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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Nov 03. 2022

부캐 아닌 본캐를 작가로 삼으려면

Writer's block Diary: 24일째 

Photo by Sigmund on Unsplash


직장에서 작가임을 밝혔을 때의 반응 중 가장 참신했던 것은 이거였다.


"오, 부캐가 있으셨구나!"


별다른 기대나 고민 없이 들어온 직장이었다. 가끔은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는지, 이제 와서 직장에 뿌리를 내릴 수가 있을 것인지, 본캐라고 믿고 있는 작가가 부캐로 전락한 상황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고민에 사로잡히곤 한다.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작가 또는 예비작가들은 글쓰기 외에 수입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 역시 <글쓰기를 위하여>에서 아래와 같이 고백한다.


처음에는 싸구려 잡지에 감상적인 로맨스 소설을 써서 밥벌이를 하며 진지한 문학 작품을 집필하려고 했어요. 그런 글이 돈이 된다고 ‘라이터스 마켓Writers’ Markets’에서 알려주었거든요.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로맨스물이 나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쳤지요. 다음으로 세운 계획은 언론학교를 졸업한 다음 신문사에서 일하는 것이었어요. 한 종류의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원하는 다른 종류의 글도 쓸 수 있겠다 싶었지요. 그러면 지금쯤 캐서린 맨스필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섞어놓은 듯한 작가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자(부모님이 내 의지를 꺾기 위해 대령한 둘째 사촌)와 이야기를 나눠본 뒤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여자는 부고 기사나 여성 면 외에 어떤 기사도 못 쓴다고 하지 뭐예요. 그래서 나는 여전히 꿈에서 나를 괴롭히는 대학입학시험을 쳤고, 합격과 동시에 집을 떠났습니다.


작가와 병행하는 직업으로는 대체로 학원강사, 대학교 강사, 교사 및 교수, 출판사 편집자, 신문 및 사보 기자 등이 있고 스토리 회사에서 자기 작품이 아닌 회사에 귀속되는 콘텐트를 만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그 외에 작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직업으로 삶을 영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상 생계를 온전히 글쓰기의 대가로만 생활하는, 전업 작가는 극소수이다. 물론 일자리를 포기하여 잠시 실업하는 기간 동안에만 전업 생활을 영위하다가 도로 생업에 돌아가거나 결혼을 한 뒤 아이가 생기지 않는  동안 작가가 되거나, 육아를 마친 뒤 다시 글을 쓰는 일도 가능은 하다.


이런 삶은 확실히 사원에서 대리로, 과장, 부장 또는 차장에 머무르거나 또는 나아가 임원이 되는 회사원 테크트리와는 거리가 먼 삶이다. 문학 뿐만 아니라 예술을 하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창작물이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공통적으로 이 지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며, 어떻게든 생계를 해결하고 창작을 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창작의 길을 접어야 한다.


영화 <라라랜드>에서도 로맨스의 형식을 빌어 이같은 군상을 제시한 바 있다. 한쪽은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커피숍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또다른 쪽은 재즈 카페를 열어 본인의 멜로디를 자유롭게 연주하고자 하나 사랑에 빠져 안정적인 삶을 꿈꾸게 되면서 추구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상업적인 음악가가 되는 남성으로.


궤도에 진입하기 전에 하는 창작 행위가 전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라면 2007년 초, 한국일보에서 기획기사로 내놓은 <신춘문예 당선자는 신춘고아>에서도 상세히 다뤄진 바 있지만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701142313671020


지면은 늘 부족하고, 글값에는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반영되기 어려우며, 필자와 저자는 이미 과포화 상태이고, 출판사와 서점은 오늘도 울상이며, 유수한 문학상을 받은 작가조차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이제라도 웹소설이나 드라마를 써야 하는지 수시로 고민한다.


경우를 좀 더 말하자면, 원래는 공무원이 되어 설가 배수아의 길을 걷고자 했었다. 병무청에서 근무하며 결국 소설가가 되고 독일로 떠난 그녀의 이력을 감히 내 것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나는 그녀처럼 그 안에서 버틸 수 없었다. 하루치 업무에 온 정신을 쏟아붓고 나면 새로운 생각이라는 것이 들지 않았으며 그 사실은 실제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워라밸이라는 걸 간신히 만들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도 잭팟은 터진다. 누군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어떤 출판사는 몇 해치의 수입을 신인 작가의 단 한 권의 책으로 얻는다. 그 주인공이 나이길 소망하지 않는 작가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런 세속적인 데 정신을 팔 새는 없다. 오늘도 먹고 자고 입어야 하며, 제정신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며, 손톱만큼의 힘을 비축하여 내 문장을 쓰기에도 바쁘므로.

 

작가라면 누구나 전업 작가가 되길 소망하겠지만, 아니어도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다. 원하는대로 인물을 빚어낼 수 있다. 그 인물들에게 입을 그려넣을 수 있다. 걷고, 뛰고, 섹스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서로 싸우게 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가도 출구를 찾게 하고, 죽거나 살게 만들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러한 삶도 있으며 이러한 정서도 존재한다고 암시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글을 쓰는 건 정신적 자유와 만족감을 얻기 위함이므로, 생계를 위한 일이 무엇이 되었건 해보겠다는, 설령 그것이 김밥을 말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이라도 감내하겠다는, 나름대로의 다짐이 있었다. 씀으로써 자기 충족을 달성했다고 해서 독자를 비롯한 나머지를 죄다 무시하겠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도리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결심에 가깝다.


앞으로도 글쓰기와 생계 해결,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기 목 빠지게 바라며 살지는 않겠다.  갈망하는 부분에 집중하기엔 인생은 지나치게 길 테니까. 기왕 태어난 김에 즐겁게 살고 싶을 뿐이고, 기왕 쓰기로 했으니 즐겁게 쓰고 싶을 뿐이며, 이 다짐을 제발, 부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까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Writer's block Diary 시리즈 1~20일째 글은 아래의 브런치북 <작가들은 대체 왜 그래?>로 묶어둔 상태입니다. 브런치북과 매거진의 글은 한데 묶을 수가 없는 관계로 부득이 21일째 글부터는 매거진 <라이터스 블록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계속해보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이전 글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브런치북을 이용 부탁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ritersbl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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