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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Dec 13. 2022

불안을 선택할 뿐

불안을 선택할 뿐


내정된 결과가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과를 뒤바꿀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밀려오는 불안감은 도무지 막을 수가 없다

공을 차는 사람과 막는 사람, 둘만이 남은 상황에서

결과는 확률의 싸움이기도 했다

골키퍼는 골대 앞에 서는 것 외에도 많은 것으로부터

이미 불안감을 느껴왔다 불안은 그의 선택이었다

공격수와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관객은 별로 없다 응원하는 팀을 떠나 골이 들어갈

확률을 계산하는 관객들은 실축을 바랄 뿐

막을 수 없다는 기정사실로 골키퍼를 압박한다

공이 차인 후에야 골키퍼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들어가면 공격수를 칭찬한다

들어가지 못하면 공격수를 책망한다

넣어야 함과 막아야 함이 갖는 불안의 크기는 같다

이겨낼 수 있지만 이내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온다

결과 앞에 선 선수들은 그저 공을 넣고 막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그저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페터 한트케


전직 골키퍼 블로흐는 은퇴 후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한다. 실직자 신세로 무의미하고 엉망인 날들을 보내던 중 출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극장 직원을 충동적으로 살해하고 만다. 도망친 블로흐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쫒는 경찰들의 추적에 불안을 느낀다.



4년마다 스포츠계에 화젯거리를 몰고 오는 월드컵도 이제 준결승에 이르렀다. 늦은 시간대 때문에 제대로 본 경기는 거의 없지만 아침에 뉴스를 틀었을 때 전해오는 경기 결과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가 있다.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영국인이라 축구를 좋아하고 월드컵에도 열광적이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얼마 전 프랑스에 패배해 결선 토너먼트에서 떨어졌는데 한 선수가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실축을 했다더라. 연장 전 끝에 승부차기까지 간 경기들도 있었는데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다.


이렇게 큰 대회의 승부차기를 보며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제목과 다르게 정작 작품은 축구가 아닌 블로흐라는 인물의 우울한 내면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그가 줄곧 느껴온 불안감과 관계가 있다.

전에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들어가지 않은 페널티킥을 두고 왜 '골키퍼의 선방'보다 '키커의 실축'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지. 친구는 페널티킥 상황이 골이 들어갈 확률이 높은, 키커에게 유리한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즉, 페널티킥은 키커 입장에서는 당연히 골을 넣어야 하는 기회이지만 골키퍼는 설령 공을 막지 못하더라도 크게 비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키퍼가 선방에 성공했을 때 더욱 환호하기도 한다.

사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그렇다. 골이 들어갈까 봐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축구는 골이 들어가는 장면이 가장 재밌는데, 이 재밌는 장면을 두 손으로 계속 쳐내야 하는 포지션이다. 물론 관중들은 선방에도 환호하고 골키퍼의 활약을 칭찬하지만,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는 대체로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슈퍼세이브는 결코 골보다 중요해질 수 없다.

골키퍼를 그만두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블로흐는 계속 불안감을 느낀다.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실직인 상태에서도 그는 인생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블로흐의 태도와 요즘 월드컵에서 활약하고 있는 골키퍼들의 태도는 많이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는 불안감을 긴장감 혹은 스릴이라고 부른다. 불안감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원동력 삼아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키퍼의 선방은 이런 태도에서 시작된다.

축구 경기든 직장 생활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되어 있고 이 때문에 가끔 답답하기도 하다. 막을 수 없는 공 앞에 서있는 것만 같은 무력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럼에도 몸부림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골키퍼는 방향을 정하고 움직인다. 사실 막을 수 없는 것을 미리 알 수는 없다. 움직여보기 전까지는.

 


민음사에서 발간한 세계문학전집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의 표지는 뭉크의 절규이다. 잉글랜드의 키커가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의 잉글랜드의 관중들이 딱 이런 모습으로 절규했더라.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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