석이 우리 집에 나타나면 식구들은 가족과도 같은 정감을 갖고서 늘 애정 어린 말투로 

"풍요 왔나? 밥은 먹었나?" 하면서 살갑게 반겨주는 것이 통례이고, 반면에 풍요는 한 걸음 떨어져서 무뚝뚝한 표정으로 또는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서로 간 관계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자기 몸의 털끝 하나라도 우리 손에 닿을세라 늘 우리의 접근을 경계하는 녀석의 성격을 잘 아는 터이지만 그래도 녀석의 안위를 3년간 걱정해오고 밥그릇이며 물그릇을 챙겨서 갖다 바친 성의를 봐서라도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녀석의 유별난 경계심을 보고는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녀석을 길가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불편하고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슬그머니 뒤돌아 서서 휑하니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도 차지 않았지만 녀석에게 더 이상 뭔가를 바라거나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때 명확하게, 냉철하게 그리고 아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풍요는 연어 추르를 좋아한다.

내가 보기에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다.

만에 하나 우리 손끝이 자기 몸을 쓰다듬을까 봐 한 걸음 이상 거리 유지를 철칙처럼 지키는 녀석이 추르만 보면 코앞까지 다가와서 입을 들이미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녀석이 정 자세를 하고 앉아 우리를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하거나 사료를 다 먹고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추르를 달라는 행위이다.

요즘은 우리 집에서 풍요에게 추르를 자주 주는 편이다.

풍요가 추르를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는 날이 많다.

풍요의 영역을 위협하는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풍요가 얼굴과 앞다리 등에 종종 상처를 입고 오는 경우가 많다.

싸우다 다친 다리로 쩔룩거리며 걷는 모습을 볼 때는 녀석이 너무나 안쓰럽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풍요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건강하게 잘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첫째 딸이 추르를 주겠다고 나섰다.

추르 먹고 힘내라고.


나도 어느 날 추르를 주겠다고 나섰다.

추르를 정신없이 먹고 있는 풍요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다.

'풍요야. 길에서 아저씨를 봐도 모른 체해도 된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게. 대신에 딴 고양이하고 싸울 때 제발 얻어터지지 마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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