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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Nov 30. 2024

30. 빙하를 녹이는 열정의 온도

열정의 온도 30. 자기 없는 세상에 나만의 자아는 삶의 의미가 없어요.

그녀는 다시 꿈틀거리는 저항의 본능을 드러냈다. 

“그러면 편한 대로 살아. 우리가 같이 지옥을 갈 수 없다면 영원을 건너는 다리도 함께 하지 못하는 거야. 사랑은 집착하는 것이지만 상실을 한다면 죽음 같은 고통을 치러야 하는 거야. 그 정도 아니면 영원한 사랑은 할 수 없는 거야."

"서로의 자유를 느끼게 해 주고 편안하게 사랑하면 되잖아요. 꼭 함께 있어야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며 사랑하고 싶어요."

"만약 평범한 사랑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선택은 자신이 하는 거야.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일주일을 생각하고 결정을 해. 일주일 이후 생각의 변화가 없으면 우리는 다음 생에 다시 만나.”

그녀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진성은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나왔다. 지옥같이 컴컴한 터널을 혼자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따라왔지만 진성은 눈길도 안 보냈다. 


진성은 빠르게 근처의 택시를 타고 떠나버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성은 목이 메어가며 차가운 눈물이 뺨을 적셨다. 그러나 아무리 죽을 듯이 고통스럽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한계선이 있었다. 진성에게 사랑은 전부를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은 군대에서의 지옥훈련 주간보다 길고 고통스러웠다.

길을 가면서도 눈동자는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녀와 비슷한 몸매나 키를 가진 여자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돌아보았다. 허공을 보면 그곳에도 두 개의 눈빛이 박혀 있었다.


마침내 진성은 열병이 났다.

온몸의 체온이 불덩이처럼 오르고 일어나지 못할 만큼 무기력해졌다. 열대우림의 정글 속에서 길을 잃고 탈진하는 것 같은 고통이 일어났다.     

진성은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뎠다. 

비록 사랑이 영원히 떠난다고 해도 그 기억은 영원의 한 조각 속에 박제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처음처럼 증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 사랑은 이미 육체와 정신 속에 단단히 새겨져 있었다. 

사랑과 이별, 해체와 결합이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만약 사랑이 성장하고 발전하지 않는다면 파경이 온다는 것을 진성은 알고 있었다. 시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은 철저하게 관리하며 지키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여인은 아줌마가 되고 된장녀가 되며 세속화되고 색채가 탈락이 되어간다. 남성은 대단한 열정은 사라지고 임신한 여성처럼 뱃살이 나오고 타성적으로 삶의 무게를 겨우 지탱하게 된다. 

함께 있지만 이미 사랑의 빛은 바래고 경제 공동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진성은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진성은 체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선화 같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오경아였다.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치료하러 왔어요. 죽을 것 같아요. 호흡도 할 수 없고 잠을 잘 수도 없고 일주일 내내 물로 목만 축이고 먹지를 못해요. 지옥을 경험했어요. 저를 치료하고 살려주실 분을 찾아서 이렇게 왔어요.”

진성은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부쩍 수척해져 있었고 눈이 쑥 들어간 상태였다. 진성은 그녀의 손을 당겨 진맥을 보며 말했다.

“이병으로 죽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몇 달만 참고 견디면 서서히 회복될 겁니다. 정말 죽는 사람은 사람은 어느 날 예상치 못하고 갑자기 죽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그녀는 견디다 못해 울며 말했다.

“자기 없는 삶이 지옥이었어요. 내가 사라지고 자기만 보이는 곳이 천국인 것을 알았어요. 자기 없는 지옥에 사느니, 자기가 지켜보는 지옥훈련을 할게요. 여기 이렇게 반성문을 쓰 왔어요. 읽어주세요.”

그녀는 편지 묶음을 진성에게 주었다. 


진성이 말없이 침묵을 지키자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제 열정의 온도는 자기가 없으면 냉각화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자기는 내 삶의 전부이고 목표이고 본질이에요. 이제 명확히 깨달았어요. 다시는 이런 저항을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 이 지옥경험은 한 번이면 족해요. 다음에 이런 경험이 온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거예요. 실제 유황지옥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녀는 다시 낮게 가늘게 목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10번이라도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꽃잎을 벌려 맞아들일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어떤 교육과 훈련도 다 할게요. 항상 자기 곁에만 있을 거예요. 자기 없는 세상에 나만의 자아는 삶의 의미가 없어요.”

진성은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나도 불지옥 속에서 견디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견딘 것은 이 불지옥을 견뎌내고 지옥훈련을 해야만 우리는 영원을 건너는 다리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자기가 나이고 내가 자기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 더는 자기와 나를 분리하지 않을 거예요. 자기를 위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진성은 그토록 오랫동안 찾았던 소울메이트의 신탁을 받은 것을 느꼈다. 

이런 사랑이 확인된 이상, 더 나빠질 일은 없었고 더욱더 완벽한 사랑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 교육과 훈련을 열심히 하며 루틴을 지키기로 했다. 열정은 어느 날 불쑥 타오를 수도 있지만 열정의 온도는 반드시 관리해야 하며 성장과 발전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언젠가 고향별로 돌아갈 때까지 열정의 온도는 영원히 변하지 않게 유지해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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