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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지 Feb 20. 2023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을 읽고

자연 과학 계열을 전공했지만 졸업한 후로는 그 꼬리표를 떼기 위해 고전하는 시간을 보냈던 터라 과학은 쳐다도 보고 싶지 않았다. 과학에 흥미를 못 느꼈던 건 과학이 바깥 세계처럼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도서관에서 전공책이 아닌 기형도나 오정희를 더 자주 붙잡고 있었다. 문학처럼 감정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철학처럼 나를 확장시키지도 못하는 과학은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의 첫 장을 읽자마자 내가 알던 권위적이고 지루한 세계는 전복됐다.


지금껏 수정 과정은 정자를 난자를 향해 달려가는 능동적 존재로, 난자는 정자에 의해 포획되는 수동적 존재로 그렸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난자는 화학신호를 보내 스스로 선택한 정자를 끌어들이는 능동적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은 '오랫동안 여성의 적'이었다. 생물학은 성차별적 구조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고, 의약품 개발 분야는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여김으로써 여성의 몸을 배제했다. 뇌에 생물학적 성차는 없으며 남녀의 생식 세포 모두 노화의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에 남성의 가임력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과학 지식은 절대적이지 않다. 성 고정관념과 편견의 영향을 받고, 과학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과학의 틈을 발견하자 나는 다시 과학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내 삶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작년 코로나 백신 접종 이후 내 주위 포함 많은 여성들이 생리 주기 이상이나 부정 출혈을 겪었다는 후기가 있었다. pms까지 포함해 한 달에 반 이상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며 지내는데 그에 비해 여성들이 겪는 부작용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생명 의료 분야의 많은 연구가 남성과 수컷 동물을 주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인식하지 못했을 뿐 과학은 내 몸 안에 있었다. 당을 못 끊는 것은 내 절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울한 뇌와 장 문제와 관련이 깊으며(이 글도 초콜릿을 먹으며 쓰고 있다), 나의 생물학적 몸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가임기 여성의 몸으로 읽히며 편견에 갇힌다.


'임신은 질병이다' 의료인인 친구의 선배가 몇 년 전에 했던 말이다. 임신은 임신성당뇨와 고혈압을 유발한다. 출산 도중 산모가 위험해지는 경우도 많고, 출산 후유증으로 계속 약을 복용해야 하는 케이스도 있다. 나의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관절 통증을 앓고, 출산한 친구들도 다양한 통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여전히 임신은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저자의 말대로 '임신에 따른 몸의 변화는 모성으로 감내하기보다 과학으로 이해되어야 할 영역이다.' 책을 읽고 나면 '그저 내버려 두기에 과학은 너무 강력하'기에, 여성이라면 더 과학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마지막 저자의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실력만 있으면 여자라고 못할 게 없지." 같은 말 대신 "지금까지 공부를 그럭저럭 적당히 한 남학생도 과학자가 되어 과학계의 80퍼센트에 속해 있어."라는 말이 필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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