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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숙이 Nov 05. 2024

호미다점虎眉茶店

소설-가문의 비밀 1




“사랑을 했다~우리가 만나~흐으응~!”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 기분이 좋아진 참이는 요사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깨에 서늘한 기분이 들더니 그 일이 일어났다.


“쩌어억 쩍!”

“아아악~!”


발밑의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가더니 참이 바로 아래에 싱크홀이 생긴 것이다. 참이는 훅 꺼지는 바닥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으나 결국 빠지고 말았다.


“누구 119에 연락해요!”

“더 무너지는 거 아니야? 사람이 빠진 것 같은데!”

“이봐요? 누구 빠졌소?”


주변의 사람들이 갑자기 생긴 싱크홀로 다가왔다. 하지만, 마저 무너질까 겁이 나 아무도 가까이 다가와 볼 생각을 못 했다. 한 발 물러선 곳에서 소리만 지르던 사람들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사람 있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어머 어머 저기 사람이 빠졌나 봐! 어떻게 해?”

“119! 119!”


웅성 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제치고 마침내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상황을 살피려고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구멍 속에는 튀어나온 철근을 잡고 여학생 한 명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구멍의 깊이는 까마득한 바닥으로 봐서 족히 7~8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대로 떨어졌으면 크게 다쳤을 깊이였다.


“학생 괜찮아요?”


“네. 그런데 점점 힘이 빠져요. 도와주세요.”


“우리가 얼른 꺼내 줄 거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 학생!”


“놓으면 안 돼요.”


“네에.”


구급대원들이 구명 로프를 구급 대원 한 명과 함께 내려 보냈다.

“내가 이 로프를 머리에 걸어줄 테니 조심스럽게 한 쪽 팔을 로프 안에 껴 봐요.”


매달려 있느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참이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을 놓으면 떨어질 것 같아요.”


“내가 옆에서 잡아 줄 거니까 걱정 말고 해 봐요. 한 손은 놓고 몸을 걸친 다음에 다른 손까지 놓고 올라가야 돼요.”


“네, 해 볼게요.”


구급대원의 설명에 결심을 굳힌 참이는 자신의 머리에 걸린 로프 안으로 오른쪽 팔을 천천히 끼워 넣었다. 왼쪽 팔로만 지탱하는 것이 힘들고 무서웠지만 자신의 곁에서 손을 뻗어주고 있는 구급대원 때문에 안심이 되었다.


“아주 잘하고 있어요. 우와 학생 대단한데. 자 이제 내가 로프 구멍을 조여 줄 거예요. 그리고 나면 당길 겁니다. 그때는 손을 놔야 해요.”


“네.”


구급대원이 볼 때 이 학생은 보기 드물 정도로 침착했다.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침착하게 시킨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로프 구멍을 조이면 위험한 순간은 끝이었다.


“자자 갑니다.”


“후드득.”


“조심해!”


“다시 흙이 무너진다!”


“아악!”


“으윽”


떨어지는 흙과 돌을 고스란히 맞은 참이와 구급대원의 비명이 들리고 위쪽에 있던 구급대원들이 다급히 구멍 속을 들여다보니 아찔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편으론 기가 막힌 상황이기도 했다.


“학생! 괜찮아요?”


“네, 하지만 이 분은 정신을 잃으셨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요.”


구조하러 들어갔던 구급대원이 오히려 여학생의 품에 안겨 있었다.


“우리가 학생 로프부터 당길 거니까 그리 알아요!”


“안 돼요! 이 분 로프가 중간에 조금 찢어졌어요. 저희 둘 다 동시에 올려주세요.”


“그러다 다시 흙이 무너지면 학생도 위험해요.”


“그러니 동시에 올라가야죠. 지금은 저보다 이 분이 더 위험하다고요. 어서요!”


참이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구급대원이라도 부상에 정신을 잃고 로프까지 끊어지고 있다면 어서 구조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끌어당길 수단이 없었다.

 구급대원들이 고민하는 동안 구멍 속에서 참이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저씨! 빨리요! 주변에 계신 분들이 저를 끌어올리고 아저씨들은 이 아저씨 로프부터 당겨주시면 되잖아요!”


주변 시민들이 하나 둘 나서기 시작했다.


“그럽시다. 내가 당길게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허허 참. 알겠습니다. 여기 이 줄은 내가 당길 테니 자네들은 한 대원 로프를 감아. 어서!”


“하나 둘 영차! 하나 둘 영차! 조금만 더 힘을 내시면 됩니다. 하나 둘 영차!”


“지이잉~지이잉~”


두 개의 로프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당겨졌고 곧이어 참이와 구급대원의 모습이 보였다.

 구급대원들이 조심히 두 사람을 구멍 밖으로 꺼내자 바라보던 사람들이 다 같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와아아! 다행이네, 다행이야!”


“학생, 아주 잘했어!”


“구급대원들 파이팅! 멋져요!”


사람들의 격려에 참이가 활짝 웃으며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바로 쓰러진 구급대원에게 향했다.


“이 아저씨는 괜찮으신 거예요?”


상처를 살펴보던 다른 대원이 걱정 말라고 참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달랬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갈 거니까 괜찮을 거야. 학생도 같이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가지. 상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참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안 가도 될 것 같아요. 흙이 묻어서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아픈 데는 없어요.”


“그래도 병원에 가는 게 좋을 텐데. 안 갈 거면 연락처 하나 주고 가고. 암튼 학생도 대단하네.”


구급대원의 칭찬에 참이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그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먼지를 툭툭 털고는 제 갈 길을 가는 참이의 뒷모습에 구급대원들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감탄했다.


“나중에 119 대원 되면 한 자리하겠어, 저 학생.”

“하하하 그러게요. 구하러 온 구급대원을 구했으니. 저희도 어서 가죠.”

“그러지, 출발!”


그렇게 구급차도 떠나고 모여 있던 구경꾼들도 삼삼오오 흩어져 갔다. 파인 구덩이 바닥이 다시 들썩들썩 거리는 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끼익.”

“아빠, 나 왔어.”


참이는 ‘호미다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아빠인 정일을 찾았다. 

‘호랑이 눈썹 찻집’이라는 이 희한한 이름의 전통찻집은 참이의 아빠인 정일이 운영하는 곳으로 1층엔 다점이, 2층엔 정일의 작은 사무실과 거처가, 3층엔 참이의 방과 부엌, 작은 방이 있고 다락을 거쳐 지붕으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 단독 주택이었다.

자신이 외출할 때마다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정일의 마음을 아는 참이 인지라 아빠 먼저 찾은 것이다. 안 쪽 주방에서 정일이 반가이 참이를 맞으러 나오다 흙투성이인 모습을 보고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 꼴이 왜 그러냐? 어디서 땅이라도 파다 온 거야?”


참이가 걱정하는 아빠에게 별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한 어조로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싱크홀이 생기는 바람에 빠졌었거든.”


“뭐라고? 땅이 꺼져? 다치진 않았고?”


“괜찮아. 내가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나? 땅이 다 꺼지고. 119 아저씨들이 구해주셨어.”


참이의 말에 정일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구덩이가 얼마나 깊어서 네가 못 나오고 119가 와? 진짜 안 다쳤어?”


정일은 참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걱정이 되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행히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안심이 되자 정일의 잔소리가 열렸다.


“너~ 정참! 내가 나가지 말라고 했지! 나가니 또 사고잖아. 똑바로 말해봐~ 구덩이가 얼마나 됐다고?”


아빠가 화난 기색을 보이자 혀를 날름 하며 참이가 정일의 팔을 잡고 아양을 떨었다.


“아잉 아빠 안 다쳤다니까. 그리고 구덩이도 한 7미터 밖에 안 되는 깊이였어. 바닥까지 떨어진 건 아니고 중간에 철근 잡고 있다 나왔어.”


참이의 대답을 들은 정일은 더 기가 막혔다.


“뭐라고? 7미터? 철근? 아이고 진짜 내가 미친다 미쳐!”


“아빠, 화내지 마~응?”


“에휴~.”


정일이 참이의 손을 잡고 테이블로 가서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참이야, 아빠 화난 거 아니야. 걱정이 돼서 그래.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알아. 그래도 다치진 않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참이야 처음 사고 난 게 언제지?”


언제나 참이에게는 자상하고 웃어주기만 하는 아빠 정일이었는데 오늘따라 너무 심각해 보여 참이는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 너무 심각한 거 아니야? 처음 사고?”


“응. 그게 언제였지?”


“작년 수능날이니까 11월 23일이지. 암튼 그날은 다시 생각해도 재수 꽝이었어. 생일날이라 수능 끝나면 제대로 놀겠다고 친구들하고 약속 다 잡아 놨었는데.”


“맞아. 그래서 지금은 재수생이시지. 공부라고는 일도 안 하시는.”


살짝 비꼬는 정일을 향해 아양 모드로 돌아간 참이가 물었다.


“아잉 아빠는~그 뒤로도 사정이 있었잖아. 그런데 그건 왜?”


참이의 코맹맹이 애교에 반쯤은 녹아내린 정일이 조곤히 따져가며 참이에게 확인을 구했다.


“그니까 그 사정들이 뭐뭐 있었는지 한 번 따져보자. 우선 수능날 교통사고. 이 때는 정말 큰일 날 뻔했잖아. 같이 가자니까 기어이 혼자 가더니.”


그 사고 이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온 정일의 잔소리 테이프가 다시 돌아가게 생긴 걸 느낀 참이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다음 달에 목욕탕 갔다가 넘어져서 팔 부러졌고, 그다음 주에는 병원 다녀오다가 타고 있던 택시가 브레이크 고장 나서 전봇대들이받았고.”


줄줄이 나오는 참이의 사고담에 정일도 보탰다.


“또 있잖아. 옆 가게에서 불나서 우리 한밤중에 도망 나왔었지. 불 끈다고 뿌린 물이 우리 집 천장에 다 새어들어와서 누전되고 우리 집도 불났었지.”


참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사고를 더했다. 해놓고는 아차 했지만.


“또 뭐가 있더라? 아, 맞다. 친구들 입학식 갔다가 소매치기 잡는다고 오토바이 막아서다 무릎 다 까졌었는데.”


“뭐? 난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언제 그랬어? 왜 말 안 했어?”


자신이 모르는 사고도 있었다는 걸 안 정일의 얼굴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 갔다. 별 일 아니라고 참이는 이번에도 장난처럼 넘어가려 했다.


“헤헤 미안해. 아빠가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다시는 밖에 안 내보낸다고 해서 그랬지. 그때 도와준 아줌마가 고맙다고 20만 원이나 준 걸로 아빠랑 치맥 했잖아.”


“야, 그런 돈인 줄 알았으면 안 먹었거든!”


“아빠, 이미 소화되고 똥까지 된 일이야 그만 넘어가장~응~?”


“야아, 그런 예쁜 입으로 똥 얘기가 하고 싶냐? 참이야, 나 죽어서 네 엄마한테 혼난다고!”


울기 직전인 표정의 정일을 보곤 참이가 아빠 손을 잡아주며 달랬다.


“아이고 우리 정일 씨 속이 타네 속이 타. 흐흐 이젠 얌전하다니까. 진짜야. 내가 먼저 나서지는 않아.”


“아주 아빠를 가지고 노는구나. 참이야 나는 너 없으면 못 살아! 알지?”


“그럼 그럼. 이 정참은 아빠 없어도 멋진 놈 만나 잘 살 수 있지만, 우리 순진한 정일 씨는 나 없으면 못 살지. 맞지?”


장난으로 받아치는 참이지만 정일은 한없이 진지하게 응대했다.


“그렇게 귀한 네가 이리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으니 내가 아주 미치겠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 걸. 지나가는 데 하늘에서 간판이 떨어지고 오늘처럼 땅에 싱크홀이 생기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참이의 작은 손을 잡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정일을 보며 참이도 가만히 기다렸다.

‘아빠가 뭐 하는 거지? 손 빼도 되나? 내가 너무 놀렸나?’


지루해진 참이가 슬그머니 손을 빼려 했다.


“결심했다! 가자!”


“아이고 깜짝이야! 아빠, 어딜 가?”


고개를 번쩍 들고 크게 외친 정일이 벌떡 일어나 가게 문을 잠그고 왔다. 딴생각하다 깜짝 놀란 참이는 아빠의 행동이 이상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가자고 하시면서 문을 안에서 잠그는 건 뭐지? 설마 치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며 참이가 어정쩡 일어나는데 정일이 그런 참이의 손을 잡고 다짜고짜 창고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아빠, 지하에는 왜 가?”


비장한 목소리로 정일이 대답했다.

“그분을 뵈어야 해. 다른 방법이 없어!”


그 대답을 들은 참이는 더 납득이 안 됐다.

“그분? 누군데? 왜 지하실로 가는데?”


참이가 궁금해하며 쉴 새 없이 묻는데도 정일은 비장한 표정으로 지하실 문을 열었다. 참이는 스무 살이 다 되도록 이사 한 번 안 가고 이 집에 살았는데도 지하실에 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또깍!”


정일이 스위치를 누르자 지하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좁은 지하실에는 상자 한 두 개만 놓여있고 텅 비어 있었다. 아빠가 한 말에 이런저런 상상을 하던 참이는 일반적인 창고 모습에 실망하며 다시 정일에게 물었다.


“에게, 아빠 여기는 왜 왔는데? 아무도 없는데?”


“기다려 봐.”


정일이 지하실 벽에 희미하게 간 금을 누르자 참이의 두 눈이 사정없이 커졌다.


“끼이잉 끼이잉!”

“뭐야 뭐야 우리 집에 비밀의 방이 있는 거야? 짱이다!”


“이리로 와, 참이야. 네게 꼭 해 줄 말이 있어.”


천천히 열린 벽 안으로 먼저 들어간 정일이 다시 나오며 참이를 불렀다. 아빠의 진지한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된 참이가 조용히 정일을 따라갔다. 

가보니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고 거기에는 나무로 된 침상이 하나 있었다. 커튼이 쳐 있어 안에 누가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침상 앞에 있는 작은 탁자에 딸린 나무 의자에 참이를 앉힌 정일이 입을 열었다.


“딸아,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비밀을 너에게 말해 줄 때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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