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29. 사랑은 성장하고 발전해야 깊은 뿌리를 내리는 거야.
진성은 그녀와 함께 할 때는 아무런 설명을 할 이유가 없었다.
말이 필요 없을 때도 많았고 말을 할 때 서로는 육체적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정신과 육체가 섞여 있는 상태로 구조화되고 화학적 작용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런 약속이나 미래에 대한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가 분리될 수 없음을 직관적으로 느꼈고 강하게 결속이 되었다.
전화를 할 때도 마치 살이 맞닿은 것처럼 느꼈고 서로가 포개져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끔 그녀는 진성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했다. 극단적인 반군세력처럼 공격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면 절대 굽히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레지스탕스처럼 맹렬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그것은 암컷인 좌청룡과 수컷인 우황룡의 싸움과 같았다. 치열한 공방을 거듭했으며 자신의 논리적 진지를 구축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한 번은 화가 난 진성이 그녀와의 연락을 차단했다.
자존심이 센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저항했다. 하루해가 지나고 또 하루가 흘러갔다.
진성은 미친 듯이 공부를 하며 진료에 심혈을 기울였다. 시간을 잊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녀는 회사업무를 쉽게 처리했고 따로 시간을 보낼 통로가 없었다. 진성을 만난 이후 친구도 취미도 모두 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둘의 단절은 처절한 기싸움으로 확전 됐다. 시간의 흐름이 마치 염산이 뿌려진 듯이 뼈와 살을 녹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백기투항을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알고 다시 그 편의점에서 앉아 진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성이 귀가하는 길에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진성이 다가가자 이번에는 먼저 말을 꺼냈다.
“앞으로 내가 지닌 여의주는 영원히 선생님 거예요. 수컷 우황룡이 여의주를 관리해 주세요.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이 지옥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조건 다 따를게요.”
진성도 눈물이 맺혔지만 애써 억제하며 말했다.
“오경아 씨는 나의 자기야. 나 김진성은 오경아 씨의 자기야. 너와 내가 없는 자기로 불러주면 돼. 나를 자기라고 호칭하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의 자기가 되면 감정소모를 할 이유가 없을 거야.”
진성이 그녀를 안고 있음에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이제 더는 떨어질 수 없는 세포의 핵융합이 두 사람의 몸과 마음, 영혼 깊숙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지옥을 가면 자기는 지옥을 따라올 거야?”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왜 지옥을 가요. 천국을 가야죠. 지옥은 가지 말아요. 두려워요.”
진성은 웃으며 말했다.
“지옥 너머에 영원을 건너는 다리가 있어. 죄를 지어야만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야. 선량하고 착한 행위를 해도 지옥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어. 지옥 그 너머에 천국이 있는 거야.”
“제가 어릴 때 교회를 다녀서 지옥에 대한 공포가 좀 있어요. 지옥가지 말아요. 안 가면 되지 않나요. 우리 착하게 살면 지옥을 갈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그녀의 두려움이 진성에게도 느껴졌다.
그녀는 그렇게 순수하고 꾸밈이 없었다.
그러나 진성은 사랑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열대 지방의 정글에서 사는 원시부족처럼 배고프면 열매를 따먹거나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비확장을 하고 훈련을 하듯 깊은 사랑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을 진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진성은 사랑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수적인 것을 말했다.
“군대를 가면 지옥훈련이라는 것이 있어. 훈련을 지옥처럼 한다는 뜻이야.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지키려면 지옥훈련을 해야 해. 사랑은 교육과 훈련을 해야만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는 거야 할 수 있겠어?.”
“지옥훈련을 한다는 건 제가 여군처럼 되어야 하는 거예요?”
“맞아. 특전사 여군처럼 지옥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
“사랑은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는 깊은 뿌리를 내리는 거야. 성공해야 사랑이 깊어지고 행복해지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랑은 무너질 수밖에 없어. 사랑을 위해 꿈을 이루고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야. 체계적이고 치열적인 훈련을 해야 하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진성은 아침 루틴을 설명하고 가시적인 결과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녀는 눈이 점점 커졌다가 게슴츠레하게 작아졌다.
그녀는 전쟁을 위해 포탄을 장전하고 발포하듯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이렇게 못해요. 일주일에 3일만 만나요. 지금처럼 매일 만나는 것도 힘이 들어요. 그런데 앞으로 매일 사랑을 나누고 수험생처럼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저도 일을 해야 하잖아요. 친구도 만나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이렇게 무리하는 삶은 꿈꾸지 않았어요. 이대로는 못할 것 같아요.”
진성은 헐크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응수했다.
“난 지독한 사랑을 원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랑을 나누며 짝짓기를 하는 보노보 원숭이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꿈이야. 24시간 짝짓기를 하는 뱀처럼 살고 싶어. 시인 박인환 님은 ‘목마와 숙녀’에서 이렇게 표현했어.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은 남성의 알을 상징하고 청춘은 여성의 은밀한 구멍을 암시해.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 수 있는 나의 짝을 기다렸어. 그런데 사랑을 제한하고 힘이 든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녀는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처음엔 좋았어요. 우리가 섬에서 보낸 3일 중 2일 동안 무려 9시간을 계속했잖아요. 먹고 마시고 자는 시간 외에는 보노보 원숭이나 청춘을 찾는 뱀처럼 내내 결합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도시남녀의 삶은 다르잖아요. 어떻게 오로지 사랑만을 할 수는 없잖아요.”
“좋아했잖아. 그렇게 사랑하기로 암묵적인 동의를 했잖아. 나는 섹스를 한 적이 없어. 에너지충전을 했고 차크라를 열며 자기의 악기를 연주했어. 연주가는 단 하루도 쉬면 안 되는 거야. 나는 내 삶의 모든 궤도를 꼬마와 꽃잎에게 맞췄어. 이 삶 이외에 다른 방식의 삶은 관심이 없어.”
“물론 좋았어요. 섬에서 돌아와서 6개월 동안 생리하는 날 빼고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잖아요. 저는 일상이 엉망이 되었어요. 직장생활이나 친구, 자기계발은 엄두를 못 내요. 제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요. 도시남녀의 삶은 다르잖아요. 계속 그렇게 하자고 하면 저는 어떻게 견뎌요.”
그들은 지옥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극단적인 반대지점에서 버텼다. 그 순간 엄청난 우주의 카오스가 일어나며 먹구름과 폭풍우가 닥쳤다. 진성은 갈림길에 섰다. 두 사람은 더 이상 합의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도달했다. 그들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끝장의 순간을 예감했다.