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0일 토요일
상윤이 때문에 화가 부글부글 끓는 날이 있다.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 7일인데,
그중 월화수목금토일이 그러하다.
그럴 때면 보통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 후 하고 내뱉으며
이 감정을 다스려보려 노력한다.
생각을 전환해보자.
나는 부처다.
나는 1세대 힙합 아이돌 사회복지사 마라토너 션이다.
나는 너의 에미가 아니다.
그래도 안되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다.
너는 기꺼이 자폐의 몸을 선택한 용자다.
너는 귀한 손님이다.
그래도 안되면
'너는 내 대신 장애를 뒤집어쓴 효자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예전에 국제행동분석가(BCaBA) 공부를 할 때
코로나 때문에 Zoom으로 수업을 들었었다.
그 무렵 상윤이는 발에 치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이란 물건은 다 입에 집어넣었고,
볼펜이나 사인펜 혹은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 온갖 곳에 낙서를 해 집안은 물론, 온몸이 낙서 투성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해 식탁 위에 올라가 걷거나 점프를 하곤 했는데,
산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노트북 위에 올라가 액정을 파손시키는가 하면,
기껏 액정을 수리했더니 액정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낙서를 해대는 바람에 깊은 흠집이 났다.
한마디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수업을 들어야 되는데 나는 노트북에 난 볼펜 자국만 하염없이 멍하니 망연자실 바라보며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내가 뭘 해도 아이는 바뀌지 않아.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아.'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자폐 아이를 둔 엄마의 블로그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내게 큰 위로가 됐었다.
기억나는 대로 써보자면 이러하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기억을 점차 잃어갔다.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기억에서 지우다가 가족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글 쓰는 법도 말도 잊어갔다.
여인은 마치 아기가 된 듯했다.
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여인의 아들은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효자였다.
아들은 신에게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부디 저희 어머니 병을 낫게 해 주십시오.
차라리 저를 아프게 하시고 어머니를 낫게 하소서."
간절한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
"너의 마음이 갸륵하니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단, 소원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니 네가 말한 그대로 될 것이다.
괜찮겠느냐?"
아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신에게 절하며 말했다.
"기꺼이 그리 하겠나이다."
그렇게 여인은 기억을 찾았다.
아니, -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전 - 기억을 지우기 전으로 돌아갔다.
여인은 젊어졌으며, 총명했고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글을 잘 쓰게 되었고, 수다를 사랑했다.
여인에게는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어린 아들이 36개월이 넘도록 말을 하지 못했다.
분명 눈을 맞추며 싱긋싱긋 잘 웃던 아이였는데
마치 엄마조차 기억에서 지운 듯 눈을 맞추지 않고 모른 척했고,
이름조차 잊은 듯 불러도 안 들리는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
제법 하던 옹알이조차 없이 말하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그렇게 효자 아들은 자폐성 장애인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기억을 잃어버린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당신의 아이를 다시 보세요.
이래도 당신의 아들이 밉습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볼펜 자국 때문에 속상해서 흘렸던 눈물은
다른 의미의 눈물로 바뀌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스토리 때문은 아니다.
가장 귀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그동안 가벼이, 소홀히 여겨왔음에 미안해서...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랬던 그 마음을 잊고 지낸 내가 한심해서...
그냥 이렇게나 소중한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여전히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너지만
나는 또 쉽게 잊는다.
네가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날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폭발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상상해 본다.
'나는 부처다.'
'나는 션이다.'
'너는 귀한 손님이다.'
.
.
.
'너는 내 대신 장애인이 되었다.'
그 마저 안되면 다음엔
'너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낸 내 소중한 아들이다.'
라고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