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은 음양합일로 이루어진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28. 사상체질과 28 체질의 관계
“사상체질과 단군 의통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사조님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듣다가 잠시 차 한잔을 할 때 승학이 물었다.
“그 얘기도 하자면 긴 사연이 있다네. 음과 양의 원리에 따라서 그를 만났지. 세상의 모든 관계나 창조성은 반드시 음과 양의 만남이 있네. 그래야 창조성이 일어나기 때문이네. 차를 마저 마시고 그 얘기를 해 주겠네.”
자정도 넘긴 한밤이었다.
깊은 산 어딘가에서 부엉새 소리가 울렸다. 바람소리가 동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사조님은 그 긴 얘기를 하는 내내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피곤한 것은 승학 자신이었다. 그가 승학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여기 오핵환을 먹게나. 이것을 먹으면 다시 정신이 멀쩡해질 것이야.”
승학은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아서 복용하며 말했다.
“사조님, 저는 이 오핵환과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습니다. 사부님이나 사숙님도 저에게 이 오핵환을 주었습니다.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인지요?”
“무릇 귀한 약은 인연이 있어야만 받을 수가 있는 것일세. 자네가 오핵환과 인연이 깊은 것은 하늘이 내린 천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네. 아무나 이 약을 받을 수가 없다네. 자네는 단군 의통의 전수자라서 특별하게 자주 인연이 되는 것이야.”
“아. 그렇습니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는 웃으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마는 다양한 능력을 갖춘 인재였다네. 그런데 신분의 벽으로 일찍 꽃을 피울 수가 없었다네. 양반가문에 네 번째 부인의 소생이었기 때문이었지. 서출의 신분으로 한이 많이 쌓일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술을 익혔지. 또 할아버지의 영향과 개인적인 고통으로 성리학을 했다네.”
“당시는 신분의 벽이 높았나 봅니다.”
“그랬었지. 그는 어릴 때부터 영특했다네. 13세 때 향시에서 휘장장원을 했지. 그러나 서자 신분이 되어 입신출세의 길이 막혀 가출을 했어. 그런 상황이면 얼마나 울화가 치밀겠는가. 그는 울화병이 들어 7여 년 간의 긴 방황을 했다. 그때 사부님을 만나 수행을 하고 학문과 의학의 기틀을 마련했어.”
“조사님과 비슷하게 중병으로 인해 인연이 되었군요.”
“그렇지. 천의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만나게 되는 것이지. 사실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육체와 정신이 다 몸부림을 치면서 의식이 깊어지는 법일세. 병 없이 사는 것도 좋지만 병을 통해서 성장하기도 하는 거야. 세상에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다네. 밤과 낮, 해와 달이 있듯 음과 양이 섞여 있을 뿐이라네.”
“아. 그렇군요. 그 어르신은 자신의 병 때문에 의학을 공부하고 사상체질을 연구하신 건가요?”
“그렇지. 그 당시엔 약이 없다는 열격반위증과 해역증을 앓았네. 아무리 용한 의원에게서 약을 먹고 침을 맞아도 백약이 무효였다네. 그 시기에 사부님이 치료를 해 주셨다네.”
“열격 반위증과 해역증이 뭔가요?”
"분노가 싹트고 마침내 그 감정이 인체내부에 깃들면 누구나 병이 들지. 다만 체질에 따라 걸리는 병세가 다를 뿐인 것이야. 이제마는 태양인체질로서 신분차별로 인한 울화증으로 병에 걸렸다네. 열격 반위증이라는 체질적 원인의 중병이었네. “
“그 체질에만 걸리는 병이라는 뜻인가요?”
“태양인체질에만 걸리는 병이지. 열격증은 증세로 보면 만성체증이야. 음식물이 소화가 안 되는 것을 열이라고 하네, 또 음식물을 토하고 거부하는 것을 격이라 하지. 반위증은 아침에 먹은 것을 저녁에 토하고 저녁에 먹은 것을 아침에 토하는 심각한 증세로 나타나네.”
“그런 심각한 증세도 있습니까?”
“체질병은 지병이어서 무서운 증세를 수반하는 것이지. 태양인체질에게 일어나는 주된 병인은 감정의 통제를 벗어나는 분노의 감정과 기름진 음식이지. 해역증은 상체는 튼튼하나 하체가 약하여 종아리가 저려서 걸어 다니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네. 해역증은 해(解)라는 것은 근무력증이야. 역이라는 것은 뼈와 인대의 병으로 근골무력증이라네. 이러한 병증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은 얼마나 극심하겠나. “
“그런 경우, 전통 한의학으로는 치료가 안 되나요?”
“당연하다네. 체질적 질병은 오직 체질을 알아야만 고칠 수 있네, 그래서 옛날부터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이 나왔지. 이제마는 무려 7년을 그 병에 시달렸다네. 거의 죽음 직전에 나처럼 사부님을 만난 것이지.”
“그렇다면 사조님과 이제마 그 어르신은 언제 만났나요?”
“내가 사부님을 따라 금강산에 가서 병이 낫고 묘향산에 들렀다네. 당시 조선의 4대 명산은 동쪽으로는 금강산, 남쪽으로는 지리산, 서쪽으로는 구월산, 북쪽으로는 묘향산이었네. 그 산들을 모두 돌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 필수였다네. 묘향산에 도착해서 그를 만났네.”
“그냥 우연히 만났는가요?”
“묘향산을 오르는 중에 바위에 쓰러져 드러누워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이지. 사부님이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그에게 침을 놓아 정신을 찾게 하고 치료를 해준 것이지. 그는 나중에 병이 완치된 후에 제자 입문을 해서 나와는 사형사제가 되었어. 나보다 3살 아래여서 사제가 되었네.”
“그렇다면 의학 공부를 같이 하셨다는 말씀인가요?”
“청허 사부님이 같은 의학공부를 가르치면서도 전문분야가 조금 달랐어. 그는 체질의 기본 원형인 4 상체질을 가리켰어. 반면에 나는 체질의 분화 정형인 28 체질을 가르친 것이지. 그건 원형에 해당하는 음의 체질의론을 양체질인 이제마에게 가리키고 분화의 정형에 해당하는 양의 체질의론을 음체질인 내게 전수하신 것이지.”
“분화 정형이라 함은 사상체질의 분화로 인한 정형화를 의미하시는가요? 왜 그렇게 하셨는지요?”
“맞는 말이야. 분화 정형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네. 사부님은 외세가 침습하여 우리의 문화와 의학을 말살하거나 훔쳐갈 것을 미리 아셨네. 당시 왜국이 매우 위협적이었어. 그리 되면 단군 의통의 체질이론이 훼손될 것은 자명한 이치였네. 그것을 막고자 함이었지.”
“음과 양의 의론으로 나누고 음체질과 양체질에 각각 다르게 전수한 이유가 있나요?”
“모든 세상의 이치는 음과 양을 통해서 완전해진다네. 남과 여가 만나지 않고 자식 생산이 안되듯이 말이야. 음양화합을 통해 완전한 창조성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이야.”
“아. 그렇군요. 만약 사조님이 연구하신 28 체질을 빨리 발표했다면 일제가 훔쳐갔을까요?”
“그들은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을 훔쳐서 검도, 공수도, 유도를 만들었네. 그뿐 아니라 의술도 폭넓게 조사를 했었지. 만약 체질의론이 가치가 높았다면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훔쳐갔을 것이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다시 말했다.
“제마 사제는 사상체질을 후세인이 연구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을 했네. 자신의 사후 100년 후에 사상체질이 세계로 귀일 될 것이라고도 유언을 했네. 바로 그 의미가 체질의론의 완성이 2000년에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한 것이지. 앞으로 2000년대가 되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선진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야. ”
승학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었다.
승학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한 반의 30%가 점심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진학도 30%는 하지 못했다. 1980년 경제개발 5개년 목표가 수출목표 100억 불에 국민총생산 소득 1000불이었다. 과연 그렇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사님이 다시 말했다.
“자네는 28 체질을 정형화할 대업을 짊어지게 될 것이야. 그건 절대 쉽지 않네. 웅비하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비법은 절대로 발설하지 마시게. 홍익인간의 큰 뜻을 이뤄야 하네. 사부님이 남기신 비법서를 이해하려면 동양철학을 폭넓게 공부해야 하네. 반드시 사서삼경과 역학, 천문, 지리, 의서를 다 익혀야 하네.”
“사조님, 그러면 동양철학을 먼저 익혀야 하나요? 한의대를 먼저 들어가면 안 되나요?”
“단군 의통을 전수받으려면 필수적으로 기본적인 동양철학을 모두 공부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이 남기진 비법서를 이해할 수가 없다네. 일반대를 들어가서 그 공부를 다 한 후에 한의대는 나중에 가야 하네. 그래야만 28 체질의론을 전수받아 정형화하고 완성할 수 있다네.”
“그건 왜 그래야 하나요?”
“동양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데만 최소 10년 이상이 걸린다네. 그 후에 그 기반으로 단군 의통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네. 만약 자네가 곧장 한의대를 들어가면 동양철학을 연구할 시간이 없네. 또 기존 한의학 이론에 고정관념이 생길 것일세."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일찍이 성인이 말하길 ‘판밖에서 인물이 난다.’라고 했네. 그 틀에 들어가지 말고 인문학을 충분히 익히고 나서 뒤늦게 한의대를 들어가시게나. 그래야만 골고루 학문을 익힐 수가 있네.”
사조님은 청허 대선사님이 남긴 체질 비법서 ‘천고비전’을 묻어둔 위치를 알려주었다.
비법서는 승학이 동양철학을 공부한 이후 금정산에서 가서 찾으라고 했다. 또 승학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미리 말했다. 마치 인생 지도를 그리듯 상세히 설명했다. 승학은 구비구비 곡절 많은 삶을 살아야했지만 받아들였다. 승학은 위대한 한민족의 단군 의통을 전수받고 펼쳐야 하는 운명과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깊고 깊은 심연의 의문은 사라지고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