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지계(斷機之戒): 학문을 중도에 그만 두면 안된다는 뜻이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22. 아름다운 자연의 품안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다.
“앞으로 얼마동안 불린 콩과 솔잎만을 먹으며 지네야 하나요? “
다음날 새벽 청수 사숙이 불린 콩과 솔잎을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 때 승학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저녁은 억지로 입에 넣고 씹어 먹었지만 힘이 들었다. 비릿한 냄새와 거친 솔잎의 뾰족한 끝과 향 때문에 삼키기가 어려웠었다. 승학은 고통스럽게 콩과 솔잎을 삼켰던 기억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여기 지리산에 있는 동안 내내 그렇게 먹어야 할 것이야. 적응이 되면 아주 좋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게”
“씹어 삼키기가 힘들었습니다. 먹고 나서 속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다 그런 게야. 꼭꼭 씹어서 삼키게. 콩과 솔잎을 같이 먹어야 변비에 안 걸린다네, 함께 오래오래 씹어 삼키며 나중에 아주 맛이 좋아질 것이야.”
“예. 알겠습니다.”
청수사숙은 동굴에서의 여러 가지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나. 나는 여기 올 때나 여기에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었네. 그 이유를 말해 주겠네.”
그의 표정과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승학은 자연히 긴장하여 귀를 쫑꼿하게 세웠다.
“단군 의통은 우리 민족의 웅비하는 때에 꽃을 피울 21세기의 의학일세. 그래서 비밀스럽게 전수되고 있었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의학자와 경찰들은 우리 민족 의학 말살정책을 폈다네. 그들은 사상체질에 대해선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그러나 단군 의통의 체질의론은 끈질기게 추적했지.”
“그건 왜 그렇게 되었나요? 사상체질은 왜 가만히 내버려 두었는가요?”
“그건 사상체질의 동의수세보원은 책으로 발간되었고 특이한 비법은 없다네. 일본의 전문가가 연구했지만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이지. 일본은 의학적으로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었다면 사상체질을 자기네들이 가져가서 발전을 시켰을 것이야."
"그렇겠습니다. 그들은 가치 있는 것들은 모두 뺏어갔지요."
"그렇지.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도 일본인들은 연구를 하고 활용을 했지. 하지만 사상체질은 미완의 이론이고 체질감별의 확정성이 없어 큰 관심이 없었어."
"그러면 단군 의통은 사상체질이나 다른 중국의학과도 많이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인가요?"
" 단군 의통에서 전해지는 ‘천고의 비전’은 내용이 방대하고 어마어마하다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등 세계적인 열강은 당연히 그것을 뺏으려고 했지. 갖은 수단을 다 부렸지.”
“그것을 뺏기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나요?”
“당연하지. 청암 사부님은 엄청난 천재적 두뇌와 혜안을 지니고 계시지. 아무리 일경이 찾아다녀도 며칠 앞 일을 예측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있으셔서 잡힌 적이 없다네. 청산 사형도 사실 천재적이신 분이시고 대단하신 분이야. 그 모든 것을 알고 통제하는 능력이 대단하신 것이지.”
“그러시다면 조사님이나 사부님은 심안을 지니시고 신통력을 어느 정도 하실 수 있다는 뜻인가요?”
“못 믿겠지만 그렇다네, 사실 어제 여기 오면서도 사부님이 여기 안 계실 것이라고 예감을 했네. 사부님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절대 띄지 않는다네. 신출귀몰한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야.”
그는 잠시 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말했다.
긴 얘기를 할 시간은 없네. 여기 있는 동안 낯선 사람이 있으면 피하고 말을 섞지 마시게. 또 누군가 자네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아무런 말도 하면 안 되네. 지금도 우리 단군 의통을 추적하는 미국이나 일본, 중국 , 북한 등의 기관들이 있다네. 또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스파이들도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다네.
승학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뭔가가 있었다.
어딘지 모를 수선제의 분위기와 늘 경계하는 듯한 사부의 표정이 스쳐갔다. 그러나 사부는 한마디의 언질도 없었다. 아마 그것도 보안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청수 사숙은 그렇게 당부를 하고 새벽 일찍 길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자 승학은 동굴 속에서 참선에 들어갔다. 동굴 밖에는 새벽 산새 소리가 울리고 바람소리가 서걱서걱하며 혼자 있는 승학의 마음을 긁는 듯했다.
날이 밝아오면서부터 승학은 그곳에서 적응을 해야 했다.
적막한 산에서 지내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덮어두었던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면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요한 호숫가에 산이 비치듯이 자신의 삶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맑으면 복잡한 현실은 물론 미래까지 볼 수 있는 법이다. 승학은 지리산에서의 깊은 산속에서 침묵과 수행, 절대고독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를 깊은 산속에 뎅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은 적막 그 자체였다.
승학은 약초를 캐기 위해 근처를 배회했다. 하지만 무엇이 약초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고 두려움이 일어났다.
하는 수 없이 한나절이 지나서야 다시 근처의 계곡으로 내려왔다.
예기를 나눌 사람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예전에 사부님이 홀로 남겨졌을 100일간의 산 생활이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그 생활에 대해 자세히 들었기 때문에 정신을 다잡았다.
승학이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인 산생활을 시작하자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곳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이었지만 크고 작은 폭포수가 화폭과 같았다.
계곡의 맑은 물과 기암괴석은 작품이었다. 또 오래된 나무들과 푸르런 숲은 동양화 그 자체였다. 승학은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승학은 대자연의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단지 몸을 위해 그전 날 저녁처럼 콩과 솔잎으로 식사를 했다. 그 전날보다는 한결 맛이 있었다. 승학은 식사 후에 일과를 정해 공부와 수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서 산속 생활에 적응이 되었다. 나무와 바위, 꽃들과 새들, 가끔씩 멀리서 보이는 산짐승들이 친구처럼 여겨졌다. 두려움은 차츰 가시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품안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21일이 지났을 때 저녁 무렵에 인기척이 들렸다.
산속 동굴로 온 이후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의 소리였다. 승학은 바짝 긴장하고 아무 기척 없이 가만히 동굴 속에 앉아 있었다.
“으흠. 거기 안에 누가 있소.”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청수 사숙이 승학이 행여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랄까 봐 미리 언질을 주는 말이었다.
승학은 반갑게 문을 열고 나갔다.
“사숙님 오셨습니까?”
그의 옆에는 신선과도 같은 풍모의 노인이 서 있었다. 승학은 그의 몸에서 기가 발산되는 것이 느껴졌다. 산속에서 화식을 않고 지낸 그 짧은 기간 동안 감각이 예민해져 있었던 것이다.
문득 오래 수행한 사람의 몸에서는 기가 발산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승학은 그를 보는 순간, 왠지 그에게 강력하게 이끌리는 느낌이 일어났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승복감 같은 것이었다. 승학은 마음을 안정시키며 가다듬었다.
“큰절을 올리시게. 이분이 자네의 사조님이신 구자 자자 서자 어른이시라네.”
승학은 큰절을 올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편히 앉으시게.”
청수 사숙이 눈짓을 했다. 승학은 편하게 앉았다. 그는 승학을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산속 생활한다고 고생했겠네. 단기지계(斷機之戒)의 뜻을 아는가? 학문을 중도에 그만 두는 것은 베를 끊는 것처럼 아무 쓸모가 없다네. 마땅히 알고 경계를 하도록 하여라. ”
의외로 그의 목소리는 젊고 다정했다.
상상하던 흰 수염과 하얀 도포자락은 아니었다. 더욱이 가까이서 보는 모습은 사뭇 달랐다.
도시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70대의 평범한 외모와 목소리,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일순간 승학은 정말 조사님일까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승학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느꼈다. 깊은 병이 들어 죽음을 각오했던 시간들을 지나 지리산 깊숙한 동굴까지 오게 한 그 어떤 힘이 몸 안에서 회오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