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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Dec 17. 2022

그냥 살면 돼. 그걸로도 충분히 잘했어!

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대단한 부모님들 많으셔서 요즘 한없이 작아지네요. 상윤 어머님도 마찬가지지만...

아이 위해 의대를 들어가신 분도 있고, 약사만큼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도 있고..."


근래 상윤이가 다니는 발달센터에서 매일 만나는 엄마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재미있다.

매일 발달센터에서 40분 내내 수다를 떠는데,

또 오전에는 카톡으로 대화를 나눠도 수다란 게 부족하면 부족했지 포만이 들지 않는다.


ABA(응용행동분석)를 공부할 적엔 행동 분석 전문가의 윤리규정이라는 것이 있어,

'나의 분야 내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치료'에 관해서만 '내담자'에게 추천할 수가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정서상 그 정도로 보수적이고 경직적으로 부모나 아동을 대하는 치료사가 있을까 싶지만...

배우는 과정에서는 비과학적이거나 치료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흥미를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 이전엔 나 역시도 귀가 팔랑팔랑 한없이 가벼워 '카더라'라는 것에 쉽게 휩쓸렸다.

'무엇을 먹이면 좋다더라.', '어떤 치료를 하면 좋다더라.', '어느 병원 누구 선생님이 진료를 잘 본다더라.' 등

인터넷 카페에서 본 글에 쉽게 현혹돼 상윤이 MRI를 찍으러 멀리 지방까지 가서 입원한 적도 있었다.


비슷한 예로, 상윤이 아토피가 심했을 때 참 많이 현혹됐었다.

그 비싼 마유크림을 듬뿍듬뿍 발라주기도 했고,

쑥물로 목욕을 시키기도 했고,

온갖 좋다는 로션, 크림은 가격, 국적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써봤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이 피부는 오히려 뒤집어지고,

나는 그 친절 하디 친절했던 소아과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다.

유명한 게 제일 좋은 거라고 했다.


그때도 나는 닥치는 대로 아토피 관련 전문 서적과 다큐멘터리 서적을 읽으면서 공부했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구절은

'사람들은 100년이 넘게 아토피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스테로이드를 불신한다.',

'가장 약한 스테로이드는 100년 이상 매일 사용해도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였다.

상윤이는 소아과에서 추천해준 크림과 약한 스테로이드를 조금씩 발라가며 아토피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호전되었다.


일단 상윤이가 뇌 MRI를 찍고 온 결과를 말하자면

'이 아이의 뇌가 너무 안 좋아서 예후가 좋지 않다. 아이의 진단명은 자폐는 일단 아니다. ADHD를 동반한 지적장애다. 여기서 약을 처방받기엔 거리가 너무 머니 근처 큰 소아정신과에 가서 ADHD 약을 처방받아라. ADHD가 괜찮아지기 전엔 우리 병원 낮병동에 입원시켜 줄 수가 없다.'였다.

상윤이가 5살 때였다.


그래서 유명 대학병원에 대기를 걸고, 몇 개월 후 진료를 받았다. 딱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이 아이는 자폐예요. 설사 ADHD 성향이 있다고 해도 학령기 이전에는 약을 처방하지 않습니다."

혼란스러운 결과였지만, 약을 처방받지 못한다고 하니 방도가 없었다.


이후 또 다른 유명 대형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장애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진단명은 '중증 장폐, 약은 처방할 수 없음.'이었다. 이 병원 원장님은 내게 "엄마는 애한테 약을 먹이고 싶어요?"라고 되물으셨는데,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나중에 생각할수록 그게 너무 분해서 "세상에 애한테 정신과 약 먹이고 싶은 부모가 어딨어!" 남편한테 하소연하며 울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평온해 보이고, 여유 있어 보이고, 치료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도 있었다.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그래도 현재의 나와 상윤이를 있게 한 것은 결국 처음 잘못 진단한 의사, 처음 자폐라고 말해준 -지금까지 진료를 보고 있는 - 의사, 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지만 그만큼 자극도 많이 주었던 의사 모두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엔 나를 흔들어댔던 '카더라' 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렸는데, 요즘엔 ABA치료사가 되길 관두고, 아이의 치료에 대해 나만의 기준이 생기면서 '카더라' 이야기도 재미가 있다.

유럽에서 무슨 치료를 받고 좋아진 이야기, 식이 조절로 좋아진 이야기, 무슨 영양제를 복합적으로 먹여 효과를 본 이야기 등등 다들 아이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같으니까.


"대단한 부모님들 많으셔서 요즘 한없이 작아지네요." 이 말이 가슴에 '탁' 걸린다.

나도 때때로 느끼는 감정이다.


안 그래도 아이의 장애로 내 자존감은 작아져 굽은 등이 펴지지 않고 승모근은 한껏 솟아올랐는데...

이 '자폐'라는 그룹 속에서도 이끌어가는 '리더 격'인 사람들이 있고, 나름 서열이라는 게 존재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제대로 하는 것 없는 한심한 엄마로, 내 자존감은 쭈굴쭈굴 해졌다.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라고 생각해왔던 위로를 그분께 해드리고 싶었다.


"힘든 거예요. 모두.

다들 혼란스럽고 힘든데 이 힘듦을 어디다 분출해야 될지 모르니...

어떤 사람은 - 저처럼 - 치료나 사회복지 같은 배움으로 풀고자 하고,

어떤 사람은 유튜브나 SNS 같은 소통으로 풀고자 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의 치료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또 힘든걸 풀 의욕조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만 풀리지가 않아요. 뭘 어떻게 해도...

우리가 가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이니깐...


마라톤은 그렇잖아요.

사람마다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다르고 페이스가 다르듯

초반에 너무 달려서 중간에 퍼져버리는 사람이 있고(=나),

초반에는 퍼져있다가 나중에 '안 되겠다.' 속도 내서 완주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우리는 모두 초본데, 

아이를 키우는 것도, 특히 자폐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 해봤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프로 마라토너처럼 페이스 유지하면서 달리겠어요?


지금까지 내가 못해왔다고 속상해할 필요도,

앞으로 잘할 자신이 없다고 주저앉을 필요도 없어요.


그냥 하루를 보내면 돼요.

잘 안 보내도 돼요.

그냥 지나오기만 하면 돼요.

저는 중간에 번아웃이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몇 달 내내 울기만 한 적도 있어요."


"그죠? 별일 없음 다행인 하루를 보내는 것도..."


"별일 있어도 돼요. 없어도 되고...

그냥 살면 돼요. 그걸로도 충분히 잘했어요.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 우리 함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 최선 나에게도 좀 써봐요.

누구나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인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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