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턱도 없을 일이었다.
아내는 요즘 나보고 ‘화’가 많다고 한다.
나는 절대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목소리가 커진다.
아내는 “글쎄, 이것 보라니까요.” 한다.
나는 “목소리가 커다고 화를 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묻는다. “내가 화난 것처럼 보이니?”
아들은 아내와 똑같이 말한다. “아빠는 요즘 화가 많아요.”
나는 어이없다며, “내가 화가 많다고?” 다시 목소리가 커진다.
“그것 보세요. 벌써 화났잖아요.” 아내가 말한다.
늦게 온 갱년기인가?
곰곰이 최근 내가 한 말들을 돌이켜 본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거나(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다.),
같은 질문을 두 번씩 하면 짜증이 났다.
어제는 골프방송을 시청하다 자꾸 같은 질문을 하는 아내에게 기가 차다는 듯 댓구를 하지 않았고,
조금 전에는 새로 건설된다는 지하철 노선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 못 하고,
자꾸 되묻는 아내에게 큰 소리를 냈다.
아내는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 화를 낼 게 또 뭐냐?”며 뾰로통했다.
나는 “아니 미적분을 푸는 사람이 인수분해를 이해 못 하는 게 말이 되냐.”라고 했다.
아내는 “그것과 그것이 어떻게 같냐.”라고 했다.
아들은 엄마 아빠가 또 싸운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아들에게 “이건 싸우는 게 아니다.”라고 말을 했지만, 아들은 “그런 게 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코 내 기준에서는 이것은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더 크게 외친다.
“싸우는 게 아니라고!”
아내가 다시 말한다.
“그 봐요. 화내는 게 맞잖아요. 당신 정말 화가 많아요.”
아들이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는다.
“아~ 정말”
그렇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요즘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은, 내는 것처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살아온 나이 값으로 안다.
‘진도를 더 이상 나가지 마라! 여기서 그쳐야 한다. ’
예전 같으면 턱도 없을 일이었으나, 빨간 경고등이 번쩍이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 화가 난 것처럼 했든, 아니면 진짜 화를 냈든 간에 나의 실책을 인지한 순간, 나는 바로 화를 안 낸 것처럼 얼버무리며, 꼬리를 내리고 웃음으로 무마한다.
아내는 분명 그 순간 내가 화를 내고, 짜증 낸 것을 알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 또한 그냥 넘어간다.
서로 꼬투리를 잡아 “잘했니, 못 했니” 하고 목소리 높여 봐야 잠자리에 등 돌리고, 각방 쓸 일 밖에 더 있겠냐?, 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래 함께 살고 나이가 들어가니 이런 일이 다반사(茶飯事)였다.(202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