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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 Jan 15. 2023

스물 아홉, 독립

Home Sweet Home

스물 아홉을 딱 이틀 남기고, 독립을 했다


‘서른 전에는 완전한 독립을 해야지’

‘결혼 전에는 꼭 혼자 살아봐야지’

(여태껏 단 한번의 자취 경험도 없음. 기숙사조차도 가본 적 없음)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던 목표였는데

스물 여덟이 되자 살짝 조급해져서

작년 초부터 적금도 꽤나 많이 붓고

내가 살고싶은 동네를 이곳저곳 알아보고 다녔더랬다.


사실 2023년 가을쯤 나가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

적금도 23년 여름을 만기로 해놨으니.


그런데 2022년은 나한테 대체 무슨 거대한 변화의 해였는지.


그래 니가 행복하면 됐지 뭐

4년 만나고 결혼을 얘기하던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갑자기 혼자서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으며,

28년간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잠수경을 쓰고 바다에 뛰어들어갔다가.. 새벽 수영도 배워보고,

평생을 못 먹던 커피도 꽤나 즐길 수 있게 됐고, (나도 이제 아아 시럽없이 먹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개팅도 해보았으며..?

회사에서 맡고 있던 업무도 바뀌어서 되도 않는 영어와 손짓 발짓 동원해 해외출장을 다녀오지를 않나…


아무튼 몇 달 사이에 삶이 송두리채 바뀌었다 해야하나.


그 과정 속에서 안그래도 모험 정신 넘치던 나는

겁대가리를 거의 상실했고… 더 부지런해졌고… 웬만한 일에는 눈물 한방울 안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다 바뀌어버린 김에 집도 나가버리자고 결심했다.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녀보니 생각보다 나는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이더라고…

이제는 진짜 독립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독립을 선언한 딸내미때문에 아빠는 며칠 정도 혼란스러워했지만,

(엄마는 집 조용해지고 내 방 쓸 수 있다고 약간 즐거워했다)

어쩌겠는가? 결국 나랑 같이 집도 봐주고, 계약하러도 같이 가주고, 이삿짐도 옮겨 주었다.


독립 선언부터 이사까지 한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이뤄지는…

엄청난 실행력 탓에 12월은 어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집 보고, 계약하고, 대출받고, 해외 출장 갔다가, 제주여행 갔다가, 돌아와서 가구 주문하고,

이사하고 정신 차렸더니 12월 31일이더라.


한 해의 마지막 밤을 온전한 내 집에서 보내고 있으려니 마음이 이상했다.

행복하면서도 외로우면서도 뿌듯하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집에 들어왔다

무려 한강뷰 신축 오피스텔…

(금수저 아니에요 -_- 내가 모은 돈, 내가 앞으로 벌 돈, 은행이 빌려준 돈 영차영차 합쳐서 들어옴)


월세니 대출이자니 관리비니 생활비니

앞으로 숨 쉴때마다 돈이 사라질텐데…

이걸 감당하면서까지 나가 사는 게 맞나?

나 너무 무리했나? 생각도 들었지만


이 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또 이런 집에 혼자서 신나게 살아보겠나 싶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되, 남편도 애도 없는 삶이 인생에 몇년이나 된다고 이 기회를 놓쳐!!

(이렇게 쓰고 평생 결혼 못하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함)


아무튼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나와 산지 3주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든 가벼운 생각은


사람 한명이 사는데 필요한 게 왜이리 많은가.

먼지랑 머리카락은 청소하고 뒤돌면 왜 또 쌓여있나.

분리수거가 무서워서 택배를 못시키겠다.

그럼에도 쿠팡 없었으면 큰일났겠다 싶음 (사랑해요 로켓와우)

내가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이었던가.

서울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서울에서 술먹고 서울에서 자는 게 이렇게 편할 일인가?

그럼에도 복층집은 꽤나 위험하니…

부디 이곳에 살면서 술김에 발을 헛디뎌 병원갈 일이 없도록 해보자… 정도.


가볍지 않은 생각은


이 작은 집 하나 관리하기에도,

장성한 나 하나 키우기에도 이리 힘든데,

엄마 아빠는 지금껏 어떻게 아이 둘을 뒷바라지하며, 30년간 직장을 다니며,

여러가지 어른의 일들을 해오며 살았는가…?

28살에 어떻게 나를 낳았는가? 어???

옛날과 요즘의 나이 계산법은 다르다지만 그래도 믿기지가 않는다니까.


하지만 이제 몇 년 후면 나의 일일지도 모른다.

당장 한 달 뒤의 일도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다가올 내 30대를 더 멋지게 살기 위해

스물 아홉은 혼자서 사고도 많~이 치고 혼자서 열심히 해결하며 살아가보려 한다.


나영 힘내… 화이팅…

이거 쓰고 꼭 설거지하러 가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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