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환과고독(鰥寡孤獨)에 대하여....
계절 때문인지 요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도 ‘나는 존엄하게 죽고 싶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지 실재하는 죽음에 대한 글은 아니었다. 8년 전쯤 ‘오늘 가족 중 누군가 갑자기 죽는다면....’이라는 ‘죽음’과 관련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가족 중 누군가 죽음을 맞는 상황을 가정한 글이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을 담고 있는 글이라 블로그에서는 비공개로 해놓았다. 그때도 아마 오늘처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사이 맏형과 큰 누님이 돌아가셨고, 고등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던 딸과 아들도 각각 직장생활을 하는 사회인과 대학생이 됐다. 가장 큰 변화는 장인과 장모님이신데, 그때만 해도 정정하시던 두 분이 이제는 보기에 안쓰러울 만큼 쇠약해지셨다. 그래서인지 자꾸 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래 글은 2018년 1월에 쓴 글이지만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한(大寒) 때도 영상을 웃돌던 날씨가 밤이 되면서 바람이 몹시 불고 차가워졌다.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내일(1월 23일)부터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의 영향으로 영하 15도를 밑도는 한파가 시작되고, 다음 주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 한다. 늦은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옷은 홑겹의 겨울 트레이닝 바지와 언더셔츠 위에 파커 하나만 걸쳤다. 단지 내에 피트니스센터가 있지만 답답하기도 하고, 공기도 탁해 요즘은 잘 가지 않는다. 아파트 보도는 오후 늦게 급하게 내린 눈이 쌓여 미끄러웠고, 강한 바람이 불 땐 어지럽게 눈이 날렸다. 누군가는 따듯한 실내를 두고 추운 겨울 바깥에서 궁상맞게 뭐 하는 짓이냐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찬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머리가 맑아져서 좋다. 거기다 서쪽 하늘에선 예쁘게 초승달이 조금씩 자라고, 하늘에 박힌 별빛이 쏟아져 내리기라도 하면 운치가 더해져 걷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내가 생각하기에 혼자 걷는다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스스로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하게 되고,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도 단순하게 정리가 된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았더니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단지 걷는 데만 집중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걷다 보면 주위의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 생각이 자연스러워지고 깊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어젯밤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갑자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은 가족들 중 누군가 갑자기 ‘지금’ 죽는 것이었다. 이것은 붓다의 깨달음을 통한 죽음, 해탈이나 열반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적인 ‘죽음’의 문제였다.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또 내가 죽으면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아이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갑자기 곁을 떠나면 아내와 나는 어떻게 살지? 정말이지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 최근 들어 황당한 사고로 사람들이 어이없이 죽는 뉴스를 많이 보았고, 아내가 자주 아프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