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두 해 전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는 아주 걱정 없이 유쾌한 책을 읽고, ‘하마터면 이 책을 못 읽을 뻔 했다’라는 제목의 독서기를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 속에 이 책을 사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지방선거 하루전날은 화요일이었고, 특별하게 다른 일정이 없었다. 그동안 회사 인근 서점을 몇 번 갔으나 딱히 살만한 책이 없어 구경만 하다 왔다. 오늘은 몇 권 사리라 마음을 먹고 서점을 들렀다. 제일 먼저 유홍준의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山嵩海深’를 골랐다. ....<중략>.... 마지막으로 영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좋아한다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서가에서 뽑았다.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충실히 따른 선택이었다. 두 곳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었는데, 번역문을 대조해가며 어느 책을 고를까 꼼꼼히 살폈다. 하나는 원문에 충실한 듯 했고, 다른 하나는 문장을 압축해 의미를 전달하는데 더 무게를 둔 듯 했다. 나는 두꺼웠으나 판형이 좀 더 작고 번역이 압축된 책을 골랐다.”
지금 그때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앞뒤가 고르지 못하고, 한자漢字나 작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조차 없어 다소 아쉬웠다. ‘산숭해심’의 숭嵩자는 어렵고, 잘 쓰이지도 않는 한자인데, 독음을 따로 적지 않았고,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 12. 16.~1817. 7. 18. 영국)에 대해서는 간단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원문을 보지도 읽지도 못한 처지에 번역문의 특징들을 이야기 한 것은 도무지 주제넘고 부끄러운 짓이었다. 게다가 하늘의 명을 알 나이를 지나 낼모레면 귀에 거슬림이 없는 경지에 이를 텐데 선배들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고 할 정도로 지조志操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 그 글에는 책을 산 이유는 분명히 적혀있었으니, 왜 그때 이 책을 샀을까?,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2년이 넘도록 채 100 페이지도 읽지 않고 침대 옆 협탁에 다른 몇 권의 책과 함께 놓여 있던 이 책 ‘오만과 편견’은 드디어 지난 9월 10일 새벽 오랜 의무에서 벗어났다.(나는 이 책을 2018년 6월 12일에 사서 2년을 넘게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다 읽고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니 자정을 넘긴 1시 23분이었다.) 사실 요 며칠새 ‘오만과 편견’을 읽는데 한창 재미가 들었었다. 내가 읽고 있던 ‘오만과 편견’은 변형 B6판형( B6판형은 원래 128mm×188mm이지만, 이 책은 115mm×170mm이다.)으로 다른 책들에 비해 다소 크기는 작지만 무려 630여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두꺼워 부담스러웠다. 책을 사서 처음 읽을 땐 롱본, 네더필드, 메리턴, 하트퍼드셔 등 알지도 못하는 영국의 지명과 엘리자베스는 그나마 익숙했지만 베넷, 빙리, 다아시, 루카스, 위컴 등 등장인물들의 성姓과 이름이 눈과 입에 붙지 않아 작품에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이 과정에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개월 전 케이블TV의 한 채널에 영화 ‘오만과 편견’이 자주 방영됐다.(키이라 나이틀리가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 역을 맡았고, 매튜 맥퍼딘이 남자 주인공 피츠윌리엄 다아시 역을 맡았는데, 안나 카레리나를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이 연출했다. 우리나라에는 2006년 3월 24일 개봉돼 88만 명의 관객이 들었다.) 2년간 읽은 페이지가 겨우 수십 페이지에 불과했지만 가끔 몇 장씩이나마 책 ‘오만과 편견’을 읽고 있던 나에게 영화 ‘오만과 편견’이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한 편 전부를 이어서 본 적은 없는데, 이는 책 읽기와 비슷했다. 영화 속 매튜 맥퍼딘은 다아시 역으로 부담스러웠지만 키이라 나이트는 똑부러진 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에 적격이었다. 착하고 순수한 언니 제인 역을 맡은 로자먼드 파이크는 몇 번이나 보았던 톰 크루즈의 ‘잭 리처1’에서 익히 안면을 튼 터라 손을 들어 인사할 정도였다. 도날드 서덜랜드는 헐리우드의 주연을 꿰차고 있는 유명 배우인데다 아버지 베넷 역으로는 딱 그만이었는데, 안소니 퀸의 이미지가 자꾸 겹쳐지는 것은 어쩌면 나만의 데자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영화 덕분에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책의 내용은 대충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이유 등으로 이후로도 책 ‘오만과 편견’은 여전히 협탁 위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전 순전히 협탁 위 의무를 벗어나게 할 요량으로 다시 잡은 ‘오만과 편견’에 그만 재미가 들고 말았다. 오래전 연애 소설을 읽을 때의 기분이 들면서 가끔은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발휘하기도 했고, 읽기를 그치려고 할 즈음이면 뒷이야기가 궁금해져 손에서 놓는 것이 아쉬운 지경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사실 ‘오만과 편견’은 대부분의 연애, 혹은 사랑이야기가 그렇듯 구성은 단순하고 이야기는 출발지와 목적지를 잇는 직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소설이다. 게다가 청춘 남녀가 청혼을 거쳐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쓴 이야기라(“재산이 많은 미혼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이치다. 그런 총각이 이웃이 되면 동네 사람들은 이런 이치에 사로잡혀, 그의 기분이나 생각도 모르면서 으레 신붓감을 찾으리라 짐작하곤 그 총각을 자기 딸이 차지할 재산쯤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오만과 편견’을 시작하는 책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에 이 책의 대부분이 담겨져 있다.) 웬만하면 그 결말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연애의 아슬아슬한 재미와 함께 18세기 영국의 신분제 사회에서 결혼이 여성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사회구조적, 그리고 개인적 관점에서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제인 오스틴은 마흔 두 살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살았다. 그녀에게도 결혼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첫 번째는 남자 집안의 반대로 무산됐고, 두 번째는 청혼을 수락한 다음날 거절했다. 그리고 평생을 혼자서 살았다. ‘오만과 편견’에는 그의 이러한 경험들이 무수한 디테일로 녹여져 엘리자베스 혹은 제인의 입을 통해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당시의 신분사회에서 오만과 편견은 사회적 메커니즘이었다. 개인의 성격과 신분, 그리고 부富가 다양한 방식으로 부여한 오만, 또 그것이 나은 편견과 오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 속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통해 오만과 편견이 어떻게 생성되고, 또 그것이 어떻게 극복되는 지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이 책 전부를 읽어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오만과 편견’을 읽고 있는 중에도 다른 두어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있었다. 몇 장 혹은 몇 챕터, 그것은 의무였다. 매일 매일 작은 의무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강박증의 무게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은’ 의무가 아니라 어서 빨리 만나고 싶은 애인 같았다. 그래서 만나면 이내 헤어질까 두려워 가끔은 일부러 만나지 않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처럼 조금씩 아껴 먹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끝은 늘 있는 것이었고, 9월 10일 새벽이 그날이었다. ‘오만과 편견’과 헤어진 아침, 늦은 잠으로 늦게 일어난 오전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갔다. 머릿속에선 지난 밤 독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고 있었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오랜만에 산을 올랐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다시 만나게 한 팸벌리의 대정원을 생각하며, 느리게 산길을 걸었다. 산길은 어제 급하게 내린 비로 군데군데 질퍽거렸으나, 양쪽 길옆에선 보라색 물봉선화와 달개비 꽃이 빗물에 젖어 싱그러웠다. 산은 온통 나무 냄새, 햇볕 냄새, 비 냄새, 흙냄새로 가득했는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문득 가을이 온 듯한 평일 오후였다.
#뱀다리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들끓던 마음의 동요가 가라앉았다. 샤워를 하고 서재에 들어서니 방에서 짙은 가죽 냄새가 났다. 어제 분당의 한 가죽의자 전문매장에서 아내와 함께 책상용 의자 하나를 심사숙고한 끝에-사실은 그제 이 매장을 방문해 마음에 드는 리클라이너 가죽의자 하나를 점찍어 두었는데, 가격대가 내 생각과 달리 지구에서 가장 먼 이카루스 별만큼이나 멀어 하루의 숙려기간을 더 거쳤다.- 구입했는데, 그 의자가 오늘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의자가 마음에 꼭 들어서 아주 흡족했고, 가죽 냄새도 참 좋았다. 4년이 넘게 책상과 함께 했던 식탁용 의자는 안타까웠으나 그간의 임무를 다하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나는 오후 내내 아내가 은퇴를 기념해 선물한 서재의 가죽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