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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전기세

까짓것 이번 여름 시원하게 삽시다.

by 김무균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종이신문과 책 한 권을 들고, 오로지 읽기 위해 아파트 UZ 센터 주민회의실로 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소나기였다. 뜨거운 지열과 대기의 열기가 떨어지며 기온이 낮아졌다. 집은 더웠다. 선풍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나, 아내는 에어컨을 켜는 것에 대해 민감했다. 하루 전기사용량 30kw, 월간 사용량 900kw. 다른 가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숫자가 돈으로 환산되어 나온 것을 보고 아내가 마음을 다잡은 터였다. 하루 종일 빵빵하게 에어컨 틀고 시원하게 지내도 한 달에 200kw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톡방 ‘남한산성’님 말에는 거품을 물었다.


우리나라 전기세는 누진세여서 사용량이 400kw(혹서기 두세 달은 450kw)가 넘어가는 순간 징벌적 전기료를 부과해 눈탱이를 맞는 구조로 되어 있다. 집안에서 전기를 먹이로 먹고, 제 몸을 구동시키는 전열기구는 모조리 아내의 검열 대상이 됐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TV, 와인셀러, 이모님이라 불리는 로봇청소기, 시스템 에어컨, 선풍기, 노트북, LED 전구, 전기가 에너지원인 LED 시계,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심지어 비데까지.... 아내는 하나하나 사용을 중지하면서 전기소모량을 체크했다. 그런데 조사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개개의 전열기구가 먹는 전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한 달에 900kw가 넘는 전기사용량이 나오는 것일까? 검사에서 열외 된 무엇인가 반드시 있을 것이었다.

아내는 외출할 때면 전기코드를 모두 뽑아놓았다. 이전에 없던 행동이었다.

어쨌든, 개개의 전기소모량은 차치하고, 아내는 ‘아파트스토리’와 아파트 주민 단톡방, 네이버지식인, 심지어 AI에게까지 전기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수소문했다. 수소문의 결과, “전기 덜 먹는 신형으로 에어컨을 바꾸라!” 아주 심플한 방법이었으나,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방법이었다. “집안 온도를 27°C까지 낮춰놓고 계속 에어컨을 켜 두라!” 이 방법은 그래야 실외기가 돌지 않아 전기를 먹지 않는다는 해법이었다. “거실 에어컨이 전기를 가장 많이 먹으니, 거실 에어컨은 꺼야 한다.” “멀티탭의 전원도 모두 꺼라. 가랑비에 옷 젖는다!” “텔레비전 셋톱박스가 먹는 전기도 만만치 않으니 반드시 꺼라!” 등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됐다. 아내는 삼국지 유비(劉備)처럼 귀 큰 사람이 되어 경험자들의 조언을 모두 수용해 시도했다.


하지만 아내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잡수시는 전열기구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미세한 차이는 있었으나, 기대하는 바와는 차이가 너무 컸다. 아내는 전기세 줄이기를 포기했다. “까짓것 이번 여름 시원하게 삽시다.” 더위를 피해 찾은 UZ 센터 주민회의실 창밖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2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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