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리 Dec 26. 2022

계속 쓰기!

Writer's block Diary: 28일째


이 여성은 누구일까?


나도 몰랐던 사람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었고, 영원히 그렇게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할 예정이 되었다. 비록 그녀가 대한민국 서울 어딘가에 살아 숨쉬는 나란 존재를 평생 모를지라도.


이 사람의 정체는, 자서전 및 소설을 쓰는 작가 대니 샤피로(Dani Shapiro).


국내에 출간된 소설은 아직 없다. 작법서이자 에세이인 <계속 쓰기 Still Writing: The Perils and Pleasures of a Creative Life>가 유일하게 출간되었는데, 주변 작가들이 한마음으로 추천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영접하게 되었다.


한때 수많은 작법서와, 작법서 비슷한 에세이를 읽어치웠다. 적어도, 2010년쯤까지 국내에 번역된 것중 내가 읽지 않은 작법서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가 김초엽은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 <책과 우연들>에서 일종의 부적이자 상징으로서 작법서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나는 그렇게 순수한 관점에서 작법서를 대하지 못했다. 샤피로의 <계속 쓰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물론, 이 이전에도 훌륭한 작법서는 있었다.


가령 로버트 맥키 Robert McKee 의 <스토리 STORY>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에게는 거의 바이블로 굳어졌는데, 장편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다. 이전 회차에서 언급한 바 있는 콜린 윌슨 Colin Wilson 의 <소설의 진화 The Craft of the novel>나 <아웃사이더 Outsider>는 또 어떠한가.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세계고전의 해석에 천착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 책들은 소설의 본질을 날카롭고 유니크하게 도려내 보여준다.

대중문학 작가들의 제왕, 스티븐 킹 Stephen King 역시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라는 역작으로 자신의 작법을 유쾌하고도 진지하게 풀어낸 바 있다.


그런데 당연한 소리지만, 이런 작법서를 읽는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작가지망생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만 작법서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것저것을 따라하려다 스스로의 리듬을 잃고 망가지게 될 수도 있다. 


태어나 지금까지 작법서를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그냥 엄청나게 잘 쓰는 인간도 버젓이 존재한다. 심지어 어떤 작가들은 작법서를 방사선 취급하면서 피해다니기도 하는데,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봉준호는 한 프로그램에서 "좋은 작법서를 보고도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할까 두려워서" 작법서를 보지 않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디마마스터클래스 프로그램, 동아예술대학 강의, 2020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uvellevague&no=594584

 https://www.youtube.com/watch?v=HeiiHZx-BjM

https://www.youtube.com/watch?v=DRlCXG0OPL0

  

글은 그냥 글을 읽고 쓰는 동안 절로 배워질 뿐이다.


게다가 작법서는 죄다 거꾸로 씌어진 책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까, 작법서는 어떤 작품이 좋은 이유를 역으로 계산해서 찾아내고, 이를 패턴화한 게 대부분인데 사실은 그 패턴화조차도 들어맞을 리가 없다. 양산형 웹소설이라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진정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수학공식과 과학이론 같은 걸 통해서는 태어나지 못한다. 절대, 절대로. 그런 이야기엔 다만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에서 꺼낸 감정들이, 그 감정들을 자아낼 수 밖에 없던 상황들이 필요할 뿐이다.


다시 말해, 훌륭한 작품을 쓴 작가에게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는 건 바나나나무에게 가서 바나나를 어떻게 열리게 했는지 물어보는 일과 같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왜 샤피로의 <계속 쓰기>가 계속 쓰고 있는 작가들에게 훌륭한 가이드인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샤피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냥, 쓰지 못하는, 쓰고 실패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외우는 주문이나 기도문과 같은 글을 썼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글쓰기의 여정에서 빠지기 쉬운 여러가지 함정을 정확히 보여주고, 거기서 발판이 될만한 것들을 던져놓았다.


잘 쓰는 작가가 잘난척 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샤피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그 마음이 어찌나 티없이 맑은지, 심지어 흙탕물 속처럼 어지러운 과거사며, 닥쳐오는 현재진행형 골칫거리마저도 샤피로의 언어를 통해서 글쓰기의 동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렇기에 분의 소설이 어서 번역되어 나오길 바래본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는데, 누구에게나 그럴런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맞는 옷이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 되기도 하니까. 내가 지금 글에 대해 지껄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절대로 절대적이지 않다. 나는 그저 스스로에게 매일 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써두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결국, 작법은 내 스스로 만든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 여러가지 관점에 흔들리거나 속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샤피로 같은 책을 만나더라도, 결국 글은 내가 주인이고, 주인공도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짧아도 됩니다. 그것이 이야기이기만 하다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