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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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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Jul 28. 2022

[엽편소설] 셋

컨테이너



          

 소아는 커다란 컨테이너에 갇혀있었다. 지금은 8월, 여름의 한복판이다.


 열기로 가득한 컨테이너였지만 창문은 따로 없었다. 타는 듯한 고통을 상쇄시켜주는 건 오직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뿐이었다. 해면 재질의 매트리스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라왔다. 사실 시원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공기보다는 온도가 낮은 바람이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소아는 생각했다.


 컨테이너 반대편에는 남자 한 명이 서있었다. 그는 옛 서부극에나 나올법한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조끼와 챙 넓은 모자, 8월에 신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가죽부츠를 보자 소아는 땀이 삐질 흐르며 속이 메슥거리는 것을 느꼈다. 허리춤에 찬 총집에는 진짜 총이라도 들어있는 건지 처진 모양새가 제법 묵직해 보였다.


 남자는 팔짱을 끼지도, 삐딱하게 서지도, 컨테이너에 등을 기대지도 않고 똑바로 서있었다. 손바닥을 펴지도, 그렇다고 주먹을 쥐고 있지도 않았다. 그 꼿꼿하고 불쾌한 자세에 소아는 위협감을 느꼈다.


 하지만 먼저 항복을 선언한 건 소아가 아닌 남자였다. 남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무슨 말이에요?”


 “선인장에 스스로 들어갔잖아요. 그대가.”




 컨테이너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명확하지 않았다. 물론 들어왔고, 들어왔으니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겠지만 천석은 지금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 천석의 등을 주엽이 툭툭 두드렸다.


 “더위라도 먹었냐?”


 “뭐?”


 “마약 안 찾아?”


 아, 그렇지. 우린 이곳에 마약을 찾으러 들어왔었지.


 천석과 주엽은 유튜버였다. 좋게 말하면 유튜버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이버 렉카였다. 그들은 이슈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경찰의 영역이건 교사의 영역이건 그런 건 문제 되지 않았다. 신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돈만 된다면 상관없었다. 그들에게 신성불가침의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돈이 되는가 안 되는가, 그것만이 중요했다. 오직 돈만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유일한 요소였다.


 잘 정리된 전선 가닥을 들추며 주엽이 입을 열었다.


 “분명 이 컨테이너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잖아.”


 “아니라면 답이 없긴 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툭. 쾅. 쨍그랑.


 순간 컨테이너에 침묵이 찾아들었다. 숨소리조차 멈추며 생긴 고요는 뜨겁고 건조한 컨테이너에 미묘한 바람 길을 만들어냈다. 소리의 근원지인 바닥에는 산산조각 나버린 화분 하나가 완전히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천석이 몸을 돌리다 바닥으로 떨어뜨려버린 커다란 화분이었다.


 키 큰 멕시코 선인장이 심겨있었다. 인삼 줄기 같은 선인장의 뿌리가 줄기의 밑동에서 달랑달랑했다. 조화는 아니었고, 맙소사, 죽어있는 생화였다. 바닥에 떨어지며 죽은 게 아니었다. 이미 죽어있던 생화였다. 천석이 선인장의 뿌리와 줄기 부분을 천천히 벌렸다. 투명한 랩에 둘둘 쌓여있는 마약봉지들이 우수수 바닥에 쏟아졌다.


 정성스레 소분된 하얀 가루들은 수백 개의 봉지에 나뉘어 담겨있었다. 순대 소금을 담으면 딱 좋겠다 싶은 초미니 지퍼백이었다. 혀에 하얀 가루를 찍어 맛을 본 주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펜타닐 맞아.”


 “결국 찾아낸 건가?”


 “당연하지. 이 사건 맡기를 잘했어. 대박 중의 대박, 그냥 대박도 아니고 초대박이야.”


 “그런데, 주엽아.”


 “응.”


 “이 정도 양이면 거물급들이 관련되어 있는 거 아닐까? 설마 우리 살해되는 건 아니겠지?”


 “처음부터 이곳에 화분이 없었던 것처럼 싹 치우고 가면 되지. 마약은 여기저기에 나누어 숨겨두고. 그래, 동남아나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로 일단 뜨자. 비트코인 입금 확인하고, 확인된 건에 한해서만 마약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거야. 여차하면 배 하나 빌려서 남미까지 가도 되고. 미국 아닌 남미에서 팔아도 충분히 부자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좁고 긴 선인장 내부엔 총액이 얼마인지 감도 안 잡히는 펜타닐이 가득 들어있었다. 천석은 선인장 안쪽에 있는 마약봉지를 꺼내려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손과 팔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끈적한 무언가가 들러붙는 기분이었다.


 “아, 이거 뭐야!”


 “왜?”


 “선인장 진액 같은 게 손에 붙었어. 아오, 팔이 빠지지 않아!”


 “그럴 리가 없잖아. 이미 죽어서 방부처리까지 다 된 식물에 진액이라니.”


 하지만 사실이었다. 선인장 안쪽은 축축했고, 흰색인지 녹색인지 모를 진액이 흘러나와 천석의 팔을 감싸고 있었다. 팔을 빼내려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축축한 진액은 자신의 내부에 무단 침입한 상대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찐득하고 강력하게 압박을 가했다.


 천석이 소리쳤다.


 “이것 좀 떼어내줘봐. 선인장 좀 잡아당겨 보라고.”


 “그러면 심이 빠져버리잖아.”


 주엽은 태연했다. 무슨 소리야? 라고 물으려던 천석의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선인장엔 그의 팔이 아닌 선인장 심이 박혀있었다. 그의 팔이었지만 동시에 선인장의 심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얼굴에서 가시라도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엽이 컨테이너의 반대쪽을 가리켰다.


 “저기라도 가 볼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이 주유소는 문을 닫은 것 같으니까. 저 집에 들어가서 기름이 있나 살펴볼게. 창문을 막아놓은 모습이 폐가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운이 좋으면 뭐라도 얻을 수 있겠지.”


 천석이 고개를 돌렸다. 사막이었다. 눈앞에는 문을 닫은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주유소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창문을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막아놓은 폐가 한 채가 보였다. 환영일까? 아니면 꿈인가? 천석이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며 정신을 차려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기엔 모든 감촉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뜨거운 사막, 그 사이에 뚫린 도로, 폐가를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 주엽의 발소리, 그리고 폐가의 창문을 막은 나무판자 사이로 보이는 사람. ……사람?

 여자?




 벽에 기댄 소아가 한 걸음을 더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앉았다. 무언가에게 단단하게 잡혀있는 기분이었다.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해면 재질로 된 매트리스가 보였다.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 위에 올라갔어요?”


 카우보이 복장의 남자가 물었다. 소아는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단면이 잘린 선인장은 위험하다고 아무도 말을 안 해주던가요? 아니, 그런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냥 알아야 하는 거잖아요.”


 남자가 주머니에 감긴 채찍, 아니 밧줄, 아니 전선을 그녀를 향해 던졌다. 꼭 청계천변에 서있는 전봇대가 그녀를 향해 전선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전선은 터무니없이 짧았고 소아에게 닿기 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전선을 잡기 위해 누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이 묶인 소아는 아니었다. 그건, 아메리카 대륙 일부에서만 서식한다는 기어 다니는 선인장이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소아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선인장이 소아를 꿀꺽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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