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나는 제주의 관광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동네 주민들만 모여 있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을 매번 찾아간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그 중에서도 신도3리는 음식점도, 카페도, 그 흔한 편의점도 하나 없는 아주 조용한 마을이다. 서울에서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 걸리는 게 편의점이지만, 여기는 아주 작은 점방조차도 없어 가기 전에 꼭 허기를 달래줄 맥주와 요깃거리들을 챙겨야 한다. 다행인 건 제주 버스치고 배차 간격이 잦은 202번이 신도3리 동사무소 앞을 지나친다는 것.
이 고요한 마을에 터를 잡은 유일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는다.
해가 지기 두 시간쯤 전, 미리 사온 과자를 하나 집은 후 동네를 하염없이 걷기 시작한다.
밭에는 계절마다 마늘이, 배추가, 옥수수가 자란다. 밭에는 농사짓는 주민들이 있고, 트랙터가 있고, 신기하게도 무서운 마음이 들지 않는 묘지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비슷비슷한 집들, 고만고만한 밭들 밖에 없으나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오름이 많고, 날 좋을 때 한라산이 보이는 곳이 동쪽. 수월봉의 정자가 보이면 북서쪽. 신기루같이 보이던 바다가 점점 모습을 드러낼수록 나는 서쪽으로 가는 중이다.
걷다보면 익숙한 동네 강아지 고양이들도 만날 수 있다.
밭 사이사이로 나있는 작은 길을 따라 제멋대로 걷다가, 해질 무렵이면 바다 쪽으로 방향을 튼다.
운이 좋으면 남방큰돌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돌고래를 보러 대정읍에 온다. 사실 여기는 잠시 지나치는 돌고래보다는 노을이 좀더 아름다운 곳인데.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하면 신도포구 앞에 앉아 과자를 뜯는다. 노을을 먹는다. 빨갛게 얼룩진 하늘이 새까매질 때까지 오랫동안 꼭꼭 씹어 먹는다. 바다도, 하늘도, 오름도 똑같이 까매져 나침반 역할을 못할 때쯤이 되면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손에는 다 먹은 과자 봉지를 꼭 쥔 채, 일상으로 돌아가도 오늘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고 몇번이고 아까 본 장면을 되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