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기준, 잃어버린 나
나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며 30년을 넘게 살았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는 모두가 소중한 친구였다.
잘생긴 친구도, 그렇지 않은 친구도, 공부를 못해도, 몸이 불편해도, 모두 내게는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친구의 경계없이 나는 다 좋았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가장 수업을 잘 듣고 선생님과 농담하는게 즐거운 학생이었다.
나는 그냥 그게 좋았다.
하지만 고1때 만난 친구는 아버지가 교수였다.
지극히 평범한 나에게는 그 친구의 말은 거의 종교와 같이 느껴졌다.
그 친구는 존중이 없고, 굉장히 비관적, 냉소적인 친구였다.
특별반을 하면서 그 친구, 그리고 비슷한 사상을 가진 친구들과 붙어다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들이 말하길, 인간에는 등급이 있고, 자격을 갖추어야만 하고
성적이나 학벌, 직업이 1류가 아니면 망한 인생이라고 했다.
이런 말들을 몇개월 듣다보니 그게 맞아보였다.
결국 내 마음속까지 침투했고 나쁜 마음이 생겼다.
나의 세계는 조금씩 조롱당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친구를 친구로 대하던 나의 세계는 그날 이후 틀린 것으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나는 내 내면에 있던 그 따뜻한 기준을 몰래 접어 넣기 시작했다.
그 가치관은 내 관계까지 바꾸어놓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을 부족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시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이 존경이 아닌 결핍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성실하고 따뜻해도, ‘대학 하나 잘 못 간 사람의 조언’으로 치부해버렸다.
굉장히 무례하게도 수업을 듣지 않고 내 공부를 했다.
어느 틈엔가,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세계를 얕잡아 보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 자신이 가장 낯설었다.
그 시절의 나는 더 똑똑해졌는지 몰라도, 더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엔지니어의 인생을 살다가 IT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되었다.
IT 분야는 처음이었고,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들이 모두 똑똑해보였기에
내 생각보다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2년 차에 자기주장이 강한 경력직 세 명을 새롭게 팀에 합류시켰다.
그들은 아주 실력있고 자신감 넘치는 개발자였다.
그런데, 내가 겪어온 시행착오, 팀 전체의현장에서 고객을 만나고 제품을 직접 다듬으며 느꼈던 것들 균형을 고려한 경영적 판단들은 그들 앞에선 매번 ‘비논리적’인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하나같이 새로운 팀원들에게 부정당했다.
그들은 늘 더 나은 논리와 자신감을 갖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그래, 내가 틀렸겠지.” 하고 물러섰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그저 ‘다른 관점’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규정될 때, 나는 한순간에 무가치한 사람이 되었다.
그 감정은 나를 깊은 무력감으로 끌어내렸고, 내 목소리를 꺼내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나의 생각을 부정하고, 나의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 회사 발전에 이익일 것이라 믿고 살았다.
그렇게 나를 잃어가는 과정은 나를 공허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다음 글에서는 나의 회복과정을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