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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Nov 10. 2022

109살까지 살고 싶어요

사춘기 시절 나는 스물아홉 살에 요절하고 싶었다.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졌던 이십 대의 끝.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순간 여자의 인생도 끝이 난다고 생각했다.

'아줌마가 되긴 싫어. 가장 아름다울 때 죽고 싶어. 늙는 건 너무 비참해.'

삶의 에너지가 가장 넘치던 때에는 죽음도 겁나지 않았다.

나의 현실과 거리가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거다.


내 나이 스물아홉.

나는 죽지 않고 그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여자의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던 삼십에 상윤이를 낳았다.

나는 공식적인 아줌마가 되었다.


삼십의 내 모습은 사춘기 시절 생각해봤던 내 모습보다도 볼품없었다.

8개월 동안 내 배는 풍선이 아닌 짐볼처럼 불러왔고,

엉덩 살은 굴곡 없이 허벅지와 허리 라인을 빼곡히 채워 넣은 채 넓고 평평해졌으며,

엉덩이 밑은 급격히 찐 살로 살결이 물결모양으로 찢어졌다.

S라인은커녕 옆구리가 실종되고 뒷구리는 볼록해졌다.

뿌리 염색도 못한 내 단발머리는 촌스러웠고

그렇게 커지길 원해왔던 내 가슴은 커지긴 했으나

부풀었다기보단 물풍선처럼 아래로 축 늘어져갔다.


나는 삼십에 아이를 만났고,

나를 잃었다.


삼십의 마지막 한 달은 더욱 그랬다.

아이가 빠져나와 살과 가죽이 분리된 듯 흐물흐물 해져 축 처진 뱃살과

돌아오지 않은 몸매 라인과

- 젖이 찼다 빠졌다 - 터질 듯 팽창했다 비워져 쪼그라들길 몇 번이나 반복하는 젖가슴과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얼굴과 기름진 머리카락.

입다 만 것 같은 내복 차림으로 매일을 지냈다.


그럼에도

나는 오히려 더 살고 싶어졌다.

이 아이와 함께 살고 싶어졌다.


마주 보고 눈을 맞추고, 

미소 짓다가 장난을 치고,

까르르 웃다가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어졌다.


서른여덟.

나는 여즉 끈덕지게 살아오고 있다.


여전히 때때로 죽음을 생각한다. 

죽고 싶어지는 이유는 사춘기 시절의 이유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난다.


그러나 다행히도

죽음에 대한 생각의 끝은 삶이다.

남겨진 우리 아이들과 가족을 하나씩 떠올리다

되려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오래 살아야지...'


눈을 감는다.

졸음이 쏟아진다.

잠을 잔다.

일어나면 지금의 슬픔이나 분노는

자기 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너는 다시 예뻐 보인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는 너랑 마주 보고 눈을 맞추고,

수줍은 너는 눈을 손으로 가렸다가 다시 나의 눈을 바라보고,

나는 너에게 미소를 짓다가 간지럼을 태우고,

까르르까르르 함께 웃다가 뒤에서 꼭 끌어안으며

사랑한다고...


"상윤아, 엄마는 상윤이를 제일 많이 사랑해."

말하고,


나는 다시 산다.

이렇게 109살까지 우리 함께 행복하게 산다.







그래도

나는 너보단 일찍 죽을 테다.

너의 아픔과 슬픔까지 엄마가 책임질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러니 너는 너대로

너의 삶을 살기로 해.

꿋꿋하게.

최선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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