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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 옆에 없어서 네 이름을 잊어버렸다

부재가 주는 서늘한 망각

by 김무균

“네가 내 옆에 없어서 네 이름을 잊어버렸다.”가 맞는지

아니면, “내가 네 옆에 없다고 내 이름마저 잊어버렸니?”가 맞는지

한참을 생각하다 둘 다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먼저든 네가 먼저든 서로 옆에 없었던 것이고, 서로의 부재가 이름을 잊어버리게 한 것이었다.


일요일이었고, 아침이었다. 남한산성 가는 길을 오르다 길 주위에 핀 들꽃과 나무들을 보면서

저 꽃들의 이름, 저 나무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주위에 너무나 흔해 자주 봐왔던

그 꽃이었고, 그 나무들이었다.

그런데도 오랜 이국생활에 모국어를 잊어버리듯 그 이름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그 꽃과 나무들이 오랫동안 내 옆에 있지 않았고, 그래서 누구에게도 그 꽃과 나무에 대해서 이름을

알려줄 이유가 없었고, 또 그 꽃과 나무가 세상을 사는데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었다는 이유로

나는 그 꽃과 나무의 이름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지금 얼마나 많은 꽃과 나무들, 들풀들, 돌멩이들, 구름들, 냇가의 물고기들, 산새들, 멧짐승들의 이름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꽃과 나무들, 들풀들, 돌멩이들, 구름들,

냇가의 물고기들, 산새들, 멧짐승들이 우리에게 이름 불리어지기를 원하고 있을까.

일요일 아침 남한산성 가는 길을 오르다 어쩌면 우리 사는 것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2017.7)

망초.jpg 개망초, 5~6월에 핀다. 꽃말은 ‘화해’, ‘순수한 사랑’, ‘부끄러움’, ‘감사’ 등이다. 어린 순을 데쳐 무쳐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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