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체질의학 소설> 절처봉생

끊어진 곳에서 생을 새롭게 만나다.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25. 생과 사를 가름하는 진맥과 처방


“이미 다 죽어가는 아이를 살린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

이조 참판을 역임했던 구대감은 호통을 쳤다. 새벽 댓바람부터 문을 탕탕 두드린 사람이 아들을 살리겠다고 만나자고 하니, 화가 치밀었다. 이미 전국의 명의들을 모아 온갖 노력을 해도 백약이 무약이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3대 독자 외아들은 의식을 잃고 간신이 숨만 붙어 있었다.

집안은 먹구름이 끼었고 한숨으로 땅이 꺼지고 있었다. 그런 순간에 뜬금없이 지나가던 나그네가 대뜸 아들을 살리겠다고 하니, 누가 믿어지겠는가.

자식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다. 젊은 시절 의학을 공부한 그로서도 이제는 한계라고 생각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남아 있었다.

나이 든 하인이 물러가려고 하는 순간 그가 낮으막하게 말했다.

“자네가 보기에 그 나그네가 어떻게 보이던가?”

“소인이 보기엔 행색은 남루하지만 뭔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감히 대감마님의 대문을 크게 두드린 것만 봐도 예사롭지는 않습니다.”

“그렇긴 하네.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해 보게.”

“그 사람이 크게 문을 두드려 소인이 마당쇠와 돌쇠와 같이 가서 혼을 내고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행색은 초라해 보이지만 어딘지 위엄이 있어 그렇게는 못했습니다. 좋은 말로 집안에 환자가 있으니, 조용히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하니 그가 환자가 있으면 자신이 고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또 당당하게 문을 두드린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있다고? 그러면 그 사람을 조용히 이쪽으로 모시고 오도록 해라.”



나이 든 하인을 보내고 구대감은 잠시 생각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던가? 근 5년이 넘도록 전국의 명의를 모셔서 든 돈이 적게 잡아도 몇 천냥이 들었다. 의원들은 대부분 처음엔 고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차도는 없고 점점 병이 깊어만 갔다. 이런 상태이지만 천지신명의 도우심이 있다면 절처봉생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대감마님, 나그네를 모시고 왔습니다.”

구대감은 문을 열지 않고 안에서 퉁명하게 물었다.

“나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오?”

“일찍이 천문과 지리, 의술을 공부해서 산천을 주유하고 있소. 그런데 오늘 새벽에 여기에 검은 먹구름의 기운이 잔뜩 서려서 여기를 찾아왔소이다. 필시 집안에 우환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문을 두드렸소. 분명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오?”

“듣기에 환자가 있다고 들었소. 의술을 공부한 바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여쭤보려고 했소. 그것이 대감을 만나야 하는 이유라오.”

그 말을 듣고서야 구대감은 문을 열고 대청마루로 나와 그를 보았다. 삿갓을 쓰고 행색은 남루했지만 눈빛이 맑고 선풍도골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그를 보며 말했다.

“의술을 하였다니, 3대 독자 아들의 진맥과 처방을 부탁하겠소. 내 아들은 향년 20세요. 16세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소. 원인을 못 찾고 5년이나 병석에 누워 있다오. 최근 일주일 전부터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의원을 불러도 모두 고개를 저으며 치료를 않고 줄행랑을 쳤소. ”

“예, 알겠소이다.”

구대감은 청허선서를 데리고 의식이 없는 아들 곁으로 갔다.

“전국의 명의들이 여기를 다녀갔소. 자세히 살펴봐 주시오.”

그는 묵묵부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는 과연 병색이 완연하였다.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금방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러나 청허선사는 가만히 앉아 진맥을 하고 환자의 혈맥을 여기저기 짚어보았다. 그는 한마디 말없이 혈맥을 찾아내어 침을 놓고 그 곁에 정좌하고 앉으며 말했다.

“여기에 마실 물과 깨끗한 천을 가져다주시오. 그리고 앞으로 5시간을 아무도 이 방에 들이지 말아 주시오. 그간 여기서 치료를 할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정좌를 한 상태로 침묵을 지켰다. 구대감은 그를 지켜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소. 그럼 5시간이 지나서 다시 오겠소.”

그는 하인이나 다른 식솔 그 누구도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엄명을 놓고 돌아갔다.

구대감은 대청마루에 앉아서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을 더듬었다.

원래 구대감은 삼 형제에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 그런데 구 씨 가문에 몹쓸 내림병이 있어 모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형제들이 죽어갈 때마다 슬픔과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했었다. 그런데 그 몹쓸 내림병이 3대 독자 외아들에게 오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구대감 역시 그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다.

생명이 경각에 달했을 때 하늘이 내린 인연을 만나 절처봉생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약이 무효하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지나가던 대사를 만나 겨우 목숨을 구했었다. 그는 백방으로 그 대사를 찾았지만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이를 어떻게 찾겠는가?

자신이 20세 때 만난 그 대사는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몇 번이고 하인을 시켜 동태를 살펴오게 했다.

하지만 하인들은 한결같은 말만 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구대감은 실오라기만 한 희망을 걸고 막연히 기다렸다. 하지만 몇 번이고 계속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자 불현듯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 삿갓을 쓴 사람이 도망이라도 가버린 것은 아닐까? 혹은 아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닐까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

그러나 5시간을 억지로 꾹꾹 참고 아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갔다.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인고?’

그는 문을 살며시 열고 안을 보았다. 그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의식을 잃고 누워있던 그 아들이 앉아서 나그네랑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놀라서 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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