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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Sep 23. 2024

제발! 플리즈!

-공원고양이들 35 / 고수 캣맘 E님, 떠나다

 웬 통 덫이 세 개나 있지? 고수 캣맘 E님이 갖다 놓았나 보다. 사유지 급식 터인 이곳에 이런 걸 가져다 놓을 사람은 E님 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도대체 왜? 중성화도 다 되어있고 중성화해야 할 다른 고양이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이제 거기 다섯 마리 다 데려가려고요.”

 “네? 왜요? 지금 잘 살고 있는데?”

사실 사유지 급식 터는 공원보다 살기가 나았다. 버려진 상가 뒷마당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사람도, 다른 고양이도 들어갈 일이 없어서 위험할 일도, 싸울 일도 없었다.

 공원보다 낫다니! 

모든 게 실상 안으로 들어가 보면 겉으로 보는 것과는 판이한 적이 많지만 고양이 세계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여기 다섯 마리는 사이도 좋아 싸우지도 않는다. 게다가 동아리도 일 년이 넘어 하루에 한 번씩 밥도 잘 주고 있는데? 한마디로 여기는 안정적이었다. 


  “J님이 너무 힘들게 해요. 정말 죽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 때문에.”

 그랬구나. 어디서나 사람이 문제인가. 사유지 급식 터 고양이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구내염에 걸린 고양이가 생겼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최후는 로드킬 아니면 구내염이라고 했었지. 집에서라면 수명이 15년이 넘겠지만 길고양이들은 3년만 넘어도 이미 평균 수명을 넘어섰다. 다섯 마리 중 두 마리가 구내염으로 잘 먹지 못해 마르고 침을 흘렸다. E님은 그곳에 오지 않은 지 3년이 다 되어갔지만, 상태에 대해서는 나만큼이나 잘 알았다. 

 내가 알기 전부터 고수 캣맘 E님과 공원 캣맘 J님은 서로 친구였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E님은 약을 사다 주고 J님은 매일 하루에 한 번 약을 먹였나 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이 E님을 너무 힘들게 했다. J님은 마치 거기에 있는 고양이가 E님의 고양이인 것처럼, E님의 고양이를 본인이 떠맡은 것처럼 항상 투덜거리고 불평을 해댄 것 같았다. E님은 계속 참고 참았지만 J님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하지만 엄마 집은 안 돼. 벌써 17마리의 고양이가 있잖아. 여섯 마리를 키우는 나도 쉽지 않은데 17마리라니! 그런데 또 다섯 마리를 데려온다고? 

 이제부터 내가 약을 먹이겠다고 했다. 거기 사는 고양이들은 E님의 고양이가 아니라 단지 **동에 살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만약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동 지역에서 거의 15년이 넘게 근무하고 있는 내 책임이라고. 

 하지만 E님은 굽히지 않았다. 이제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길에 두면 계속 신경 쓸 수밖에 없지만, 엄마 집에 가면 더는 그럴 일 없다고 말이다. 어머니가 정말 잘 돌보기는 하지. E님은 진정 떠나고 싶은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맡기고 이제 캣맘을 그만두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 너무 힘들었겠지. 지난 10년간. 사실 떠나면서까지 돌보던 길고양이들을 다 데려가는 것만도 엄청난 책임감이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지. 


 E님의 어머니는 몇 달 전 또 한 마리의 고양이를 입양한 터였다. 15번째 고양이 팬서와 16번째 노르웨이 숲 고양이에 이은 17번째 고양이. 

 E님의 지인 캣맘 지역에서, 학대당한 고양이가 발견되었다. 원래 그 지역에는 중성화된 20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독약을 먹고 죽어 10마리가 채 안 남았다고 한다. 신고했어도 CCTV가 없는 지역이라 수사에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고양이 울음소리가 심하게 들려 나가보았더니 처음 보는 어린 고양이가 있었다. 5개월 정도로 보이는 그 고양이는 두 눈 모두 칼에 찔린 듯 피를 흘리고 있었고 입도 칼로 찢겨있었다. 병원에 옮겨 치료하고 모금 운동을 벌였다. 아이는 두 눈 모두 멀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런 몸에도, 그런 경험에도 개냥이였지만, 입양처는 없었다. 

 E님은 병원을 가보았다고 한다. 흐르는 눈물에 도저히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어머님이 데려오라고 했다지. 

 17번째 고양이, 그 아이가 끝인 줄 알았는데. 어머님은 정말 어떻게 사시는 건지. 


 “아이들을 개냥이로 만들면 안돼요. 아시잖아요?”

 “네네. 쌤.”

 사실 공원 캣맘 J님은 공원에서도 문제였다. 집이 공원에서 1분 거리라 그랬는지, 친구가 필요해서 그랬는지 J님은 매일 공원 산책하는 강아지들의 주인 중에서 자기 또래의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캣맘 일을 진정 고양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사귀기 위해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불러 모아 같이 간식을 주고 수다를 떨고 그들이 길고양이를 만져도 그냥 두었다. 내가 얘기해도 겉으로만 알았다고 말할 뿐 변하지 않았다. 공원 고양이들이 개냥이가 되는 게 하루가 다르게 보였지만 그들 중, J님도, 강아지 주인들도 책임지지는 않을 터였다. 

 결국 나에게 중성화도,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고양이도 다 떠넘겨서 나도 이제 J님을 차단하고, 주말까지 우리 동아리로 급식 조를 짰다. 도움은커녕 방해만 됐으니까. 

 “나중엔 민쌤하고 나만 남을거에요.”

E님은 초기에 이렇게 말했었지만 나는 아니라고 했었다. 그래도 J님은 착해서 남을 거라고 말이다. 그게 잘못본거라는 것이 이제야 밝혀지는 중이다. 결국 처음에 5명의 캣맘 단톡방이 이년 만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신혼P님은 강치파양으로, 직장인 S님은 퇴사하고 이직했고, J님은 이렇게 개냥이를 생산하고, E님은 사유지 급식터 마지막 다섯 마리 고양이를 챙겨서 떠나버리려 한다.


  “어제 마지막으로 한 마리까지 다 잡아서 엄마 집으로 갔어요.”

  “정말요? 어떻게 잘 지낸대요?”

다시 일주일 후 E님에게 톡이왔다. E님은 고양이들의 CCTV영상을 보내주었다. 본인도 좀 걱정이 되어서 엄마 집에 CCTV를 설치했다고 했다. 놀랍게도 5마리가 포개어져 자고 있다. 편안해 보였다. 3년도 넘게 밖에서 살았던 아이들인데도 작은 방에서 잘살고 있었다. 

함께 와서 그런 걸까? 

 “이 아이들은 작은 공간이라도 집이라서 좋은가 봐요.”

이제야 걱정 없이 잘 수 있다며 E님은 웃었다. 이런, 정말 대단한 E님. 

나도 언젠가 공원을 떠나야할 그날이 올 텐데…. 아마도 내가 이 지역, 직장을 떠날 때이겠지? 그때 E님처럼 나도 공원의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아야 할 텐데.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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