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투 댄스는 원래의 납작했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
소셜 미디어 좀 한다,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제로투 댄스를 알고 있을 거다. 모르는 이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제로투는 양팔을 들어 머리 뒤에서 교차하고 골반을 좌우로 움직이는 간단한 춤으로 작년부터 인터넷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로투 댄스를 검색창에 입력하면, 각종 이미지와 영상이 등장한다. 단 한 번의 검색만으로 우리는 제로투가 춤 실력을 자랑하기 위한 춤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화면 속 인물은 골반을 계속 흔들며 팔을 위아래로 올리고 내린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춤에는 어떠한 예술적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제로투를 처음 춘 건 사람이 아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원래 화면 속에만 존재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동작이었다는 의미이다. 제로투 댄스는 일본의 한 성인용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ME! ME! ME!’의 한 장면에서 등장했다. 뮤직비디오 속 3초가량의 짧은 춤 장면에 큰 감명을 받은 한 인터넷 이용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에 이 동작을 입혔다. 그 캐릭터의 이름이 바로 ‘제로투’이다.
그는 춤을 추는 제로투의 모습을 소셜 미디어 레딧에 게시했고, 한술 더 떠 이 제로투 영상을 본 한 틱톡 이용자가 제로투의 춤 영상에 Hai Phút Hơn (KAIZ remix ver.) 음악을 입혀 게시한다. 제로투를 생각하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바로 그 음악이다.
이 동작의 원작 캐릭터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답게 속옷 혹은 비키니 차림으로 춤을 춘다. 제로투의 옷을 입은 후 속옷의 형태는 사라졌지만, 캐릭터가 추는 동작은 달라지지 않았다. 화면 속 여성 캐릭터는 여전히 골반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인간이 따라 할 수 없는 형태로 말이다.
우리나라에 제로투 유행을 가져온 건 스트리머들이었다. 스트리머들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하나둘 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단순한 동작이라 영상을 한 번 보고 바로 따라 추기에도 좋았다. 시청자들은 예쁘다, 귀엽다, 섹시하다는 평을 쏟아내며 그들의 춤을 감상한다. 그들의 평가는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줄 모르고 희롱의 수준까지 나아간다. 허리 놀림이 어떻고, 하는 평가를 그 사람의 몸이 아니라 춤을 향해서 하는 말인 양 포장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제로투 영상들의 조회수가 빠르게 쌓였다. 인기를 얻은 제로투 영상들은 알고리즘을 타고 완전히 새로운 시청층에게 노출됐다. 제로투를 원해서 보던 이들은 이 춤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명백히 춤을 추는 대상을 향한 성적인 평가 혹은 조롱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로투를 난생 처음 본 사람들은 제로투를 ‘쉽고 귀엽다’ 혹은 ‘유행인가보다’라고 아주 가볍게 평가했다.
결국 제로투는 이들의 무지함, 혹은 부족한 경각심을 타고 공중파 TV 프로그램까지 진출했다. KBS의 ‘개승자’, SBS의 ‘런닝맨’ 등 공중파 예능은 이 춤을 소재로 사용했다. 오로지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동작은 여러 프로그램에 노출되고, 또 노출된다. 이제 어린아이들도 멋모르고 제로투를 추는 지경에 이르렀다.
화면 속에 있던 제로투는 유행을 타고 우리의 현실에 불쑥 찾아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 동아리 MT 현장에서 ‘벌칙으로 제로투를 추자.’라는 제안이 나왔다. 경악스러우리만큼 가볍고 무지한 말이었다. 그 음악을 재생하기 직전, 필사적으로 그들을 말렸다. “다른 거 해. 다른 거.” 다급히 말하며 ‘차라리’라는 마음으로 최신 유행 걸그룹 노래를 선택했다.
이렇듯 2D 애니메이션이었던 제로투는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를 넘어 TV 프로그램, 그리고 우리의 일상까지 스며들었다. 제로투는 애초에 화면을 벗어나 실제 여성의 동작이 되어서는 안 됐다. 라치카 소속 댄서 가비는 하퍼스 바자 코리아 인터뷰에서 제로투를 췄다. 영상의 댓글에서 사람들은 ‘이게 실제로 가능하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전까지 아무도 원작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인데, 실은 따라가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인간 여성이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고려 없이, 제작자의 성적 취향대로, 여성의 몸이 움직이길 원하는 방식을 반영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려낸 이에게 여성의 몸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성적 객체’일 뿐이었을 것이다.
순진하게도 제로투의 배경을 전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게 된 이상 이를 웃으며 소비할 수 없다. 물밀 듯 변하는 인터넷 유행 속에서 여차 부끄러운 문화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별생각 없이 남을 따라 웃기 전에, 웃음을 터뜨릴 만큼 떳떳한 문화인지 확인해야 한다. 부지런히 웃음거리의 출처를 확인해야 한다. 어떤 유행을 옮기는 순간 혐오의 메시지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아야 한다.
제로투 댄스는 원래의 납작했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지인들 사이에서, 내가 보는 화면 속에서, 그리고 남이 보는 화면 속에서도 차차 사라져 태초의 한 영상 속에 영영 가둬지길 바란다. 여성 착취적인 유행은 어디선가 끝도 없이 등장한다. 언제까지나 ‘나는 몰랐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이제 제로투에 대해 알았다면, 이를 더는 가벼운 유행으로만 여기지 말자. 이 춤이 다시는 실존하는 사람의 몸을 타고 소비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