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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Jul 19. 2022

[엽편소설] 둘

Creeping devil



        

 소아의 직업은 조경사였다. 정확히는 조경기사였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조경기능사인지 조경산업기사인지 조경기사인지 조경기술사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적절한 연봉을 받고 있는지, 정규직인지, 워라벨은 어떠한지 등만을 이따금 물었다.


 간혹 자격증 시험의 난이도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은퇴 후에 도움이 되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럴 때면 소아는 조경기사에 관한 질문이 맞느냐, 혹시 조경기능사에 대한 질문은 아니냐, 여느 업계와 마찬가지로 이 업계도 젊은 사람을 선호한다, 등의 설명을 시작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호기심은 궁금증이라기엔 인사치레였다. 진지하게 답변을 쏟기엔 오늘의 에너지가 아까웠다.


 나무를 심고 정원을 관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나무나 잔디를 심고 관수를 하는 일 등은 초급 조경기능사나 나이 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담당했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를 조화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에는 기계적 노동력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속된 말로 기를 빨리는 느낌이었다. 반듯하게 깎아낸 돌들도 에너지를 앗아갔다. 아주 가끔은 자아의 일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소아가 그녀의 정원에 절대 들이지 않는 식물이 있었다.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은 빛이 적어도, 물이 부족해도 살아남는 식물이었다. 40도 이상의 더위에도, 영하의 추위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그 질긴 생명력이 소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 년을 버텨 피워낸 화려한 꽃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허무하게 떨어졌다. 찰나의 결실을 위해 버티는 삶이었다. 불편하고 못마땅하고 화가 났다.


 그런 선인장이 지금 소아의 눈앞에 있었다. 장소는 그녀의 정원이었다. 그녀가 책임지고 관리를 하는 커다란 공원의 한구석,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잘 닿지 않는 곳에 Stenocereus eruca 무리가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소규모 군락이었다.


 당황한 소아의 입이 벌어졌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우리말로 번역조차 되지 않은 선인장의 별칭은 Creeping devil, 기어 다니는 악마였다.




 누군가 천석의 턱을 두드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잽이었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천석이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쭈그려 앉아 잠들었던 그의 턱을 쳐댄 건 다름 아닌 핸드폰 진동이었다.


 주엽이었다.


 “사진 찍었어?”


 대답을 하기도 전이었지만 주엽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졸았냐?”


 “기다려봐.”


 천석이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미리 전등의 전구를 빼놓은 덕에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지켜보던 소화전을 열었다. 작동이 가능한지 의심스러운 소화호스 아래 구겨진 껌 종이 하나가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쓰레기였다.


 “물건 발견.”


 “사진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깜빡 졸았다는 말은 혀끝에서만 뱅뱅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천석은 사과를 하는 대신 주엽이 기다리는 건물 옥상을 향해 달려갔다. 육교와 지하도를 넘어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그가 숨어있던 곳은 지어진 지 오래되어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낡은 아파트의 계단이었다. 주민 아닌 사람이 그곳에 계속 얼쩡거렸다가는 경찰에 신고당하기 십상이었다. 모처럼의 특종을 그런 식으로 놓칠 수는 없었다.


 꼬마빌딩의 옥상은 후끈하고 뜨거웠다. 해는 졌지만 한낮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녹색 방수페인트는 여름 태양의 열기로 벌겋게 달궈진 거대한 프라이팬이었다. 마치 애리조나의 사막 같았다.


 군용 쌍안경을 손에 들고 있던 주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각도가 안 나와. 여기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고. 진짜 사진 못 찍었어?”


 “그 대신.”


 천석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잔뜩 구겨진 껌 종이였다.


 화들짝 놀란 주엽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쳤어?”


 “어떻게든 실마리를 잡아야 했잖아.”


 천석의 대답에 주엽은 소리를 질렀다. 다 망했다는 표정이었다.


 “카르텔이 알면 우리를 죽일 거야. 우리는 DEA(미국 마약단속국)가 아니라 한낱 유튜버라고!”


 “아니면 이 특종을 놓치게 되잖아. 그럴 수는 없지.”


 “네가 돌았구나. 지금이라도 당장 다시 놓고 와.”


 “미쳤냐? 어떻게 다시 돌아가라는 거야. 일단 이걸로 마약 운반책을 유인하자. 동영상 찍어 언론에 팔고, 구매자들 중 부자 있으면 사진 찍어 크게 한 탕 땡기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게 위험한 건 맞아. 그럼 일단 이거라도 숨기자. 손에 들고 있다가는 죽는다고. 저긴 어때? 저 주유소 문 닫은 거 맞지? 창문을 판자로 막아놓은 폐가 옆에 있는, 저기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는 해방촌이잖아, 라고 말하려던 천석의 안구를 무언가가 후려쳤다. 모래였다. 깜짝 놀란 천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사막이었다. 아마도 애리조나 어디쯤 위치한 사막의 도로 위에 천석은 주엽과 함께 서있었다.


 그곳에 있는 생명체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아주 느린 속도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선인장이었다. 선인장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선인장이 아니라 전선인 것도 같았다.


 그때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폐가 쪽이었다. 창문을 막고 있던 판자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사람이 서있었다. 19세기 미국인들이나 입었을 법한 옷을 입은 여자 한 명이 판자 뒤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 소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공원 직원이었다.


 “뭐 보세요?”


 “저기….”


 소아의 손끝이 선인장 군락을 가리켰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거. 케이블 공사하던 분들이 잠깐 식사하러 가셔서 그래요. 전선들 이따 싹 정리해서 땅 아래 예쁘게 넣어놓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케이블?


 전선을 선인장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소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그럼 그렇지. 선인장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이곳은 물을 담뿍 주어야 사는 식물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기어 다니는 악마라니. 참내.


 말을 마친 직원은 제 갈 길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몇 걸음을 떼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었는데, 공원 직원의 뒷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낯설었다.


 “그런데요.”


 “네.”


 “기어 다니는 선인장은 습도가 높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물론 결국엔 건조해야 살아남겠지만요.”


 "네?"


 선인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소아가 다시 직원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있잖아.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는다고.


 알아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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