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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생일

by 김무균

미역국을 끓이며, 딸아이 생일 상차림을 준비하고 있던 아내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베이커리에 가서 케이크를 사 오라고 한다. 아들 것이라며 카드를 내미는데, 아들이 누나 생일선물로 한 턱 쏘는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살 때 할인쿠폰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곤 현관을 나서는 나에게 “초는 스물일곱 개예요.”라고 외쳤다. 케이크를 사러 가다가 금세 쿠폰 사용방법을 잊은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 다시 쿠폰 사용방법을 물었다. 아내가 말할 때 대충 듣고, 겉들었다.


10월 19일, 오늘은 딸아이의 만스물여섯 번째 생일이다. 딸 이름은 ‘다형’인데, 차 ‘다(茶)’ 자에 향기 멀리 날 ‘형(馨)’ 자를 써서 이름 지었다. 딸은 오늘 새벽에야 퇴근했다. 어제는 토요일 휴일이었는데도 회사에 출근했다. 추석 연휴로 오래 쉬어서 일이 많이 밀렸다고 했다. 생일인 오늘도 오후에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며 -내가 아침에 일찍 케이크를 사러 간 이유다.- 퇴근하자마자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요즘 딸을 보면 무척 안쓰러웠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혹은 새벽에 피곤에 전 모습으로 눈도 못 뜨고 퇴근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울컥하기도 했다. 그래서 딸에게 “공부를 더 하든, 좀 더 규모가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라고 하면 딸은 “고개를 내저으며 됐다. 번거롭고 귀찮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이렇게 안주하는 딸의 미래에 늘 걱정이 많다.


딸의 잦은 택배와 배달음식에,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네 나이에 엄마는 아빠와 결혼했다.”라고 하면 딸은 “에~에~에~”하며 문을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가끔 만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대하는 것을 보면 살가운 효손(孝孫)이고, 동생에게도 누나 노릇 제대로 하는 것을 볼 때면 대견스럽기도 하다. 지금 시간이 오전 11시인데도 딸은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11시쯤 태어난 것을 아는지나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언제 딸아이를 깨워서 생일상을 먹이나?(2025.10)



<다형(茶馨)이|김무균>


다형이는 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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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깊은 우물이다. 고개를 깊숙히 들이밀고 물을 긷는다. 누군가 마시지 않아도 마실 사람이 없어도 좋다. 스스로 갈증을 못이겨 긷는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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