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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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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Oct 06. 2021

수현자매, 괜찮아! 나는 파혼도 했어.

파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타격감

파혼 후 교회를 다시 다녔다. (모태신앙이나 중학교 때 이후로 교회를 나가지 않았음) 신실한 크리스찬인 친구에게 집 주변 교회를 추천 받아 등록했다. 처음 교회에 가면 담당하는 목사님과 심방이라는 걸 한다. 간단한 설문도 하고 교회를 나오게 된 계기와 무엇을 기도하고 싶은지, 믿음의 숙련도는 얼마인지 이야기도 한다. 나는 이별을 해서 힘들다고 그래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시기가 길어지자 내 인생에서 잊고 계셨던 주님이 떠올랐다라고 말했다.속마음은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입니다였다. 그 긴 심방 시간 동안 나는 '파혼'이라는 단어는 꺼낼 수 없었다. 파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타격감 때문에. 잔잔하고 평온하던 목회자와의 대화 분위기를 단숨에 불편하게 만들 단어다.


파혼이라는 단어가 대화에 등장하면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한 순간에 당황하게 만든다. 상대방은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눈치라는 걸 태도에 담게 만든다. 낯선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는 파혼했어라고 떠들어 대기도 했지만 그 때 마다 어줍잖은 위로와 응원이 돌아오는 것도 곤욕스러웠다. 내가 별 거 아닌 척 말해도 그들에겐 별 일이니까. 흔하게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파혼녀가 아닌 실연녀로 심방을 끝냈고 구역을 배정받았다. 내 심방내용은 구역장에게 전달됐고 구역장 및 구역원들은 내가 그저 이별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고 그 상황을 빨리 주님의 힘으로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난 구역원들과 매주 예배가 끝나면 성경공부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고 삼삼오오 모여 성경공부가 끝나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러 다녔다. 그날따라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언니들과 함께 상수역 단골 분식집에 갔다. 분식집으로 향하는 길이 파혼남과 수십번을 다녔던 길이라 가는 내내 마음이 묵직해져 언니들한테 말했다. 언니 이 길을 헤어진 남자친구와 너무 많이 다녀서 그런지 우울해질라그래요. 그랬더니 한 언니가 말한다. 수현자매, 괜찮아질거야. OO이는 이미 알고 있긴 한데, 나 사실 파혼했어. 파혼이라는 단어를 듣고도 타격이 없는 나의 모습에 그 언니가 더 놀랐을 수도 있다. 나는 위안 받았다.


때로는 불안은 나만 이렇게 거지같이 사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때 생긴다. 위안은 나만 이런게 아니라는 확인을 할 때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언니의 파혼 스토리를 듣게 됐다. 그 파혼남은 내 파혼남보다 더 개차반이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비교로 얻은 위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절친한 친구가 행복하게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다시 불안해져버렸으니까. 결국 잣대를 외부에 두면 흔들리는 건 언제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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