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와케이크 Feb 10. 2022

친했던 누나와의 추억 2

 어느 일요일 날 나는 다른 때와는 달리 혼자서 예배를 드렸다. 영이 누나를 만나기 전까진, 나는 원래부터 모든 예배를 혼자서 드리고 있었기에, 혼자라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않은채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오자 평소와는 달리 조금 차분한 얼굴의 영이 누나가 나를 불렀다. 내가 누나의 앞으로 다가가자, 누나 대뜸 내 왼손을 가져가 자기의 두손으로 감싸쥔다음 말했다.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나는 그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아 그저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차가운 손에서 전해져 오는 냉랭함만을 멍하니 느끼고 있었다. 곧이어 나는 태연한 척 누나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까 괜찮다' '우린 같은 곳에서 같은 걸 보고 있었지 않느냐' 고 능청스레 말했지만 그게 뭐냐며 까르르 웃는 누나의 웃음에도 웃지 못하고, 그녀의 말을 여러 번 곱씹으며 뭐가 그리 미안했는지, 왜 미안했는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누나와 자주 예배를 같이 드렸던 것은 맞았지만, 그것은 같이 다니다 보니 무언의 합의로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었지, 실제적인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즉 누나는 어긴 것이 없었기에 내게 미안해할 일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던 대로, 누나의 모든 행위가 그저 공무원의 업무 수행이었다면, 누나의 그 '사과'는 완전히 불필요했다. 나는 그게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 후, 나는 누나가 내 손을 잡고 조곤히 사과하던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누나를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껏 누나의 행동을 기다리기만 했던 수동적인 태도에서, 내가 먼저 다가가고, 괜스레 장난을 치기도 하며, 이유 없이 작은 선물들을 주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이러한 시도들을 했던 건, 내겐 일종의 '실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저 누나가 내가 역으로 다가가서 관계에 무거움을 남기려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뒷걸음질을 칠까, 아니면 부담스러움에 은근슬쩍 발을 빼려들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특유의 활발함으로 내 사소함에도 크게 반응해주고 고마워하며 내 성의를 뿌듯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이런 사소함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결과를 도출하려는 내 실험은 마음속에서 점차 잊혀 갔고, 우리는 몇 주내에 서로가 서로의 부재를 의식하고 신경 써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 하루 누나에게 모습을 안 보이는 날이 있으면, 다음 주에 만나서 내 몸 이곳저곳을 때리고 왜 얼굴을 안 보였냐며 나를 다그쳤고, 그런 누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관계가 쌍방이구나 하는 안심이 들곤 했다. 

 누나는 내 생일날, 선물과 함께 준 편지에서 나를 신경 쓰고 있으며 언제든 내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고 적었다. 나는 그 짧은 편지에,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기분에 휩싸이고 있노라면, 이전에 있었던 실패의 기억들은 마치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마취되는 듯했다.

 그때부터 누나는 내게 있어 무거운 존재가 되었다, 나는 내 관계 속에 무겁게 내리 앉은 그녀의 존재감을 느끼면서부터 누나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욕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계기는 별 것 아닌 것이었더라도 매 아침, 거울 속에 비친 지겨운 나 자신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서, 누나 동생과 닮은 사람이 아닌, 교회 아는 동생이 아닌, 순수한 나 자신의 모습만으로 이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친분이라는 건, 항상 가파른 상승곡선을 지나고 난 후엔 언제나 경사 진 내리막만을 앞에 두게 되는 것이라서 나는 갑작스레 가까워진 누나와의 관계에 충만한 기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곧 찾아올 내리막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더 이상 새내기가 아니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쌀쌀맞아질지도 모른다.'
'내가 입대를 하면 내 빈자리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리라.'

 

이러한 불안은, 내 마음속 기저에 깔린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 시기의 내게 '잃는다'는 것은 애써 외면하고 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실패를 다시금 마주하게 하는 가장 큰 약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나로서도 어찌하지 못할 내상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그 '전조'를 발견하기 위해, 눈을 붉히기 시작했다.


 누나의 활발함은 밝은 빛에 드리운 그림자와 같이 양면적이라서, 어느 하루만 텐션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하더라도, 그 분위기에 드리운 어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마침 그날이 그랬다, 그날의 누나는 몹시 차분했었다. 평소와 다르게 정적이고 느릿해서 묘하게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나를 보고도 본체만 체 했으며, 마치 일부러 옆에 있던 나를 계속해서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날 느꼈던 건 서운함을 넘은 불길함이었다, 내가 걱정했던 관계의 냉각이 벌써부터 이렇게 전조를 드러내는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서운함을 느낀 사람이 보여주기엔 조금 과한 표현으로 누나와 누나 친구가 모인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때 누나가 지은 표정은 당혹감의 정도가 커서 충격을 받은 것에 가까웠던 얼굴이었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려 나가는 그 순간부터 내 표현이 과했고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질러 놓은 일을 뒷수습하는 법은 전혀 몰랐고 당장의 서운함도 컸기에, 단지 연상의 위치에 있는 그녀가 관대함을 발해 주기를 바랐다.

 그 일 이후로 사과가 오고 가는 일은 없었다. 누나는 늘 그랬듯이 본인의 장점을 살려, 밝은 분위기를 치장한 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게 다가왔고 나도 그녀의 태도 앞에서 차마 다른 얘기를 하지 못하고 같이 아무 일 없었던 척했다. 나는 누나가 내게 실망했을 거라 생각했고, 마땅한 해명을 했어야 했겠지만, 내가 그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날 누나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던 것은, 우연히, 갑작스레 맺어진 누나와의 관계에서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누나와의 첫 갈등이었던 그 사건 이후로 '전조'를 발견하려는 내 집착은 더욱 깊어졌다. 어떤 상처에도 마치 엄살처럼 방어기제를 세우는 게 습관이 된 내게 있어 그날의 갈등은 내가 품고 있던 불안의 증거와도 같았기에, 나는 가슴속에 그러한 의심들을 쌓고 미리 실망함으로써 어쩌면 찾아올지도 모를 상처의 아픔을 미리 완화시키려고 했다. 게다가 그 시기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공장도 바쁘고 일까지 잘 풀리지 않으면서 같은 공장 직원이자 가족이었던 나는, 그 어딘지 모르게 혼란스럽고 차가운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속에서 같이 증폭되고 있었다. 

 그런 내 눈에 모든 게 과장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누나 역시 내게서 낯섦을 느꼈기 때문이었는지, 이후 우리의 관계에는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거리감이 생겨난 듯했다.  물증이라 말하기엔 애매하지만, 괜한 의심이라 말하기엔 분명한 데면데면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른스러울 것 까지도 없었다, 세련되고 다듬어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누나를 얼마나 가깝게 여기게 됐는지에 대해 말을 하기만 했다면, 내 낯은 뜨겁고 혹여 누나는 부담스러워했을지라도 최소한 그렇게 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여전히 실패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패에 좌절하여 한껏 위축되어 있던 무력감이 당장의 내게 속삭이는 것은 오직 승패의 유무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가 먼저 상처를 받아 또다시 그때의 좌절을 불러오는 일을 만들지 말아라. 하며 뒤틀린 응보 감을 내게 심어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누나의 희미한 데면데면함에 확실한 차가움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누나의 얼굴을 보면 일부러 고개를 틀고, 누나의 인사를 못 받은 척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맞받아치기 위해 쓸데없는 세심함을 기울일 정도로 유치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 유치함에 제일 빨리 지친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세상 무엇보다도 진지한 마음으로 행했던 일련의 복수 행위들은 그때 당시에 나에게도, 통쾌함보다는 항상 따끔함을 남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턴 몹시 이기적 이게도 이전처럼 돌아갔으면 하고 바라기 시작했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망가져 있었다. 관계는 물론이고, 어떻게든 지키고자 했던 알량한 자존심 마저도. 그래서 나는 누나에게 감히 사과는커녕 말 조차 붙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누나의 얼굴을 보면 떠오르는 복잡한 심경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누나를 피해 가며, 어쩌다 누나와 마주치게 됐을 땐 서로 못 본 체하며 지나가는 관계가 되었다, 후회하는 것조차 이젠 새삼스런 감정이라 치부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친했던 누나와의 추억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