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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Jan 22. 2024

밥 짓는 냄새

사진출처:네이버

 주말 아침, 아이들 점심으로 김밥과 찹쌀 도넛을 튀겨 놓은 후,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위해 집을 나섰다. 때마침 위층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원망하고 있는데, 옆집 현관문이 열리며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왔다. 몇 년째 이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옆집 아주머니의 얼굴은 처음 봤기에, 어색하게 목례만 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고층으로 올라간 승강기가 더디게 내려오자 옆집 아주머니가 먼저 침묵을 깬다. “옆집에서는 매일 맛있는 냄새가 나요. 고소한 냄새와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나던데. 음식을 잘하시나 봐요.”라고 말했다. 나는 어색하게 “음식은 잘 못하는데, 아이들이 있어서 매일 밥을 해야 해서요. 혹시 냄새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으셨나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아니요. 요즘 집에서 밥 잘 안 해 먹는데, 옆집 새댁이 부지런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중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우리를 태우고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옆집아주머니와 나는 처음 볼 때처럼 목례만 하고 각자의 차로 향했다.


 우리 집은 4인 가족이며, 아들과 딸은 두 살 터울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밥을 중요시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있었던 일이다. 육아에 지친 내가 늦잠을 자면, 아이들 둘이서 내 머리맡에 앉아 머리카락을 당기며 “엄마 일어나. 배고파”라며 나를 깨웠다. 잠에 취한 나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이어가려고 하면, 아이들은 이불까지 벗기고 “엄마 빨리 밥 줘”라며 머리카락을 더 세게 당겼다. 마지못해 일어난 나는 반쯤 감은 눈으로 아침밥을 차렸다. 그만큼 밥을 중요시했다.

 남편과 딸은 아침 형 인간이다. 주말 아침, 새벽 6시가 되면 두 사람은 각자의 방에서 그의 동시에 눈을 뜬다. 그리고 딸은 거실로 나와 TV를 켜고, 남편은 아침운동을 간다. 오전 8시가 되면 남편과 딸은 번갈아 가면서 “배고파 밥 줘”라며 나를 깨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말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일어나 밥을 차린다. 물론 너무 피곤한 날은 ‘배고파’라는 말을 못 들은 척하고 10시까지 버티기도 한다. 그러면 성질 급한 남편은 혼자 밥을 먹고, 아이들은 과일 등 간식거리로 허기를 채우며,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나는 주말에도 어김없이 아침밥을 차리고, 곧이어 점심을 차리고, 해질 무렵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나만 빼고,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삼식’이다.


 나는 밥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 끼를 건너뛰어도 괜찮고, 대체 식으로 고구마, 과일 등을 먹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저녁 형 인간이 이라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무척 힘들다. 하지만 꼭 ‘삼식’을 고집하고, 식사 시간을 지키는 가족들이 나에겐 버겁다. 그래도 결혼 10년 이상 경험의 노하우로 ‘삼식’인 가족들을 위해, 전날 밤에 다음날 아침을 준비해 놓고 잔다. 그러면 다음날, 예약해 놓은 밥은 다 되어 있고, 찌개는 데우기만 하면 되고, 밑반찬은 꺼내기만 하면 되니, 아침이 그리 바쁘지 않다. 이렇듯 삼식을 먹는 가족들 때문에 우리 집은 끊임없이 음식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나는 음식 솜씨가 젬병이다. 결혼 초에는 남편 입맛만 대충 맞췄는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음식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나 같은 고민을 우리나라 주부들이 많이 하고 있는지, 세월의 변화 속에 ‘밀키트’등 간편 음식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그래서 나는 ‘삼식’인 가족들을 위해 가끔 간편식을 이용한다. 그러면 가족들은 내 음식 솜씨가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엄마 손맛을 외면하고 간편식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엄마 음식은 가족의 건강을 위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밑바탕이 된다


 우리 집에 또다시 저녁이 찾아왔다. 오늘 뭘 먹을까? 고민을 하던 중, 문득 옆집 아주머니의 말이 되새겨졌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 매일 집에서 음식 냄새를 풍기지만, 아이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면 그 밥 짓는 냄새가 그리울 거예요”라는 말. 그 말을 생각하니,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는 있지만, 이 시간들의 소중함도 보였다. 그래서 가족이 모두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오늘은, 삼겹살 한판 맛있게 구워보려 한다. 벌서부터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늘밤은 고기냄새와 상추 한 쌈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우리 집 담장을 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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