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돈을 써서 만족을 얻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무욕한 인간인데다, 무슨 물건이든 10만원을 넘어가면 구매하기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스크루지라서, 옷이나 장신구들을 사는 행동들은 내겐 그저 번거로운 과소비로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연스레 콜라나 치즈케이크를 먹는 일 이외에는 적게 소비했고, 돈을 쓰는 일이 있어도 가까운 사람, 혹은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챙겨 주거나 친구들에게 한턱을 내는 일에만 돈을 쓰곤 했다.
물론 이런 소비 습관이 오로지 내 이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감격해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기도 했거니와 가까운 사람들과는 관계를 돈독히 했다는 만족감도 얻었기 때문에, 나는 내 편익을 위해서라도 선물 주는 것을 즐기곤 했다. 게다가 내 선물은 관계의 미래를 위한 투자의 성격도 일부 띄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 동등한 보상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선물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선물주기에 급격한 회의를 느끼게 된건 불과 몇 일 전의 이야기였다. 나는 여느때와 같이 카카오톡을 뒤지다 문득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새로운 알림(작은 빨간색 동그라미)이 와 있는 것을 보고 선물 구매 페이지에 들어갔고,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엔, 페이지 한견에 놓인 '선물함'에 눈길이 가서 거기에 홀린듯 들어갔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내 선물함을 보고나선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준 선물 내역들은 가득한데에 비해, 내 선물함은 너무도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선물 내역과 선물함이 유독 비교되어보였던 이유는, 내가 선물했던 사람들 중에 지금 나랑 연락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 내 선물은 투자의 성격을 일부 띄고 있었기 때문에, 선물의 결과가 이런 연락 두절이라면 내 선물은 투자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실리적으로 보면 그렇고 감정적으로도 기분이 좋을리 만무했다. 나는 기껏 신경써주고 돈써줘가며 마음을 표현하고 다니는데, 정작 내 선물함은 텅 비어있고. 연락은 끊겨만 가니 이런 상황에선 실망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날따라 유독 '나에게 선물하기' 기능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수가 없었다. 얼마나 보답을 못받으면 저런 기능이 따로 있을까하고 말이다.
나는 카카오톡을 벗어나서 생각해봤다. 내가 기프티콘말고 선물을 준 적이 없었나? 하고 말이다. 물론 있었다. 아니 훨씬 많았다. 입대 전 파리바x트 빵집에서 카스테라를 사서 선물용 봉투에 담아 갔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고 복무중엔 px에서 일주일에 두개밖에 살 수 없는 닥터지 달팽이 크림을 꾸준히 모아 휴가때마다 열댓개를 모아 나갔으니, 엄마에게 준 10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남들에게 간게 분명했다. 내가 기프티콘을 쓰기 시작한 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면대면으로 선물을 줄 수 없게 되어서였다. 설날이나, 추석, 이런 행사들은 내겐 선물을 주기위한 변명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지속되온 내 선물의 역사 중에서 내 정성을 알아줬던 사람은 손가락, 아니 포크의 가지수보다도, 아니 있기는 한지 의문이었다. 대부분 받을 당시에만 고맙게 여길뿐, 그 감사함이 기억에까지 남는 일은 결코 없었다. 주면 주는가보다, 재는 원래 그런가 보다 하면서 말이다.
아빠가 공장에서 일찍 돌아오시는 날이면 그날은 대게 공장옷을 다 벗으시고 깨끗이 씻으신 다음에 밝은 색 톤의 외출복이나 깔끔한 정장을 입으시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그때마다 어디 가시냐고 물으면. 아빠는 고향친구 경조사에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빠의 입에서 고향친구라는 말이 나올때마다 참 이질적이라고 느꼈다. 왜냐면 아빠가 고향친구를 말할때의 그 어감에서 마치 직장동료나 그냥 아는 사람을 말할 때의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가끔씩 아빠가 엄마와 대화하며 나는 모르는 친구분의 이름이 오간다는 것도 알고, 고향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이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도 아는데. 나는 아빠가 고향친구의 이야기를 할 때면 친한 사람을 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 의문을 가진 내게 어느 한날은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해주신적이 있었다.
"네 아빠가 고향친구들한테 엄청 잘해줬었어, 밥사주고 돈 빌려주고, 대신 싸워주고. 되게 정성이었지. 근데 아빠 성격이 좀 불같으시잖니, 그래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하기 시작한거야. 잘해준건 하나도 안남고 아빠가 화낸거만 기억에 남은거지."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아빠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마음과 정성은 넘쳤지만, 요령을 부릴 줄 모르셔서 보답받지 못하셨던 분. 아빠와 아들이 닮아서, 이런 역사조차 닮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쓸쓸한 마음에 애꿏은 선물함만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핸드폰이 혹시나 서프라이즈라도 해주기 위해 받은 선물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하지만 핸드폰은 늘 그래왔듯 오직 쓰라린 진실만을 화면 너머로 보여주는 배려 없는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