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4. 처녀성이나 일탈은 관습의 신호대와 같은 거죠.
한참 후에 침묵을 깨며 그녀가 아주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섹스라고 하셨잖아요. 순간 당황했어요. 아름다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어요. 그런데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이 첫 경험의 통증, 짧게 해프닝처럼 스쳐 지나간 시간들, 술 취한 남자 친구의 거친 숨소리, 무거운 몸뚱어리가 짓누르고 뱀장어 같은 생명체가 내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느낌, 때론 후회나 혐오 같은 개운치 않은 뒤끝 등이었어요. 그 순간 중에 아름다운 느낌은 없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름답다는 기대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해야 돼요.”
그녀가 하는 말이 생뚱했다. 밝고 활달한 그녀에게 보이지 않은 회색빛 일면이었다.
“섹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소리와 무용, 행위예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나요? 모든 역사의 시발점이며 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잖아요.”
그녀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언어적 표현하자면 그렇죠. 하지만 저는 처녀성에 대한 강박감이 있었어요. 또 그 반동의 한 지점에서는 일탈에 대한 욕구도 있어요. 이 두 개의 감정은 교차되지 않고 유리되어 있었어요. 제 몸에 누군가가 열어주어야 하는 막이 둘러쳐져 있었죠. 세상은 결혼 전엔 마땅히 봉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입을 했죠. 저는 그 중간에서 혼란스러웠어요. 과연 사회적으로 축하를 받으며 누군가가 봉인을 풀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처녀성에 대한 강박감을 풀어버릴 일탈을 할 것인가?"
"어떤 선택에 관심이 더 끌렸나요?"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탈순결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어요. 한데 뜻하지 않게 술에 취한 상태로 선배에게 그 봉인을 열게 내버려 두었어요. 기대와 불안이 섞인 상태로 성급하게 허둥거리는 그가 좁다랗고 긴 터널로 들어오게 받아 들였어요. 그 순간은 송곳으로 찌르는 아픔과 출혈로 이어졌지만 아주 짧았어요. 시작하자 말자 한방을 맞고 링에 길게 뻗어버린 UFC 격투기 선수처럼 그랬죠. 그때부터 환상은 빠르게 현실이 되었죠. 그다음엔 통증은 없었지만 끝나고 나면 환멸 비슷한 느낌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녀의 흡연은 옆사람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녀는 그것을 의식하고 몇 모금 빨지도 않은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정말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나요? 탈순결 이후엔 자유롭게 나비처럼 여러 꽃나무사이를 날아다녔어요. 마치 내가 남자라도 된 것처럼 생각했죠. 남자의 꽃을 선택했고 새로운 세상으로 도킹을 했어요. 그런데 아름다웠던 적이 없어요. 만약 있었다면 이렇게 40이 넘어서 싱글로 살지 않겠죠.”
"사마귀나 거미는 짝짓기 도중에 수컷을 잡아먹는다고 하죠. 혹시 그런 상상은 하지 않으셨나요?"
"어떻게 아셨어요? 가끔 욕구와 환멸이 교차할 때는 그런 상상을 했어요. 그 곤충들의 본능처럼 수컷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잡아먹는 상상이죠. 하지만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어요. 제법 괜찮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 곤충처럼 할 수 있었다면 수컷 한 놈쯤은 물고 놓아주지 않았겠죠. "
진성은 그녀의 눈빛을 들여다보고 그 허전한 공백을 느꼈다.
둘 사이에 다시 은은한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 사이를 옆 좌석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어지럽게 맴돌았다.
진성은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처녀성이나 일탈은 관습의 신호대와 같은 거지요. 금기의 신호를 꼭 지키도록 교육을 하는 시대가 있었죠. 하지만 차가 드물게 다니는 대로에선 그 신호를 안 지켜도 되는 거죠. 문제는 그러한 처녀성의 금기와 일탈과 무관하게 아름다운 섹스가 있다는 점이죠.”
“그런 것이 정말 있기는 하나요?”
“세상에는 아름다움과 추함, 보통의 풍경들이 존재합니다. 사랑에도 그런 것이 있죠. 두 사람의 자의식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섹스에도 그런 지점이 있어요. 정말이지 푸르고 깊은 산호초 바다 위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섹스가 있습니다. 두 개의 몸뚱어리가 완벽한 결합을 이루는 순간, 정신이 빠져나와 일체화되는 그런 느낌이죠. 솜털구름 위에 둥둥 떠 다닌다는 느낌이 그런 거죠.”
“어떻게든 증명하실 수 있는 느낌인가요?”
“그건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은 충분히 만끽하고 느낄 수 있으며 증명할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