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1일 일요일
'나는 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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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네 눈웃음 한 번만 보여줘. 응?
너 나랑 눈 마주치면 눈웃음 짓곤 했잖아. 그 눈웃음 한 번만 보여주라.
아가 여기 엄마 볼 있어.
엄마 볼 좀 쿡 찔러봐.
엄마 볼 느낌이 말랑이 같다면서 쿡쿡 찌르곤 했었잖아.
이 검지로 말이야. 두 번째 손가락 좀 펴봐.
아니 다 펴지 말고 두 번째 손가락만 펴봐.
아니 왜 손에 힘을 못줘.
너무 세게 찌를까 봐 그래?
오늘은 세게 찔러도 짜증 안 낼게. 한번 찔러봐.
그래 아가야.
네가 좋아하는 옷 입었어.
너 이 옷 엄마 냄새난다고 좋아했잖아.
맨날 어디 벗어두면 홀랑 가져가선 킁킁 냄새 맡곤 했잖아.
네가 좋아하는 엄마 냄새라며.
엄마 냄새나는지 맡아봐. 일부러 엄마 냄새 더 배라고 안 갈아입었어.
냄새 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야?
아가,
아가야... 내 아가야...
제발 엄마 혼자 두고 가지 마.
엄마 떠나지 마.
엄마는 너 없으면 살 수가 없어.
엄마는 너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어.
밥도 안 넘어가.
잠도 못 자.
나는 살 수가 없어.
가지 마. 나만 두고 가지 마.
아니잖아.
장난치지 말고.
너 엄마 놀라게 하려고 장난치는 거잖아.
죽은 척하지 마. 다 알아.
이런 거 하나도 재미없으니깐 그만해.
어서 일어나서 집에 가자.
아가야 집에 가자.
엄마랑 집에 가자.
집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카레랑 된장찌개랑 돈가스랑 다해줄게.
이마트 가서 뽀로로 깍두기도 사 오자.
삐-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이 기계소리가 마치 이명처럼 들리고
내 시간은 멈춰있는데,
주변은 2배속으로 모두 분주하게 움직인다.
"안되는데... 안되는데...
나 아직 작별인사도 못했는데..."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중얼거리다
온몸이 힘이 풀리며 '어어어...' 하면서 툭.
꿈을 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 혼자.
"숨바꼭질인가? 너무 어두워서 찾을 수가 없어. 하나도 안 보여. 불 좀 켜봐."
어둠 속에서 너를 찾다가 찾다가 이내 네가 없음을 깨달았다.
울었다.
목놓아 울었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서 가슴을 움켜쥐고 울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귀에 속삭였다.
"네 소원을 들어줄게."
누구냐고 묻고 따지고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이요... 제발요..."
0.1초 만에 튀어나왔다.
"좋아. 네 아들의 목숨을 살려주도록 하지.
그런데 이미 네 아들은 저승문을 통과해서 이승의 기억이 다 지워져 버렸어.
너에 대한 기억도, 말하는 법도 모든 걸 다 잊어버렸어.
목숨은 살릴 수 있지만 이승의 기억을 잃어버린 아이는
아주 느리게 느리게 처음부터 배워나가야 할 거야.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되고,
가르쳐도 금방 잊어버려서 가르치다 지칠 수도 있어.
네 아들은 예전의 네 아들이 아닐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으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제발 제 아들을 돌려주세요"
"좋아. 후회는 없는 거다?
아! 그런데 말이야. 소원에는 대가가 있어."
"대가가 뭐죠? 제 목숨인가요? 얼마든지 내어드릴게요."
"아니 나는 너의 기억이면 돼. 지금까지 네가 아들과 행복했던 기억들 모두 가져가도록 하지."
그렇게 나는 눈을 떴다.
무서운 꿈이었다.
새벽 6시.
아침잠 많은 나인데 이 새벽에 눈이 떠졌다.
간밤에 김상윤이 이불이란 이불에 다 토를 해놔서,
얇은 이불 하나 덮고 잤더니 추웠는지 상윤이가 내 품에 딱 붙어서 자고 있다.
옆으로 옮기면 붙고, 옮기면 붙어서 침대 끝에 아슬아슬 떨어지지 않으려 하다 보니
불편하게 잠을 자서 온 삭신이 결린다.
상윤이를 가만히 쳐다본다.
긴 속눈썹에 뽀얀 피부가 내 아들이지만 잘생겼다.
'잠잘 때는 천사가 따로 없는데 말이지.
오늘은 소리치지 말자.'
다짐을 했다.
내 아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다.
나는 기억을 잃었다.
상윤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다시 내게 돌아온 순간까지의 기억 모두를...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내 모든 걸 내어주겠다고 했던 그 기억조차 잃어버렸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윤이의 장애가 너무너무 미운가?
다시 상윤이를 바라보자.
그 아이의 장애는 내가 상윤이의 목숨과 맞바꾼 거잖아...
사실 이런 상상은 하기 시작하면
'상윤이가 아프다.'에서 눈물이 터져서 끝나버린다.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간대도
몇 번이든 항상 나는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너를 잃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네가 장애가 있는 건 매일 여전히 서글프다.
그래도 네가 건강해서 좋다.
내 곁에 항상 있어줘서 좋다.
너를 끌어안을 수 있어서 좋다.
너의 눈웃음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내 볼에 손가락 꾹 하는 것도 좋고,
새벽녘 잠에서 깨 나를 찾아와
내 품 안에 파묻혀 다시 잠이 드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네가 내 아들이라서 좋다.
내일 눈이 팅팅 붓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