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유럽의 커피와 스타벅스
스위스에서 세 달 살기 매거진을 발행하면서 글을 어떤 순서로 써야 할까, 순차적으로 쓰는 게 나을지 주제별로 쓰는 게 나을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일단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하고 오늘은 쓰고 싶은 글을 먼저 써야겠다. 글 순서는 나중에 재배치하더라도, 이 매거진을 발행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유럽의 커피에 대한 이야기(1부)와 로잔의 카페 소개(2부)를 먼저 해보려고 한다.
스위스에서 세 달 살기를 하기 전에도 유럽엔 그래도 꽤 자주 와봤고, 꽤 많은 나라를 다녀봤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 같은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맛있는 커피'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커피를 잘 아는 전문가도 아니고, 입맛이 그리 고급지거나 까다로운 편도 아니다. 그리고 입맛이라는 게 모두 제각각이기에 유럽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맞다고는 결코 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유럽에서 맛있는 커피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예외적인 나라가 한 곳 있다면, '이탈리아'다.
에스프레소나 이탈리아 방식의 커피 추출 방식이 국내에서도 유명한 만큼 이탈리아 현지에서 마시는 커피는 항상 중상 이상이었다. 작은 동네 카페를 가든 하다못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깐 들러 자판기로 뽑아 마시는 커피든 깊고 진한 특유의 향과 맛이 항상 미각과 후각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일단 한국처럼 '아이스커피'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커피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맛도 어딘가 맹숭맹숭 물을 탄 것 같아서 한국인이 원할 법한 'fancy'한 커피에 대한 기대치는 내려놓는 것이 좋다.
스위스도 예외는 아니다. 5년 전 로잔에서 일 년 간 살 때도 맛있는 커피에 대한 마음은 많이 비웠는데, 5년 후 찾은 로잔은 예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다. 스위스의 많은 것을 사랑하지만 개인적으로 스위스의 음식과 커피는 사랑하기가 참 어렵다.
비싼 스위스 물가만큼이나 레스토랑에서 한 끼 외식하려고 하면 한국보다 2~3배, 많게는 4배까지 지출할 생각을 해야 하는 곳이 많다. 다행히 커피는 한국이 워낙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물가에 비해 커피 가격이 비싸서인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스위스 물가 대비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다. 로컬 카페나 베이커리에 가면 대부분 4~5 스위스 프랑(CHF, 1 CHF=1,200원대) 정도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조금 더 힙하거나 가격대가 있는 카페, 바 등에서는 7~9 CHF 정도 하기도 한다.
대개 로컬 카페에서는 한국과는 커피 종류가 좀 다르고, 종류도 그만큼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테 마끼아또, 카푸치노 등을 주로 파는데, 다른 유럽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스커피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이스커피를 원하면 대개 따뜻한 커피와 함께 얼음을 별도의 잔에 가져다준다.
라테 마끼아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달달한 맛은 아니고, 주로 에스프레소와 우유, 우유거품이 함께 들어가 있는 라테의 느낌에 조금 더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커피 세계의 어른 입맛은 아니라서 주로 우유가 들어가 있는 커피를 선호하는데, 라테 마끼아또보다는 카푸치노를 선호한다.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과 함께 시나몬 가루가 뿌려져 있고 커피의 향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유럽에서 그래도 평타 정도로 실패하지 않을 커피 메뉴를 선택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카푸치노를 추천한다.
새로운 음식과 장소, 사람들을 찾아왔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익숙한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낯선 음식과 사람들, 언어 속에서 익숙한 커피맛으로 잠시나마 힐링을 하고 싶다면 스타벅스를 추천한다. 나라마다 로컬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스타벅스보다 우세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스위스에서는 그래도 스타벅스가 어느 도시에나 많이 자리 잡고 있는 편이다. 특히 시내 중심으로 나가면 스타벅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심칩이 없거나 데이터가 없을 때 스타벅스의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도 있으니 낯선 여행지에서 초행길에 인터넷 사용이 시급한 상황이라면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가서 혹은 그 근처에서라도 와이파이에 연결하는 것도 팁이다.
스타벅스는 로컬 카페에 비하면 커피 가격은 좀 비싼 편(4~9 CHF)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 종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손님들도 많이 와서인지 영어로 메뉴를 주문해도 의사소통이 쉽게 된다. 또, 일요일에는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점이 문을 닫는 스위스에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파이브 가이즈와 같은 미국계 프랜차이즈들은 영업을 계속한다. 일요일에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거나 쉬고 싶다면 스타벅스에 가면 좋다.
하지만 스타벅스라고 해서 한국 스타벅스 매장에 있는 메뉴가 반드시 다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번에 스위스에서 머무는 동안 한국에서 즐겨 마시던 '돌체 라테'(연유에 우유, 에스프레소를 섞어 만들어 캐러멜 마끼아또보다 더 달고 샷이 강한 느낌이 든다)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주문해 보았다. 그런데 내가 방문한 매장에는 돌체 라테가 없었다. 다른 매장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대로 캐러멜 마끼아또 아이스로 주문을 바꾸었는데, 돌체 라테를 처음 들어본 직원이 신기했는지 나에게 메뉴 이름을 적어 달라고 해서 메모지에 적어주고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같은 스타벅스라도 매장마다 바리스타 손맛(?)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익숙하고 안전한 메뉴, 익숙한 커피 한잔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을 때는 스타벅스를 찾아보길 권한다. 또, 스타벅스라도 나라마다 디저트나 베이커리 종류가 조금씩 차이가 있으니 새로운 메뉴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다양한 도시나 나라의 스타벅스 머그컵, 텀블러 등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물론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