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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Dec 23. 2022

7살 품띠가 되었다.

2022년 12월 21일 수요일

7살 상우가 품띠를 땄다.

태권도 경력 3년 3개월 만의 일이다.


상우가 4살 때,

도무지 상윤이의 센터 스케줄과 상우 어린이집 하원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있으면 될 일이지만, 오후 4시가 돼서 친구들이 엄마와 함께 하나 둘 떠나가는 모습을 덩그러니 보고 있을 상우를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청사어린이집에 다닐 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상우.

불러도 모른 척 뒤돌아 앉아 눈물을 참던 돌쟁이 상우의 모습이 아직 아프게 가슴에 남아있었다.


태권도 관장님이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기로 했다.

상우는 울었다.

담임 선생님도 울었고, 원장 선생님도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2주가 지나자 상우는 적응을 했다.

관장님은 다정했고 - 태권도 학원의 막내 - 상우를 형, 누나들이 예뻐해 줬다.


코로나가 닥쳐 모두들 학원에 보내기를 꺼려할 때도 상우는 태권도 학원에 갔다.

어느새 상우는 관장님의 셋째 아들이 되어 있었다.


6살이 되던 해 상우는 빨간 띠가 되었다.

이사를 갔다.

차량지원이 불가해 태권도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

"안경관장님이 내가 없어서 울 거 같아서 걱정이 돼."

눈물의 이별을 했다.


상우를 일찍 태권도 학원에 보낸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걸음마할 때부터 운동신경이 꽝이었던 상우다.

순한 기질로 사람을 때리지 못하고 맞아도 반격도 못하는 상우가 걱정이 되었다.

상우에게는 '장애인 형'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싸움을 해보기 전엔 상대가 센지, 약한지 잘 모르잖아. 그럼 싸움이란 거 자체를 피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싸움을 못한다 할지라도 '품띠나 검은 띠' 같은 게 있으면 아무래도 친구들이 싸움을 걸 확률이 낮지 않을까 싶었다.


'태권도는 시간 싸움이니 일찍 시작하면 일찍 따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빨간 띠가 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국기원에 간다는 말이 없자 초조해졌다.

상우가 이미 빨간 띠 일 때 흰 띠였던 친구가 어느새 빨간 띠가 되었다.

'괜히 태권도학원을 옮겼나...'

조금 고생해도 계속 다니던데 보낼 걸 그랬나 싶었다.


"상우야, 힘들면 그만둬도 돼. 다니기 싫으면 안 다녀도 되고, 쉬었다가 다시 다녀도 돼."

지겹고 초조한 건 난데 상우에게 선택을 넘겼다.


"엄마, 나는 검은띠를 딸 거야. 그리고 검은띠를 따서도 계속 태권도를 할 거야."

상우가 오히려 그만 다니고 싶은 나를 끌고 갔다.


빨간 띠만 1년 9개월...

드디어 국기원에 가게 되었다.


매일 밤 1시간씩, 나중에는 3시간씩 훈련을 했다. 집에서도 열 번씩 혼자 품새 연습을 했다. 나는 어린 상우가 안타깝다는 이유로, 상우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달콤한 유혹을 했다.

"상우야, 힘들지 않아? 힘들면 꼭 이번에 안 따도 돼. 다음에 따도 돼."

흡사 뿔 달린 악마 같았다.


"엄마, 품새가 너무 재밌어! 이번에 못 따도 다음번에 또 도전할 거야."

아이는 뿌리가 깊은 나무 같았다. 흔들리지 않고 단단했다.


7살 상우는 품띠를 땄다.

3년 3개월 만에 품띠를 땄다.


'나는 이렇게 끈질겼던 적이 있었나?'

38세는  반성했다.





오늘은 부끄럽지만 우리 둘째 자랑 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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