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부록] 광녀의 짝, 사랑(2)

(에세이 한 꼬집) 내가 광녀가 된 이유

by 광녀의 인생철학


중딩 시절,

엄마로부터 공부에 대한 잔소리가 사라지고 공부를 하는 법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실업계로 가게 되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엄마가 수도하고 계시는 종단에서 운영 중인 학교를 소개해주시며, 이 학교로 갔으면 하셨다. 나는 엄마 말대로 입학을 했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처음으로 배정받은 우리 반에는 잘생기고, 이쁜 학우들이 상당히 많았다. 입학하자마자 이런 일도 있었다. 교실로 향하고 있는데, “야! 야! 저 반에 김민희(연예인) 닮은 사람 있대” 깜짝 놀라 쳐다보니 다른 반 남학생들이 우리 반을 향에 우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매 쉬는 시간마다 그 연예인 닮은 친구를 보기 위해 다른 반 남학생들이 우리 반 창문을 기웃거렸다. 다들 중학교 때는 여중, 남중을 다녔을 것이 뻔하다. 나의 중학교도 남녀공학이었지만, 중3이 되고서 남녀공학이 되었다. 이성에 대한 추억이 중학교 땐 없었다. 다들 그렇게 3년을 버티다 와서 그런가. 남녀공학이었던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입학 초반부터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던 것 같다.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선 어김없이 우리 반에서 누가 제일 잘생겼고, 누가 제일 괜찮은지 인기투표를 했다.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우리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들끼리 여자들에 대한 인기투표를 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인기투표에 언급이 되었던 여자 친구들은 하나둘씩 남학생으로부터 고백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다른 여학우들에 비해 미모가 특출나진 않았지만, 못생긴 편에 속한다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같은 반 남자 친구들의 관심이 나에게까지 오기엔 다른 친구들이 너무 예뻤다. 그걸 인정해서였을까. 초반에는 조금 섭섭했지만, 나름 괜찮았다. 그래도 친구들과 진행했던 첫 번째 미팅에서 친구들이 제일 괜찮다고 했던 남자와 내가 커플이 됐다.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을 해보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연애와는 너무 다른 스타일에 겁을 먹고 헤어졌다. 이 경험으로 미팅은 다시는 안 간다 했더니 자리 부족하다고 머릿수만 채워 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나가게 된 두 번째 소개팅. 본인도 자리만 채우러 나왔다고 커플엔 관심 없다던 상대 주선자와 나만 커플이 되었다. 내가 배스킨라빈스 광고에 나오는 아이와 닮았다나 어쩐다나. 어찌 됐든 우리 반에서 남자들의 고백을 받지는 못했어도 이 두 번의 미팅으로도 나의 자존심을 지킬 명분은 충분한 것 같다.


또 하나, 미모의 관심을 대신 채워 준 명분이 있었다.

그게 바로 연극이었다. 연극부 첫 연극은 뮤지컬 형식이 대본이었다.

고등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풀어놓으며 고민을 해결해가는 내용에 중간중간 배우들의 노래 장면이 삽입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 주인공 역할을 뺏긴 게 분해 다시 들어온 연극부였다. 배역을 정하는 오디션에서 주인공 역할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대놓고 주인공 역할 오디션 보기에는 수많은 2학년 선배들의 눈치가 보였다. 학생의 역할은 다 주인공처럼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여선생 역할로 오디션을 봤다. 그렇게 나의 첫 역할은 여자 선생님 역할이 되었다. 연극 연습이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뮤지컬이라 하지 않았던가. 연습이 진행되면 될수록 노래 장면이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뮤지컬 장르의 대본이 그냥 일반 연극 대본으로 탈바꿈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희한한 노릇이다. 다른 사람 노래 장면은 싹 다 빠지고 나만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남게 되었다. 아마 그때 연극을 본 사람들은 대뜸 혼자 노래 부르던 내가 이상해 보였으리라. 그런데 지금 와서 밝히지만 실제 그 연극은 뮤지컬 연극이었다. 나만 정상적으로 연기한 거다.


어찌 됐든 나만 노래했던 뮤지컬 연극이 시작됐다. 연극은 하루 2회, 3시와 7시 공연이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연극부 3시 공연에는 1학년 전교생 수업을 빼고 우리 공연을 보러 오게 해 주셨다. 이 날, 오후 3시 공연 관객석도 같은 학년 1학년들로 가득 찼다. 그 관객석 중간에 엄마와 남동생이 관람하러 와서 앉는 걸 보았다. 나의 공연을 가족이 처음으로 보러 와 준 날이었다. 가족이 보러 와서 일까. 첫 공연이 더욱 긴장이 되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척이나 긴장되었지만 연극이 진행될수록 적응도 되고 긴장감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눈물 흘리며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을 위로하며 노래 부르는 장면이 왔다. 당시 매일 하던 발성연습에 목소리가 많이 틔여 노래도 제법 부르던 터였다. 술술 잘 나오던 노래 막바지에 이르렀다.

“쓸~쓸한 느~낌!(삑싸리)”

나의 엇나간 노랫소리를 들은 관객석에서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아, 창피하다. 그것도 엄마, 동생이 처음 보러 와 준 공연에서 삑싸리라…

다음 날, 학교를 갔다. 연극을 봤던 같은 학년 학생들이 “연극 잘하더라. 노래 진짜 잘 부르대” 라며 안부를 전해주고 갔다.


두 번째 공연.

조연출을 맡았던 ‘뻐꾸기’라는 창작공연에서, 진짜 얄미워 깨물어 쥑이고 싶은 반장 역할을 맡았다.

반장 : (손을 번쩍 들며 선생님의 시를 중간에서 뚝 끊는다) 선생님!
선생님 : (갑작스러운 소리에 약간 놀라며) 갑자기 왜 그러죠?
반장 : 선생님! 숙제가 있었습니다. 뻐꾸기에 관해 조사해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 아! 그랬었죠? 그럼 이 시를 배운 다음 그다음에 숙제 검사를 하도록 하겠어요.
반장 : 선생님!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이 시를 배우기 전 먼저 이 시의 중심 소재인 뻐꾸기에 대해 알아본 다음 이 시를 배우는 것이 더 괜찮을 듯싶습니다.

반장 : 선생님! 제가 먼저 발표해 보겠습니다!(자리에서 일어나) 뻐꾸기는… 이상입니다!
아이들 : 우~~~ 와!
반장 : (아이들의 감탄사에 당연하다는 듯 아주 우쭐대며 앉는다.)

반장 : (선생님께 궁금증을 털어놓는 친구에게) 노아 넌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니? 꼭 무식한 티를 내야겠니? 모르는 거 있음 쉬는 시간에 나한테 물어봐! 이 똑똑한 내가 뭐든지 다 말해줄 테니까.

대사 하나하나가 참 얄미운 배역이다. 이 역할을 연습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얄미워 보일지 연구를 참 많이 했다. 그리고 연극 당일, 얄미운 역할을 아주 익살맞게 잘 소화시켰다. 다음 날, 학교에서 “야! 니 진짜 얄밉더라. 얄미워서 죽는 줄 알았디” 보통 친구들한테 얄밉다는 소리가 들으면 하루 종일 그 소리가 맴돌아 속앓이를 했을 텐데, 이번 얄밉다는 소리는 왜 그토록 기분이 좋았던지. 연기 맛이 이런 것인가 보다. 평소 착하다는 친구들 말에 나는 항상 착한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연기가 그렇게 통쾌할 수 없다. 나쁜 사람 역할을 맡으며 평소에 하지 못하는 행동을 대놓고 할 수 있는 그 순간. 아마 수많은 연기자들도 이런 악역을 맡으며 통쾌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교내 인기를 한 번에 가져다준 연극은 세 번째, 교내 축제 때였다.

축제 연극은 갑작스러운 인기에 교만함을 떨던 가수가 뉘우치고 반성하며 개과천선하는 내용의 연극이었다. 대본을 살펴보니, 가수가 공연하는 장면이 있었다. 춤에 관심 많았던 나는 ‘이때다.’ 싶었다.

“선배, 여기 이 장면. 백댄스 필요하지 않아요? 백댄스 제가 할래요.” 선배가 안된다 그럴까 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래, 그래라”

"앗싸"

여태껏 어두컴컴해진 베란다 창문을 보며 집에서만 춤을 추다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춤을 출 기회가 생겼다. 이번 연극은 특정한 배역 없이, 백댄서 1, 행인 1, 매니저 등등 1인 다역을 맡았지만, 그 어떤 역할보다도 짧게 춤추고 내려올 이 백댄서 역할을 할 생각에 기분 좋았다. 가수 첫 공연 장면의 백댄서로 가수 자두의 ‘잘 가’ 안무를 아주 열심히 연습했다.

드디어 공연 디데이가 왔다. 학교 강당 뒤편 대기실에서 선배들이 분장을 해 주었다. 여느 가수 못지않게 화장도 머리도 이쁘게 하고 싶었다. 머리숱도 없고 이마도 넓은 편이라 앞머리를 내려 머리 묶으니, 춤추면서 얼굴 잘 보이려면 머리 매 묵어야 한다며 한 선배가 고무줄을 가져와 얼굴 살갗이 튕겨 올라갈 정도로 머리를 위쪽으로 매매 묶어주었다. 그 헤어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선배가 해주는 거라 아무 찍소리도 못 내고 무대에 올랐다. 상당히 많은 학우들이 강당 무대 밑에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 이제껏 나를 갖고 장난친 거야 너 없이도 살 수 있어 잘 가라 잘 가’

노래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갖는 나의 댄스 무대도 시작되었다. 그동안 혼자 추다 남들 앞에서 추는 댄스 무대가 꿈만 같았다. 아주 신명 나게 춤에 빠져 췄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기들이 우리 무대를 보러 모여드는 게 보였다. 후반부에 골반을 어마 무시하게 돌리는 장면이 있었다. 모여드는 동기들을 보며 더더 열심히 엉덩이를 내 돌렸다.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연극을 봤던 동기들이 연극 내용이 뭐였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마이크 없이 진행된 연극에, 그 큰 강당을 채우기에는 우리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거였다. 그러나 나는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무슨 연극인지 내용을 모르겠다 하던 그 연극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되었다. 춤을 엄청 잘 추는 연극부 멤버로 각인이 된 것이다. 이 공연이 끝나고 친구들, 특히 남자애들로부터 ‘진짜 멋있더라, 춤 잘 추더라’는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들었다. 나의 춤을 본 댄스부 멤버가 댄스부 인원이 부족하다며 채워줄 수 있냐고 제안도 왔다. 내가 춤추는 거 보고 상당히 놀랬다고도 했다.


이쁜 미모가 아니어도, 같은 반 남자들의 고백을 받지 못했어도, 운이 좋은 나는 미모를 대신할 더 좋은 인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동기들의 인기를 실감하며 2학년이 되었다.




다른 여학우들이 남자들의 고백을 받을 때, 나는 그들로부터 장난과 놀림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 당뇨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얼굴이 볼그스름 붉어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술주정뱅이 마냥 두 볼이 뻘게지기 시작했다. 나의 얼굴을 보며 남학생들은 '촌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놀려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놀려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같이 장난치는 나를 놀려먹는 게 남자애들은 재미있었나 보다.


내 나이 3살부터 3학년까지. 부모님은 안락동 버스정류소 앞에 토큰(당시 버스 차표용 동전)과 과자를 팔던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셨다. 당시 나에게 그 구멍가게는 아주 널찍.. 까진 아니었지만, 제법 큰 가게였다. 유치원 마치고 동네 어르신들과 대추차를 나눠 마시고 계시던 엄마의 대추차를 날름 뺏아마시고 뛰어서 단칸방으로 들어갈 정도로는 넓은 구멍가게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성인이 된 후 아직 남아있었던 우리 아빠 이름의 구멍가게를 다시 찾은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된 내가 들어가니 꽉 찰 정도로 쪼맨했다. 이렇게 작은 구멍가게인 줄은 몰랐다. 암튼 그 구멍가게에서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나는 동네 친구들과 골목대장 역할을 하며 놀고 지냈다. 한때. 소꿉친구였던 남자애 두리가 나를 찾아왔다.

"아줌마, 미니는요?"

"미니 방금 화장실 갔는데"

당시 우리 화장실은 뒷마당 끄트머리에 위치해있었다. 뒷마당 화장실까지 찾아온 두 녀석이 응가 누고 있던 나의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도망치며 온 동네에 외쳤다.

"김미니 똥 싼다~~~"




나는 본래 남자였던 게 분명하다.

엄마 사주에 첫째는 아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엄마 뱃속에 찾아왔을 때 엄마 지인들은 나의 발길질을 보며

"야 분명히 남자애다."라고 했다고 한다. 나의 태몽은 쌀독에 들어있는 고구마라고 했다. 고구마도 아들 꿈이라고 한다.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엄마 말에 고구마를 들어보니 밑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고 하면서 그래서 딸인 내가 태어난 거 같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건강 문제로 참 애 많이 먹었다고 하셨다. 건강 문제로만 애 먹인 게 아니었다. 나는 걸음마도 상당히 빨랐다고 한다. 돌되기도 전, 항상 뛰어다녀 눈 살짝만 딴 데 돌리면 하루 종일 나를 찾아다니기 바쁘셨다고 했다. 5살이 된 나와 4살이 된 옆집 아이가 사라져 양 집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찾아도 찾지 못하고 해질 녘 경찰서에 신고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래시장 가는 길 육교 밑에서 우릴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때였는가 보다. 내가 어떤 동생의 손을 잡고 하늘 높이 쏟아있는 육교 계단을 하염없이 바라봤던 그 기억이 양 집이 우리 둘을 찾는다고 헤매었던 그날이었나 보다.


이토록 나는 선머슴 같은 성품을 많이 지녔었다. 엄마가 항상 여성다움이 없었던 나를 보며

"어이구~ 버지기야 버지기야"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였을까. 남자애들도 나를 아주 편하게 대했다. 나를 놀리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도 남자애들과 서로 놀리며 장난치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고백 대신 놀림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




얼굴 반반하게 생긴 남자애가 2학년 반장이 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그 반장과 내가 굉장히 친해져 있었다. 종종 쉬는 시간마다 그 친구가 놀리고 도망 다니는 그 아이를 내가 쫒아다니고 있거나 아님 그 반대로 내가 놀려먹고 도망 다니고 그 친구가 나를 잡으러 다니며 보내곤 했다. 솔직하게 밝히고 싶진 않았지만, 나는 술 문화를 고등학교 친구들과 배웠다. 인성교육에 특화된 고등학교였지만, 하교 후의 우리들까지 관리해줄 순 없었다. 지금은 신분증 없이 술, 담배 구매가 안되지만 라떼는 신분증 없이도 종종 구매 가능한 곳이 있었다. 하교 후 사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를 신분증 검사 없이 시장터 다락방으로 그냥 보내주셨던 인심 좋은 문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선생님들과 부모님 몰래 우리끼리 음주문화를 즐기곤 했다. 나와 친했던 얼굴 반반한 반장은 종종 맥주와 과자를 사들고 우리 동네로 왔다. 우리 집 위에 남중이 하나 있었다. 학교 운동장 옆 가로등 불빛을 가려주는 큰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속닥거리며 반장과 나 반장이 데려온 친한 남자 친구, 이렇게 셋이 그렇게도 많이 맥주 파티를 즐겼다.


한 날, 수업을 마치고 나가시던 선생님이 반장 칭찬을 그렇게 하고 나가셨다. 나는 남자의 잘생긴 외모만큼, 인성을 참으로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반장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 게. 쌤께서 반장 인성을 그렇게 칭찬하고 간 이후부터 그저 친하게 놀려먹고 놀던 그 친구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번째 짝사랑 고백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친구에게 좋아한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 친구를 좋아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기침과 사랑, 그만큼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숨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기똥차게 그 감정을 잘 숨겼다. 친구들과 마피아 게임을 할 때, 내가 마피아가 되면 늘 마피아 승리로 끝났다. 나의 연기는 일상 속에 스며들어,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마 그 친구도 그러했으리라. 친한 친구 그 누구도 내가 그 친구를 좋아했으리라 의심하지 못했다. 내가 착한 연기자라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만약 나쁜 연기자였다면, 지금쯤 엄청난 사기꾼이 되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난 참 잘 웃었다. 그냥 웃기만 한 게 아니다. 자주 웃는 웃음만큼 아주 괴기한 웃음소리도 지녔다. 내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니 웃음소리 억쑤 기괴하다. 광녀 같다. (놀리며) 광녀야" 하고 도망 다녔다. 나를 놀려 먹는 그를 쫓아가며 말했다.

"니 미칠 광자 쓸 줄 아나? 한 번 써봐 봐. 그럼 내가 인정할게"

눈치를 보아하니, 미칠 광자를 쓸 줄 모르는 눈치다.

내가 아는 한자라곤 하늘 천(天), 땅 지(地), 이게 전부였다. 초등 아니 국민학교 시절, 무료로 서예 알려주신다는 주민 할아버지 집에 잠깐 다니면서 "우와 붓글씨 진짜 잘 쓰신다"만 느끼고 온 적만 있었지. 한자에 대해선 나도 무지했다. 그런데 순간 내 눈앞에 빛 광(光) 자가 훤히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할 맨치로 선명하게 보였다.

"내는 빛 광자 쓸 줄 안다. 니 미칠 광 못 쓰제? 그럼 나는 미칠 광이 아니고 앞으로 빛 광자 광녀다."


아무도 모르는 내 짝사랑 상대에게서 고백 대신 광녀라는 별명을 받고 그렇게 나는 빛 광자 광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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