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를 통과하여 자기 자신이 되었나요?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읽는 내내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문장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곤 했다. 인생샷을 건지고 싶어 하는 나,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여행지에서 무리해서 동선을 바꾸던 기억, 서로의 인생샷을 위해 협업하던 우리. 피드에 떠다니는 보정 셀카를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들여 사진을 선별하는 나 자신의 모순은 어떻고? 인스타그램의 변두리에서 인기를 갈망한 나머지 인기를, 인스타그램을 미워했던 과거의 나에 대해 말해보면 어떨까. 더 먼 과거로 거슬러가면 온라인에서 언제 어떻게 맞닥뜨릴지 모르는 로맨스를 위해 ‘남성적 시선’으로 내 사진을 살펴보던 20대의 내가 있다. 이 책은 이쪽에서 저쪽, 과거에서 현재, 내 안과 밖을 정신 사납게도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인생샷을 관계의 문제로 확장시키며 그 안에서 작동하는 성별 권력 구조를 조명한다. 셀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누가 타인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때 인생샷은 오프라인 삶에서 경험한 외모 품평과 배제, 차별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된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인생샷에 참여하고, 타협하고, 거부하는 여자들의 맥락과 차이를 가시화하면서도 그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현실에서 각자 놓인 위치가 다르고 인스타그램과 만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한 장의 인생샷 뒤에는 수많은 맥락이 존재한다. 인생샷에 공들이지는 않지만 적당히 ‘꾸안꾸’하는 사람, 인생샷을 거부하고 탈코르셋 이미지를 전시하는 사람, 탈코르셋을 지지하지만 인생샷을 찍는 사람 등 이곳에는 다양한 정체성이 뒤엉켜 있다. 저자는 과시적이고 한심하다고 비판받는 인생샷 문화를 재해석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인생샷과 얽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며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여성해방이라는 것.
가끔 인스타그램에 열 올렸다가 금세 식어버리길 반복하는 것은 실은 인스타그램을 ‘잘’하고 싶어서 힘들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그저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데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그 사진들이 내 신념과 일관성 있는지를 더 신경 쓰게 됐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대신 선글라스나 모자로 얼굴을 가리거나 멀리서 찍은 사진으로 적당히 타협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사진들 마저 ‘괜찮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적 시선으로 스스로를 조각내어 바라보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왜 여전히 인생샷을 포기하지 않은 걸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나의 또 다른 관객을 향해있었다. 나는 나의 마케터로서 가끔은 입맛대로 정상 규범 안에 나를 끼워 맞춰 '전시'하며, 모순과 혼란을 마주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혼란한 얼굴들은 한데 모였다. 저자는 인생샷 여성이든 탈코르셋 여성이든 인스타그램 안에서 작동하는 젠더 각본과 이상적인 개인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개인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차별적 세계의 구성원인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무결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p.312)
책을 읽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유치원 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제 짝이 못생겼다며 짝을 바꿔 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고 즉시 그 아이의 짝은 교체되었다. 그저 어린아이의 미숙한 장난처럼 보였던 그 일이, 약간의 충격으로 남았던 건 왜일까. 나를 비롯해 지켜보던 여자아이들은 잠깐 안도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무의식 중에 알아버렸던 거다. 우리가 그 교실에서 외모에 대해 공개적으로 어떤 말을 들을 수 있는지를.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것은 내가 자라며 겪고 학습한 비슷한 상황의 목록 속 최초의 기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인터뷰이들의 경험 속에는 작은 평판에도 부서지기 쉬웠던 과거의 나와 나의 친구들, 동생들, 언니들의 이야기가 있다. 미움받고 미워했던, 평가하고 평가당했던, 쓸모를 증명하고 싶지만 동시에 나대로 살고 싶었던… 그래서 조금 고단하고 슬퍼졌다. 이 책을 통해 누구든 여기저기 조각난 채로 존재하는 스스로의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워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