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에르노
하루 한 권 읽기 ---2024 필사 챌린지
2024. 1. 2
제목 : 세월
작가 : 아니 에르노
이제 이사회는 ≪소비사회≫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재론할 것도 없었으며, 그 확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혹은 개탄했다. 석유 가격 상승으로 잠시 경직되기는 했으나 소비하는 분위기였고, 물건과 재산을 확고하게 소유하는 것에 쾌락을 느꼈다. 문이 두 개인 냉장고, 충동적으로 R5를 샀고, 플랜느의 클럽 호텔에서 일주일을 보냈으며, 라 그랑드모트의 원룸을 샀다. 우리는 티브이를 바꾸었다. 컬러화면 속에서 세상은 더 아름다웠으며, 티브이 속 세상은 더욱 선망의 대상이 됐다. 거의 비극일 정도로 심각하게 부정적이었던 일상의 세계와 함께 흑백이 만들었던 거리감은 사라졌다.
광고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떻게 가구를 갖춰야 하는지 보여주는 이 사회의 문화적인 코치였다. 아이들은 과일 향 에비앙을, ≪근육발달을 돕는다는≫ 캐드버리 비스킷과 키리를, 〈아리스토샤〉와 〈사제의 하녀〉노래를 들을 수 있는 휴대용 축음기를, 원격조종 자동차와 바비인형을 요구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주는 모든 것들로, 나중에 아이들이 마리화나를 피우지 않기를 바랐다. 학생들과 광고의 위험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했던. 쉽게 속지 않던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행복이 있을까?≫라는 작문 주제를 내주었으며, 지성을 위해 현대성을 이용한다는 마음으로 프낙에서 전축과 그룬딕 라디오카세트를, 벨엔호웰 슈퍼8카메라를 샀다. 우리를 위해, 우리에 의해, 소비는 정화됐다. 중략-
상품들이 전시된 장소들은 점점 더 커졌고 아름다워졌으며 생기 있어졌고 꼼꼼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곳들은 매일 아침마다 에덴이 첫째 날의 풍요로움과 화려함 속에 다시 태어나면서 지하철역과 우체국, 공립 고등학교의 쓸쓸함과 대조를 이뤘다.
하루에 한통씩 먹어도 일 년 안에 모든 종류의 요거트와 유제품 디저트를 다 맛보지 못했다. 남성용 겨드랑이털 제모제와 여성용 겨드랑이털 제모제가 달랐고, 티팬티 전용 팬티라이너, 물티슈, ≪창조적인 레시피들≫과 고양이 사료 ≪쁘띠부쉐로티≫는 성인용 고양이, 어린 고양이, 늙은 고양이, 아파트에 사는 고양이용으로 분리됐다. 중략-
일상의 모든 정보들 중 가장 흥미롭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일의 날씨, RER역에 게시되는 좋은 날씨와 궂은 날씨, 매일 기쁘거나 슬퍼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예언의 지식,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변화로 떠들썩해진 기후의 불변성이자 의외성이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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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나는 그때서야 그를 만났습니다. 자전적인 글쓰기와 역사, 사회를 향한 작가만의 시선을 가공이나 은유 없이 정확하게 담아내는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라고 하지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경험 아닌 것을 쓰지 않는다고. 아직도 온전한 권리를 여자들은 갖지 못했습니다. 몇십 년 전에는 훨씬 더했죠. 여성으로서의 삶을 그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자본주의에 잠식되는 개인의 삶도 말이죠.
아니 에르노가 말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입니다. 이것은 은유가 아닙니다. 정말 내일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