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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Dec 11. 2022

다르다. 같다. 같지 않다.

상윤이와 상우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회사에 복직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업무로의 배정도, 과중한 업무량도 아니었다.

소외감.

함께 일해왔던 팀원들 사이에서 느껴졌던 소외감을 견뎌내는 것...

끝끝내 나는 이겨내지 못하고 - 상윤이의 장애를 기회 삼아 - 스스로 그곳을 탈출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변했을 뿐이었다.

미혼에서 기혼으로, 아이의 엄마로, 장애 아이의 엄마로,

나의 상황이 점차 변해갔을 뿐이었다.


나는 회사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반쪽짜리, 회사에서도 반쪽짜리였던 나를

이해해 주는 동료는 있었지만

공감할 수 있는 동료가 우리 팀엔 없었다.

주로 미혼으로 구성된 팀원들과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찾으려 했다.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내 상황을 이해해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은 이미 회사에 남아있지 않았다.

같이 서로를 도닥이며 힘든 마음을 공감했던 회사 동료들은 하나씩 나보다 더 먼저 회사를 떠났다.


나는 끈질기게 '같은 사람'을 찾았지만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저 겉보기에 같아 보일 뿐,

결이 다른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사람' 어느 쪽에 더 큰 배신감을 느꼈을까?


나를 철저하게 외롭게 만들었던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 소외감과 고독을 견디고,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이겨내 회사에 남아있으니

너도 당연히 할 수 있어!

그 시절 너보다 내가 더 힘들었으면 힘들었지...'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감히 가볍게 이야기하지 못하므로

최대한 나의 상황에 공감해보려 노력하고 배려해주려 노력을 하거나,

혹은 오히려 무시를 했다.

설사, 그들의 행동이 나를 서운하게 할지라도,

'안 겪어봤으니 모르지.' 라며 나 또한 쉬이 넘어갔다.


그러나 '같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거쳐간 그들의 힘든 시간과 나의 현재를 비교하며

나의 힘듦에 대해 공감해주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거웠다.

앞서 겪었던 사람들이 내게 거는 기대가...

두려웠다.

그 정도도 못 버티는 한심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자폐스펙트럼 장애.

내 아이는 다수의 아이들과 다르다.


그러므로 나는 또한 그 아이들의 부모와 상황이 다르고,

나는 그들과 서로 '다른 사람'이다.


나도 한때는 다수에 속했을 때가 있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문화센터 친구들의 엄마들과 친목을 다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발달을 멈추고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 또한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다수의 무리에서 뒷걸음질 치며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완전히 그 무리 밖을 벗어나 있었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혼자는 고독했다.

그러다 나와 같은 처지인 - 발달 지연 아이를 키우는 - 엄마를 만나게 되면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음에 반가워

마치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처럼 쉽게 다가가곤 했다.

우린 '같은 사람' 이니까.


그러나 곧 '같은 사람'일 거라는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뚜껑을 열어보니 닮기만 했을 뿐 '같지 않은 사람'이었던 거다.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의 아이들은 같은 발달장애 범주에 있더라도 특성이 매우 다르고,

같은 자폐성 장애의 아이라 할지라도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자폐적 특성이 모두 제각각이다.

'자폐성 장애인이 100명 있으면 그 특성은 101가지에 이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또한 지능의 정도에 따라 아이의 수준도 차이가 많이 나

- 어떤 아이는 '저 정도면 그냥 일반인 아니야?' 싶은 아이도 있고, 어떤 아이는 말 한 음절 내뱉는 것도 어려운 아이가 있고... -

그 속에서 우리 아이의 수준과 특성이 비슷한 아이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세계 최고의 오지라퍼가 되고 싶어!"


내가 아는 유익한 정보를 막 누구에게든 알려주고 싶었다.

발달장애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2년여 즈음됐을 때였다.

생초짜 시절의 혼란과 슬픔은 지나왔다.

그렇지만 아직 초보 발달장애부모였기에 아이의 발달에 긍정적인 기운과 에너지가 넘쳐흐르던 시기였다.

원래 운전도 요맘때가 젤 위험하다고 하듯,

- 초보 딱지 떼고 나 운전 좀 잘하는데 하고 방심하는 그 시기 마냥 -

'나 발달장애 잘 알아.' 시기가 온 것이다.


센터에서 반나절 대기하며 지내다 보니 오다가다 만나는 많은 부모님들과 이야기 한 번 나누게 되고,

곧, 같이 어려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 쉽게 친밀해지게 되었다.

나는 나의 오지랖을 발동시켰다. 마치 장애 전문가라도 된 듯 내가 아는 정보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 친밀함은 오래가지도 깊어지지도 못했다.

'같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공감의 어려움에 부딪치기 때문이었다.


"상윤이 정도나 되니깐 가능하지."

"상윤인 잘하잖아."


나는 기운이 빠졌고,

또 다른 쪽에선 내 정보가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이 아이에게 맞고, 좋은 것들이

다른 친구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도해보기 두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에너지가 누군가에겐 무거운 기대가 될 거라는,

그 정도도 못하는 한심한 부모로 느낄 수도 있게 할 거라는 생각을 그땐 하지 못했다.

나의 친절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지 몰랐다.


나는 다시 속에서 조금씩 한 발짝 한 발짝 뒷걸음쳐 갔고,

다시 혼자가 되는 게 더 편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웅크렸던 시간 동안 다시 또 내게 다시 들어오라고 두들겼던 건

내가 '같지 않다'라고 느꼈던 사람들.


시간이 흘렀다.

'너희 아이랑 우리 아이는 같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던 그 사람들이 어느새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때 처음 겪어보는 시련을 헤쳐나가는데 급급해 모두 모가 나 있었지만

어느새 둥글둥글 둥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알고 보면 처음부터 같았다.

너도 나도 그때는 삐죽삐죽했고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며 지금은 둥글둥글 해졌다.

아이의 특성은 다르지만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

가고자 하는 방향은 모두 같은 것을...


다르다고, 같지 않다고, 선을 그은 건 나였지.

첨부터 우린 그냥 같은 '부모' 였을 뿐인데...







여전히

때론 부럽고,

때론 초조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부러워하기보다 축복하기를

초조한 날엔 오늘까지 잘 해온 너에게 감사하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조금 있으면 동글동글 동그래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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