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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Jul 12. 2022

[엽편소설] 하나

전봇대와 선인장

하나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고요한 새벽, 소아는 침대에 앉아있었다.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꿈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자리에 앉은 그대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적기 시작했다.


 문장으로, 단어로, 형편없는 스케치로 기억의 파편들을 모았다. 옛 서부영화에서 본 것 같은 황량한 사막, 문 닫은 주유소, 창문에 붙은 판자가 너덜거리는 폐가, 그리고 선인장,


 선인장


 선인장


 선인장… 에서 연필이 멈추었다. 분명 그 지점부터가 중요했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생한 감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펄떡이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연필을 쥔 채 멍하니 앉아있던 소아가 결국 끅끅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쉬 진정이 되지 않았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사무실은 청계천변에 위치했다. 수천 통유리들의 향연장인 거대한 건물은 외벽 청소도 자주 하는지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반짝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널찍했고, 푸릇푸릇한 나무들은 조경사의 손을 탄 듯 하나같이 조화로웠다.


 잘 정돈된 도심과 어울리지 않는 건 피맛골과 노가리 골목을 연상시키는 전신주들뿐이었는데, 천석은 그 전봇대들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전봇대의 머리나 허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선 가닥들을 세며 오늘의 현실이 어제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검은 전선들 사이 간혹 섞여있는 붉은 전선, 초록 전선의 모습 역시 체크했다. 전선들을 묶고 있는 고리의 개수는 어제와 같은지, 꼬여있는 순서가 바뀌진 않았는지 일일이 점검했다.


 주엽이 물었다.


 “그렇게 간절하면 사진을 찍어.”


 “그걸 어떻게 믿으라고. 사진은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어.”


 궤변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진은 렌즈가 인식하는 방식으로 피사체의 모습을 기록했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바뀌었고, 그 대상이 인물인 경우에는 철판 위 호떡처럼 얼굴을 눌러버리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전선의 개수나 꼬인 모양까지 왜곡될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엔 수도 없이 많은 사진과 영상을 찍어 수익을 올리는 그들이었다. 전선을 일일이 눈으로 따라가는 행위는 사실 천석이 하는 행동으로는 꽤나 역설적이었다.


 천석과 주엽은 유튜브 크리에이터였다. 좋게 말하면 크리에이터였고, 나쁘게 말하면 사이버 렉카였다.


 그들은 이슈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출동했다. 유명 아이돌들을 사생팬처럼 쫓아다녔고, 정치인과 연예인의 뒤를 캐 흥미진진한 뉴스거리를 만들어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범죄자들의 구속이나 석방 순간에도 그들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산사태 현장에도 찾아가 죽어가는 반려동물들을 촬영했다. 입에 흙더미를 물고 있는 강아지 얼굴을 클로즈업해 찍은 동영상의 조회 수는 무려 300만 회였다. 슬픈 배경음악은 훌륭한 보조요원이었다. 직접적인 광고 의뢰가 없어 클릭 유도가 중요했다. 조회 수를 만들어 내는 것만이 그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아,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간혹 그들은 찍혀서는 안 될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찍혔다는 사실을 인지한 당사자들은 원본 폐기를 대가로 꽤 큰돈을 지불했다. 계좌이체나 카드결제도 아닌 현금박치기였다. 쏠쏠한 부업이었다. 물론 백업 영상들을 완전히 없애는 일은 없었다.


 전선의 수를 모두 센 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와 같아….”


 장비를 챙기던 주엽이 물었다.


 “왜 말끝을 흐려?”


 “어제 꿈을 꿨는데.”


 “꿨는데?”


 “선인장이 전봇대가 되었어. 가시들은 쑥쑥 자라 전선이 되었고.”


 “그래서?”


 “분명 애리조나의 사막이었는데, 이곳으로 바뀐 거야. 황량했던 사막이 서울 한복판이 된 거지. 전선들은 끝도 없이 팽창했어. 꼬이기 시작했고. 그걸 풀기 위해 전봇대 위에 올라갔는데 전선들이 다시 선인장 가시로 바뀌면서 나를 공격하는 거야.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막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전봇대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도중 잠에서 깼어.”


 고개를 돌린 천석의 앞에는 주엽이 서있었다. 그의 손엔 5km 밖까지 선명하게 사진이 찍히는 작업용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주엽이 주억거렸다.


 “그거, 네가 매일 전봇대만 보고 있어서 그래. 매일 그것만 보고 있으니까 꿈에까지 나온 거라고.”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천석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난 세계가 애리조나를 거쳐 온 또 다른 서울일 수 있다는 말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주엽의 분석이 맞을 수도 있었다. 전봇대에 대한 그의 집착이 꿈으로, 꿈의 황당무계함이 또다시 집착으로 바뀐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쪽이든 말을 길게 하여 좋을 일은 없어 보였다. 천석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가 오기로 했나?”


 주엽이 물었다. 천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며칠 전 사건 의뢰를 하나 받긴 했었지만 의뢰인이 오겠다고 한 날짜는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그들의 사무실은 수천 개의 창문을 가진 번쩍번쩍한 건물들의 맞은편 건물, 꼭대기 층이었다. 세 명이 타면 꽉 차는 비좁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어진 지 40년도 넘은 건물이었다. 누구세요, 를 물으며 주엽이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붉은 가방을 손에 든 여자 한 명이 서있었다. 이십 대 같기도, 삼십 대 같기도, 사십 대 같기도 했다.


 복도에 서있는 여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흙모래가 여자의 얼굴에 거칠게 부딪혔다.


 “어째서이죠?”


 천석은 여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본인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 여자는 다짜고짜 어째서이냐는 말을 꺼냈다. 당혹스러웠다.


 여자의 표정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처음부터 사막이라고 말을 했으면 오지 않았을 거예요.”


 이해할 수 없었다. 천석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여자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모래가 밟혔다.


 맙소사, 모래였다.


 천석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옛 서부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황량한 사막, 문 닫은 주유소, 창문에 붙은 판자가 너덜거리는 폐가, 그리고 선인장. 키 큰 전봇대들은 키 큰 선인장들로 모두 바뀌어 있었다. 주엽은 무엇이 문제냐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이 주유소에서는 기름을 안 팔 것 같지?”


 여자는 한 발짝을 뒤로 물러서더니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는 19세기 미국인들이나 입었을법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텁텁한 모래가 그의 입을 가득 채웠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아무것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동이 틀 무렵에야 다시 눈을 뜬 소아가 구깃구깃하게 구겨진 종이와 연필을 찾았다. 엉망인 글씨체로 사막, 주유소, 폐가 등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소아가 선인장이라고 쓴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선을 이었다. 선의 끝에 새로운 단어가 적히기 시작했다.


 고층건물


 청계천


 남자 두 명


 그리고


 아…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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