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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moon Oct 26. 2023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집 비평글 

비평글

 2012년 12월에 출판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인 박준이 펴낸 첫 시집이다. 박준 시인은 2008년에 계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문학계의 평가와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동시에 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시인뿐만 아니라 창비에서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비(非) 건설적인 걸 하자는 치기가 가득했거든요. 그때 선택한 것이 시예요. 세상은 자꾸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로만 돌아가니까요. 깊은 철학은 없어도 느꼈던 것 같아요. 자꾸 돈이 되는 것만 하고, 그럴싸한 것만 하려고 하니까 나는 반대로 하자고요. 그렇게 치기로 시작한 거죠. 치기가 오기가 된 거고요.” 시인의 시는 가슴속의 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별거 아닌 것 같은 기분과 감정이 모여 명확한 언어가 되고 시가 되었다. 이렇듯 시집에는 시인이 일상에서 뚫어져라 바라보고, 고스란히 느낀 것들이 모여있다. 이 시집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문장은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인이 아픔을 느낄 때 어떤 명약보다 당신의 이름이 치유가 되어준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시집 속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들은 담백하지만, 언어를 보고 연상되는 이미지는 습하다. 담담하게 단어를 뱉어내지만 그 속에 눈물이 서려있는 것 같다.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에 나오는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보면 애써 덤덤하게 말해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슬픔은 언어라는 포장지에 한 번 감겨서 우리에게로 전해질 수 밖이 없다. 이 시집은 눈물이 가득 담겨있지만 잘 포장돼서 새지 않는 선물상자 같다.
 

시집에서 미학이 느껴지는 부분은 일상적인 단어들을 낯설고, 또 아름답게 사용하는 점에 있다. 시인은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적인 단어들이지만 색다르게 느껴지게 조합한다. 시 <이곳의 회화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중 ‘어쨌든 나는 이곳의 회화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영양식 식단에 딸려 나오는 우유만 있으면 그들은 혼자 밥을 먹는 일에도 아파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회화’, ‘영양식 식단’, ‘우유’ 모두 친숙한 단어들이지만 시를 읽을 때는 새롭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어휘의 선정이 아닌, 배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위의 세 단어만 보면 서로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것 같지만 배치가 된 후 단어를 다시 살펴보면 그물망처럼 이어져있다. 시집에 나오는 대부분의 문장들이 이런 식으로 쓰여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에로스가 느껴진다.
 

시인의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은 <동지>의 ‘당신을 인천으로 내보내고 누웠던 자리에 그대로 누웠을 때, 손으로 손을 주무를 때, 눈을 꼭 감을 때, 눈을 꼭 감아서 나는 꿈도 보일 때, 새봄이 온 꿈속 들판에도 당신의 긴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을 때’이다. 시는 당신을 노래한다. 시인 자신에 대한 시도 많지만, 유독 당신에 대한 시가 돋보였다.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랑을 느낄 때는 사실상 자신과 타인을 구분할 수 없고, 일치시키려 한다. 시인의 마음은 당신으로 가득 찼고, 이는 시의 구절에 섬세하게 드러난다. 내면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당신의 형상이 나까지 보이는 것만 같다.
 

시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자신의 고통, 슬픔을 스스로 되새기고 재현한다는 점이다. 시인이 자기 자신을 재현함으로써 그는 완벽한 개인이 된다. 시를 읽는 독자도 물론 염두에 두고 쓴 시겠지만, 그런 염두가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서 매력적이다. 이로써 시인은 시를 통해 슬픔을 잊지 않고 영원하게 박제했다. 자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자신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개인을 보며 독자는 뜻하지 않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닌 눈물로 범벅이 된 모습이더라도 영원토록 기억할 가치가 있다.
 

이 시집은 한 개인이 안을 수 있는 슬픔과 언어를 담백하게 버무려 음미하도록 한다. 기대하지 않은 위로를 받고, 서글픔을 달랠 수 있는 시집이다.




박준 시인의 강의를 듣고..

 사람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은 강제성을 띄지 않고,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일 것이라고 시인님은 말했다.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어떻게든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행위에서 가치나 보람을 전혀 느낄 수 없어진다. 나도 학교에 다니며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강제성과 주체성 사이에서 크나큰 고민을 하고 있다.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어떻게 조화롭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시인님의 강의 내용 중 직업을 선택할 때 참고하면 좋은 내용이 있었다. 물론 직업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요구되는 일도 포함된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꿈과 현재, 잘하는 정도 이 세 가지를 참고해서 결정하면 좋다고 말씀했다. 나는 늘 현재 상황은 애써 고민에서 배제했는데, 강의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의 현재를 잘 아는 것이야말로 자기에 대하여 철저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를 바꿀 수 없더라도 외면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 


 시인님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시인님이 연애를 할 때 연인과 집이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다고 하셨다. 주로 시인님이 연인을 집까지 데려다주셨는데 어느 날 연인이 먼저 시인님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같이 시인님 집 앞까지 왔는데, 도착한 후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려는 연인의 뒷모습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시인님은 다시 연인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 얘기를 듣고 사랑이 대체 무엇인지 고민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적지가 코 앞인데 이를 뒤로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구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자주 미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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