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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쥴리 Jan 07. 2024

집안일, 우울, 흐린 눈

네버엔딩

집안일은 끝이 없다. 나도 안다. 매일매일 열심히 해도 현상 유지 정도만 할 뿐. 새로 정리를 하는 것은 추가적인 일인데 그걸 할 시간이 생각보다 없다.


나의 경우 아침에 열 시쯤 일어난다. 일어나서 세수양치하고, 리나(고양이) 화장실 치워주고, 밥을 주고, 물(은 일주일에 두 번 갈아준다.)을 갈아주고 부엌에 와서 정관장 활기력을 하나 뜯어먹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설거지하고 나면 거의 열 시 반에서 열한 시가 된다. 열 시 반이 뭐여... 솔직히 그냥 열한 시임. 청소기 돌리고 나면 열두 시, 화분 물 주고 나면 한시, 늦은 아점 먹고 나면 두시. 솔직히 밥도 대충 먹어서 그렇지 차려먹으면 세시 넘음. 그래서 안 차려먹는다. 그리고 인스타 한두 개 올리고 나면 저녁시간임. 이미 이때쯤 되면 너무 우울하다. 하루종일 한 게 없는데 (없진 않지만 있지도 않음) 벌써 저녁이다 싶어서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다. 티비에서 여섯 시 내 고향이 시작하면 거의 기분은 멸망임. 여섯 시 내 고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는 엄빠가 왜 그렇게 재미도 없는 여섯 시 내 고향이며 뉴스를 열심히 보시나 했는데,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찾았던 다름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내가 요즘 그렇다. 책이라도 한 권 읽고 싶은데 리나랑 좀 놀아주고 인스타 조금 보면 남편이 퇴근한다. 남편이 오면 남편이랑 같이 밥 먹고, 차 한 잔 하고 얘기 조금 하면 잘 시간이다. 그래서 밤 시간을 쓰고 싶은데 자러 가야 하니까 그것도 안된다. 그렇게 또 내일이 오고,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소소한 집안일을 하다가 고개만 돌리면 할 것 투성이라 A라는 일을 다 하기 전에 B라는 일을 급 시작하고, B를 끝내기 전에 C가 눈에 띄어서 하다 보면 ‘아, A 하고 있었지!’ 싶다. 성인 ADHD인가? 어쨌든 이렇게 집은 점점 어지러워져 만가고 기분은 점점 나빠진다. 그래서 집안을 돌아다닐 때는 흐린 눈 필수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또 쉽지 않음. 눈에 보이는 걸 어떡함? 점점 집중력도 떨어지고 능력치도 떨어지고 이렇게 늙고 지치고 퇴화해가는구나 싶다. 이렇게 살다 늙어 죽겠지? 이렇게 살 거면 뭐 하러 살아야 되나 싶다.


풀멍냥, 식멍냥, 온실 죽순이 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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