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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의 ‘금곡공원’

“까치여! 나는 너의 먹이가 아니다.”

by 김무균

‘금곡공원’ 양안(兩岸) 사이로 탄천이 흐른다. 천의 폭은 넓지 않고, 깊지도 않다. 물결을 거슬러 잉어 떼가 헤엄친다. 천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 입구에서 한때는 길조(吉鳥)였던 까치가 뒷짐을 진채 잉어 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까치는 잉어를 먹이로 보고 있을까? 나는 까치가 아니어서 까치의 생각을 알 수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잉어의 마음은 알 것 같았다. “까치여! 나는 너의 먹이가 아니다.” 지난번 잉어 떼 속에서 긴 다리를 뒤로 굽히고 물속의 먹이를 찾던 왜가리는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산으로부터 안개가 내려와 가랑비처럼 흩뿌렸다. 갈 길 바쁜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걷거나 달리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근육을 키우고 있었는데, 사람을 따라 나온 무척 고귀한 족속의 다리 짧은 개, 털이 길고 주둥이가 튀어나온 개, 털이 곱슬곱슬하고 눈이 까맣고 동그란 개들은 한쪽 다리를 들거나 잡초를 뒤적이며 스스로의 본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공원의 의자, 혹은 벤치 아래서 잿빛 비둘기가 모래, 또는 흙 사이에서 모이를 찾고, 흰 비둘기는 돌을 깎아 만든 의자 위에 똥을 쌌다. 똥은 한쪽은 희고 또 한쪽은 잿빛이었다. 그 똥은 독성이 있어 사람이 만든 무엇이든 삭게 해 약하게 만들지만, 자연이 만든 모든 것과는 함께 썩어 거름이 된다. 팔 굽혀 펴기를 하려고 의자에 손을 짚다가 그 똥을 짚었다. 먼 곳을 잘 보는 눈은 바로 아래 의자 위의 새똥은 보지 못했다. 노안(老眼)의 치명이었다.


사람들이 다가가도 비둘기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날개를 퍼덕이며 빠른 걸음으로 잠시 자리를 피할 뿐,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사는 비둘기들에게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손에 묻은 똥을 씻고 손을 말렸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한 뼘 옆으로 지나갔다. 굵고 진한 땀 냄새가 전해졌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그보다 빨리 두 뼘 곁을 지나갔다. 땀 냄새는 전해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금방 지나쳐 앞서가기 시작했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좁은 시멘트다리 아래의 잉어 떼가 궁금해졌다. 잉어 떼는 아직도 물결을 거스르며 헤엄치고 있었는데,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는 오래전 책에서 읽은 글이 생각났다. 잉어 떼는 살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노동을 하지 않는 어느 노동절 휴일, 집에서 한참이나 먼 분당의‘금곡공원’에서 아들의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한 나의 시간은 모래 속으로 스며든 물 같아서 전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모래를 파지 않는 한 물을 볼 수는 없다.(2020.5)


탄천을 거슬러 헤엄치는 잉어 떼들. 물속에 비친 그림자가 박수근의 그림을 닮았다.

※작가노트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濠)라는 물가의 둑을 거닐고 있었다. 장자가 말하길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노니는 걸 보니 참으로 즐거워 보이는구나.” 이에 혜자가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지를 아는가?”라고 말했다. 장자가 다시 말하길 “그렇다면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걸 알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혜자가 다시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모르네. 마찬가지로 자네도 원래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게 틀림없네.” 장자가 다시 말하길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자네가 처음에 나에게 ‘자네가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라고 물은 것은 내가 이미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네. 나는 이 호숫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네.”라고 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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