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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거지

삶의 방식과 패배주의

by 나무껍질

주말에 남친과 밥버거와 순대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역앞에서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저기, 너무 배고파서 그러는데 먹을것 좀 나눠주시면 안되나요?"

쳐다봤더니 꼬질꼬질한 모습의 덩치 큰 내 또래 남자였다.


당황스러움 반, 불쾌함 반.

거절하는 맘은 좋지 않았지만,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던 것 같다.

"죄송합니다"하고서 다시 신호를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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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 남자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인심 참 각박하다! 너네 자식들도 꼭 나처럼 되라!!!"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누구에게 한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순식간에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나처럼?

저사람이 말한 '나처럼'이 무슨 뜻일까?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있다는 뜻일까?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단순한 저주의 말이었던걸까?


이 말이 기억에 남는것은 구걸을 거절한 내 눈에 순간 들어왔던, 그 사람의 수치심때문이었던 것 같다.

늘 생각한다.

공평하지 않은 세상사라고.

누군가는 좋은 환경을 갖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반대로 누군가는 유복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유복함으로 다른 사람을 깔봐서는 안되고, 반대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사람인생, 각자 출발점이 다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살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존중하기 힘든 삶이 있다.

그들 특유의 패배적인 마인드가 싫다.

사지 멀쩡한 저 몸으로 할수 있는게 정말 구걸밖에 없었을까?

저 나이까지 저 사람을 살게 해준 방식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굶주려 피골이 상접한 몸이 아닌, 그 큰 덩치로 현재를 만들기까지 저 사람도 다른 삶의 방식을 수없이 접했음이 분명하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다른 방법을 분명히 알고있다는 뜻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 사람이 편한길을 선택하면서도 아무것도 감내하고 싶지 않아하는 그 내면을 알았기에 화가났던 것 같다.


세상에는 약자들이 많이 있다.

나 또한 때론 그 약자에 포함되기도 한다.

약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다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 다른 사람의 노력에 편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지 않다.

그러나 온기를 나눌 줄 아는 그 작은 선한 마음조차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들에,

정작 온기를 느껴야할 사람들은 더 추운 겨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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